전국금속노동조합 경주지부 발레오만도지회(지회장 정연재) 해고 노동자들이 지난달 14일 아침 경주시 용강공단 발레오전장시스템스코리아 경주공장 앞에서 복직을 요구하면서 피켓시위를 벌이자 회사 직원과 용역업체 직원들이 현수막을 들고 맞대응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박종찬 기자
연말연시기획|제2의 김진숙, 제3의 한진중(5) 버림받은 민주노조, 발레오전장
해고노동자 28명 ‘천막’서 20개월 째 복직 투쟁
인건비 줄여 얻은 이익으로 주주들 ‘배당잔치’
해고노동자 28명 ‘천막’서 20개월 째 복직 투쟁
인건비 줄여 얻은 이익으로 주주들 ‘배당잔치’
“여러분이 살린 회사 최고로 만듭시다.”
“부당해고 철회하고 법원판결 이행하라.” 새벽 공기를 뚫고 공장 굴뚝에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올랐다. 공장 정문 앞에 검은 점퍼를 입은 건장한 사내들이 어슬렁거렸다. 그 뒤로 회사 작업복을 입은 무리가 10여명씩 두 패로 나뉘어 초록색 현수막을 들고 서 있다. 불과 5m도 되지 않는 정문 맞은편에는 ‘부당해고 철회’라고 쓰인 조끼를 입은 한 무리의 노동자들이 피켓을 들고 공장 쪽을 응시하고 있다. 지난달 14일 아침 7시 경주시 용강공단 발레오전장시스템스코리아(이하 발레오) 공장 앞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해고 노동자들이 피켓 시위를 벌이자 회사 쪽 용역과 관리자들이 나서 맞대응 선전전을 벌이고 있었다. 해고자들이 틀어놓은 스피커에서 노동가요만 요란하게 흘러나올 뿐 회사 쪽 직원들도 해고자들도 말이 없었다. 사람들 대신 현수막과 피켓이 양쪽의 말을 대신하고 있었다. 매일 아침 팽팽한 신경전은 벌써 20여개월 넘게 계속되고 있다. # “손이 부들부들 떨려 전화도 걸 수가 없었다” “이 공장이 만들어질 때부터 일했으니까 창립 멤버인 셈이지요. 그런데 느닷없이 정직 명령을 받았어요. 가족들에게 전화를 하려는데, 손이 부들부들 떨려 전화도 걸 수가 없더라고요.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너무 서러운 생각만 들어요.” 아침 피켓시위를 마친 해고 노동자들이 도란도란 ‘천막’으로 모였다. 천막은 지난해 발레오 노사분규 과정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을 회사 쪽에서 부르는 말이다. 용강공원 들머리에 세워진 천막 3동은 해고 노동자 28명의 복직 투쟁을 위한 베이스캠프다. 발레오 공장에서 23년째 청소 일을 했던 이영순(56)씨는 해고 결정이 내려지던 순간을 떠올리는 것이 여전히 고통스럽다. 식당에서 일하다 해고된 정순임(가명·57)씨도 “죄라면 20년 동안 열심히 직원들 밥 해준 것밖에 없는데…”라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난데없는 해고와 복직투쟁은 1년 동안 평범한 아줌마들을 ‘노동 투사’로 단련시켰다. 이씨는 “천막생활이 너무 힘들지만,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끝까지 해볼 생각”이라며 “복직해서 명예롭게 내 발로 걸어 회사를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 비정규직 없던 공장에 경비직원 외주화로 터진 노사분규
발레오는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등에 시동모터 등 자동차 부품을 납품하는 제법 탄탄한 중소기업이다. 발레오의 전신은 만도기계다. 한라그룹 계열이었으나, 지난 98년 외환위기 사태 때 프랑스에 본사를 둔 발레오 자본에 넘어갔다.
노사관계가 삐걱대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2월부터였다. 회사가 경비절감을 이유로 경비·청소 노동자 등을 용역으로 전환하려고 시도했다. 회사는 2월4일 경비직원 13명 가운데 희망자 5명을 생산라인에 배치하고 용역업체를 경비직에 채용했다. 전국금속노조 경주지부 발레오만도지회(금속노조지회)는 이에 반발해 잔업거부 등 태업을 벌였다.
천막 농성을 이끌고 있는 정연재 발레오만도지회장은 “23년 동안 비정규직이 없는 사업장이었다”며 “단순히 경비직 문제만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 당시 조합원들의 정서였다”고 설명했다. 정 지회장은 “회사가 어려우면 다음은 식당 아웃소싱을 요구할 것이고, 그 다음은 청소, 차량 기사의 비정규직화를 요구했을 것”이라며 “이렇게 내주다 보면 라인까지 내주게 되고 결국은 정규직의 일자리마저 위협할 것이라고 봤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강기봉 사장은 “당시 주주총회에서 2010년 5월까지 회사를 청산한다는 계획이 있었을 정도로 비상한 경영 상황이었다”며 “시장 상황도 좋지 않았고, 노조의 강경한 태업 때문에 경영이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 직장폐쇄 기간 진행된 금속노조 탈퇴 총회
노조의 태업에 회사는 이틀만인 2월16일 오전 6시30분 직장폐쇄 공고를 내걸었다. 5월19일 경주지방법원은 노조가 청구한 ‘직장폐쇄 효력정지 가처분’을 인용하는 결정을 내렸다. 회사는 5월25일 직장폐쇄를 풀었다. 무려 99일이 걸렸다. 직장폐쇄가 풀렸으나 회사는 지회 전·현직 임원 및 간부 15명과 서비스 부분(식당, 경비, 정리반, 차량기사) 13명 등 28명에게는 해고와 정직처분을 내렸다.
직장폐쇄를 전후로 금속노조 탈퇴를 위한 투표가 진행됐다. 발레오만도지회에 반발해 ‘조합원을 위한 조합원 모임’(이하 조조모)이 직장폐쇄 기간인 4월께 결성되었고, 이 모임은 노조를 금속노조 산하 산별노조에서 기업별 노조로 전환하는 ‘조직변경 투표’를 5월19일과 6월9일 두 차례에 걸쳐 강행했다. 두 차례 투표에서 조합원 95%가 ‘금속노조 탈퇴에 찬성’했고, 조조모를 이끌었던 정홍섭씨가 새 노조인 ‘발레오전장노동조합’(이하 발전노)의 위원장이 되었다.
그러나, 발레오만도지회가 발전노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금속노조 탈퇴 총회 결의는 무효’라며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지난해 7월26일 1심 판결에서 발레오만도지회의 손을 들어줬다. 두 차례의 총회가 모두 소집권한이 없는 이가 소집을 해 절차상으로 문제가 있었고, 금속노조 탈퇴를 지회 조합원 총회로 의결할 수 없다는 것 등이 이유였다.
정 지회장은 “직장폐쇄와 조조모 활동, 금속노조 탈퇴, 노조 집행부 대량 해고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태가 민주노조를 깨기 위한 회사의 치밀한 기획 속에서 이뤄졌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 강 사장은 “노조는 주주를 견제할 중요한 집단으로 회사를 운영하는데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평소의 소신”이라며 “금속노조 탈퇴도 노조원들이 자발적으로 결정한 것이고, 회사가 나서 노조를 깬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다”고 주장했다.
# 해고가 남긴 것, 사람에 대한 믿음이 산산조각났다
“옛날에는 공장에 정이 있었어요. 공장에 서클만 몇십개가 넘었지요. 그런데 그 일이 있고 나서 모든 게 다 깨졌어요.”
해고자 가운데 막내그룹에 속하는 추재덕(42)씨는 노동조합 간부도 아니었고, 조합 활동에 적극적인 축에 속하지도 않았다. 그저 양심을 속일 수 없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양심을 지킨 대가는 가혹했다. 그는 평조합원 가운데 드물게 1차 해고자 명단에 올랐다.
그는 요즘도 악몽에 시달린다. “공장에 들어갔는데, 아무도 나를 아는 척을 하지 않는 거라. 옆 사람에게 작업 장비를 집어달라고 해도 아무 말이 없고….” 꿈속에서 그는 여전히 공장에서 일하고, 어떤 날은 누군가와 심하게 싸우기도 한다. 추씨는 자신이 “소외받고, 버림받았다”며 “그러니까 그런 꿈을 꾼다”고 씁쓸하게 웃었다.
추씨는 해고보다 직장폐쇄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가 더 아프다고 했다. 경비직을 아웃소싱할 때 “다음은 우리 차례”라며 조합원 97%가 태업에 동참했다. 그러나 회사가 직장폐쇄를 하고, 싸움이 길어질수록 한 사람, 두 사람씩 대오를 이탈하기 시작했다. 공장 복귀 과정은 배신의 연속이었다. 라인에서 다섯 조합원이 끝까지 싸우자고 약속을 했다. 그러던 중 한 사람이 회사의 회유로 복귀를 결정했다. 나머지 네 사람이 모여서 복귀한 사람을 욕했다. 그러다 또 한 사람이 복귀하면 남은 세 사람은 또 떠난 사람을 욕하고, 다음날에도 또 한 사람이 복귀를 했다. 그 과정에서 사람에 대한 믿음은 산산조각이 났다.
추씨는 “20년 쌓였던 인간관계가 하루아침에 무너지더라”며 “서로 밑바닥까지 다 들여다봤는데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느냐. 배신이 뭔지 확실히 알았다”고 말했다. 추씨는 아침 선전전에서 자신들을 비방하는 현수막을 들고 서 있는 옛 동료들을 대하는 것이 하루 중 가장 힘들다고 했다.
추씨는 가족들을 생각하면 또 마음이 아프다. 해고 뒤 1년 동안은 금속노조에서 신분보장기금(년간 2000만원 한도)을 지원했지만, 지난 8월 이마저도 끊겼다. 당장 생계 문제가 막막하다. 아내는 몸이 좋지 않고, 초등학교 5학년인 아이 교육비도 만만치 않다. 추씨는 가족을 생각하면 늘 미안한 마음만 앞선다. “애 엄마 병에 스트레스 안 받는 것이 제일 중요한데, 제가 주는 것은 스트레스밖에 없으니…. 가정을 생각하면 못할 짓이죠.”
# 복귀해도 현실은 가혹…“화장실도 맘대로 못가”
공장에 복귀한 사람들, 이른바 ‘살아남은 자들’에게도 현실은 가혹하다. 직장폐쇄 직후 회사는 공장에 복귀한 직원들을 라인 복귀 대신 ‘지피지기’, ‘개선 티에프티(TFT)’ 등 팀을 만들어 그곳에 배속시켰다. 이 팀에는 주로 회사에 늦게 복귀한 사람이나 금속노조 미탈퇴자들, ‘천막 농성자’들과 가깝게 지낸 사람들이 포함됐다. 이 팀들이 하는 주요 업무는 라인에 갑작스럽게 사람이 빠지면 대타로 투입되거나 풀 뽑기, 화장실 청소, 페인트칠 등 잡일에 불과하다. 직장폐쇄가 끝나고 회사가 정상을 되찾은 최근까지도 지피지기와 개선 TFT는 여전히 운영되고 있으며, 50여명 직원들이 이 팀에 속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 큰 문제는 업무 개선이라는 명목 아래 노동 강도가 점차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어렵게 통화가 이뤄진 한 직원은 깊은 한숨을 쉬면서 공장 분위기를 전했다.
“라인에서는 생산 목표량이 늘어 화장실에 가는 것도 마음대로 못 갈 정도예요. 목표량을 맞추지 못하면 업무 시간이 끝나고 나머지 숙제를 하듯 물량을 맞춰야 합니다. 따로 수당도 없이 잔업을 합니다. 회사는 이것을 업무개선이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이 직원은 “관리자들이 ‘말 안 들으면 지피지기로 보내 버린다’고 은근히 협박해 불만이 있고, 따질 것이 있어도 말할 수가 없다. 공장 안에서 사람으로 살 권리가 죽었다”며 “옛날처럼 노조가 제 구실을 했다면 상상도 못할 일이 공장 안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 회사 쪽 “일자리 지키는 것이 진짜 인권을 지키는 것”
그러나 회사는 업무 혁신으로 작업환경은 크게 개선되었고, 직원들의 삶의 질도 향상됐다고 주장한다. 강기봉 사장은 “생산라인 개선과 직원들 의식 개선을 통해 올해 작업시간은 20~30%까지 줄이면서도 임금은 10~15% 오르는 결과가 나왔다”며 “성과배분을 확실하게 하니까 근로자들이 ‘회사가 수익이 나면 나한테도 이득이 오는구나’하는 의식 개선이 확산돼 자발적으로 작업환경 개선과 물자 절약 등에 나서고 있는 것이 생산성 향상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의 인권이 후퇴했다는 주장과 관련해 강 사장은 “직원들이 아주 자율적인 분위기에서 일하고 있고, 삶의 질이 크게 향상되고 있다”며 “우리 공장에 근무하는 800명 일자리와 협력업체까지 2000명의 일자리를 지키는 것이 진짜 인권을 지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정연재 지회장은 “노동시간이 줄고, 잔업 수당도 받지 않는데 어떻게 임금이 오를 수 있느냐”며 “2010년 결산 결과를 보더라도 400억대의 당기순이익을 낸 것은 순전히 인건비를 절감한 결과”라고 반박했다. 실제 2010년 발레오 결산 결과를 보면 당기순이익 384억원을 달성했다. 2009년 35억원 적자에 비해 무려 1000% 넘게 성장했다. 그러나 총인건비가 206억원 감소(2009년 715억원, 2010년 509억원)해 인건비 절감이 순이익 증가의 주요한 원인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발레오는 이익이 남자 이익금의 40%에 해당하는 165억원을 주주들에게 배당했다. 직원들의 임금을 줄여 주주들 배 불려준 셈이다.
사내 복지가 축소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대표적인 것이 사원 아파트 퇴거 조처다. 공장 바로 옆에 있던 사원 아파트와 기숙사에 300여 세대가 거주했으나 회사는 노후화와 재개발을 이유로 직원들을 퇴거시켰다. 또 인건비 가운데 복리후생비가 2009년 91억원 수준에서 2010년 53억원 수준으로 줄었다.
# 민주노조는 해고, 새 노조는 사실상 회사 이중대
금속노조 발레오만도지회 노조 간부들이 해고되고 주도권을 잃은 뒤 새롭게 들어선 발레오전장노동조합(이하 발전노)은 사실상 회사의 이중대 역할을 하고 있다. 발전노는 해고 노동자들이 매일 아침 피켓시위를 벌이는 현장에 나와 반박하는 선전전을 벌이는 등 회사에 협조적이다. 발전노 집행부는 직장폐쇄 당시 산별노조인 금속노조를 탈퇴해 기업별 노조로 전환하는 총회를 주도한 조조모를 주축으로 꾸려졌고, 회사 징계위원회에 참여해 해고자 징계에도 합의했다. 발전노가 지난 7월 회사와 체결한 단체협상은 발레오만도지회와 비교해 노조활동을 회사에 위임한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후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새 단협안은 조합원 정년을 만 60살에서 58살로 낮췄고, 만 55살 조합원부터 임금피크제를 실시하기로 했다. 조합원의 인사원칙과 징계위원회 규정은 삭제하고, 대신 조합원 징계와 관련한 7개 항이 신설되었다. 회사가 마음대로 인사와 징계권을 휘두를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또, 새 단협에는 쟁의와 관련한 규정도 무더기로 신설됐다. 이 가운데 ‘쟁의예고’라는 조항을 보면 “조합이 쟁의행위를 하고자 할 때 적어도 7일 전에 서면으로 회사에 통고하도록” 했고, ‘평화의무’ 조항에는 “회사는 평화의무조항을 위반하여 쟁의행위를 한 자 및 조합의 지시에 의하지 아니하고 쟁의행위를 한 자에 대하여 해고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사실상 회사가 노동조합의 ‘단체 행동권’마저 제약하려는 것이다.
정 지회장은 “노동조합 활동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조합 활동, 고용안정, 인사와 징계, 산업안전 등 모든 조항을 날려버렸다”며 “독재시대 어용노조보다 더 심한 단체협약”이라고 혹평했다. 단체협상과 관련해 발전노 입장을 들어보려고 정홍섭 위원장과 전화 통화를 했으나 “계속 회의 중이라 바쁘고, 취재에 응할 이유가 없다”고 전화를 끊었다.
# 또 다른 공장, 천막 …그래도 놓을 수 없는 희망
회사는 해고했지만, 발레오 해고자들은 천막을 직장 삼아 출퇴근을 한다. 돌아가면서 천막을 지키고 숙직도 선다. 천막은 그들에게 또 다른 공장이다. 아침 7시부터 피켓 선전전을 하고, 오후에는 시청과 지방노동위원회에 나가 1인 시위를 벌인다.
이제 회사와 직접 멱살 잡고 싸우는 일은 없다. 회사와 대화가 끊긴 지도 오래다. 대신 법정에서 피 말리는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회사와 금속노조지회, 기업노조 사이에는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 ‘해고무효 확인소송’, ‘손해배상’, ‘폭력’ 등 민형사상 재판 25건이 얽히고 설켜 있다. 노사 양쪽이 한치의 양보 없이 끝까지 간다는 입장이어서 앞으로도 기나긴 법정다툼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아직까지 재판 결과가 해고자들에게 유리하게 나오고 있는 것이 그나마 위안거리다.
경주시청에서 1인 시위를 벌이던 해고자 이훈우(45)씨는 “가족들을 생각하면 가장 힘들지만, 가족들을 위해서도 반드시 공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다”며 “부당하게 해고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해서라도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정 지회장은 “이 싸움이 잘 끝나서 해고자 가족들끼리 한 비행기 타고 제주도나 해외여행을 같이 가는 것이 꿈”이라며 “가서 형님, 누님들이랑 도란도란 옛 이야기 하면서 웃을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막내인 추씨는 한층 강경했다. “이 상태로 들어가면 복직이 되더라도 종 노릇 밖에 못할 것 같습니다. 민주노조 깃발, 금속노조 깃발을 들지 않고는 절대로 안 들어갈 겁니다.”
경주=글·사진·영상 박종찬 기자 pjc@hani.co.kr
“부당해고 철회하고 법원판결 이행하라.” 새벽 공기를 뚫고 공장 굴뚝에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올랐다. 공장 정문 앞에 검은 점퍼를 입은 건장한 사내들이 어슬렁거렸다. 그 뒤로 회사 작업복을 입은 무리가 10여명씩 두 패로 나뉘어 초록색 현수막을 들고 서 있다. 불과 5m도 되지 않는 정문 맞은편에는 ‘부당해고 철회’라고 쓰인 조끼를 입은 한 무리의 노동자들이 피켓을 들고 공장 쪽을 응시하고 있다. 지난달 14일 아침 7시 경주시 용강공단 발레오전장시스템스코리아(이하 발레오) 공장 앞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해고 노동자들이 피켓 시위를 벌이자 회사 쪽 용역과 관리자들이 나서 맞대응 선전전을 벌이고 있었다. 해고자들이 틀어놓은 스피커에서 노동가요만 요란하게 흘러나올 뿐 회사 쪽 직원들도 해고자들도 말이 없었다. 사람들 대신 현수막과 피켓이 양쪽의 말을 대신하고 있었다. 매일 아침 팽팽한 신경전은 벌써 20여개월 넘게 계속되고 있다. # “손이 부들부들 떨려 전화도 걸 수가 없었다” “이 공장이 만들어질 때부터 일했으니까 창립 멤버인 셈이지요. 그런데 느닷없이 정직 명령을 받았어요. 가족들에게 전화를 하려는데, 손이 부들부들 떨려 전화도 걸 수가 없더라고요.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너무 서러운 생각만 들어요.” 아침 피켓시위를 마친 해고 노동자들이 도란도란 ‘천막’으로 모였다. 천막은 지난해 발레오 노사분규 과정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을 회사 쪽에서 부르는 말이다. 용강공원 들머리에 세워진 천막 3동은 해고 노동자 28명의 복직 투쟁을 위한 베이스캠프다. 발레오 공장에서 23년째 청소 일을 했던 이영순(56)씨는 해고 결정이 내려지던 순간을 떠올리는 것이 여전히 고통스럽다. 식당에서 일하다 해고된 정순임(가명·57)씨도 “죄라면 20년 동안 열심히 직원들 밥 해준 것밖에 없는데…”라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난데없는 해고와 복직투쟁은 1년 동안 평범한 아줌마들을 ‘노동 투사’로 단련시켰다. 이씨는 “천막생활이 너무 힘들지만,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끝까지 해볼 생각”이라며 “복직해서 명예롭게 내 발로 걸어 회사를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 비정규직 없던 공장에 경비직원 외주화로 터진 노사분규
발레오전장 직장폐쇄 기간인 2010년 3월께 노조와 회사가 고용한 용역직원들이 회사 정문 앞에서 충돌하고 있다. 발레오만도지회 제공
발레오전장 해고 노동자 이훈우(45)씨가 지난달 14일 오전 경주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박종찬 기자
발레오전장 해고 노동자인 추재덕씨가 지난달 14일 아침 농성 천막 앞 마당에서 나무 난로에 불을 피우고 있다. 박종찬 기자
발레오전장시스템스코리아 직원들이 지난해 6월3일 오후 경주 한 잔디구장에서 ‘화랑대 교육’을 받고 있다. 박수진 기자
발레오전장 직원들과 회사가 고용한 용역업체 직원들이 지난달 14일 아침 발레오만도지회 해고 노동자들이 피켓시위를 벌이자 현수막을 들고 맞대응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박종찬 기자
발레오전장 해고 노동자들이 지난달 13일 천막농성장에서 저녁회의를 마치고 함께 식사를 하고 있다. 박종찬 기자
| |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