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활쏘기 연습
‘피고인을 징역 4년에 처한다.’
18일 개봉한 영화 <부러진 화살>의 실제 사건은 2008년 6월 대법원이 피고인의 상고를 기각하며 사법적 판단은 마무리됐다. 상고심에서 이 사건 주심을 맡은 이홍훈 대법관은 법률심인 대법원에서 이례적으로 사실관계에 공을 들인 판결문을 내놨다. 하지만 ‘주인공’ 김명호(55) 전 교수는 3년7개월이 흐른 지금, 법정에서 내놓은 증거자료를 다시 내밀며 영화 속에서 말하고 있다. “우발적 발사였다. 화살은 맞지 않았다. 증거는 조작됐다.” 영화는 ‘정작 피해자는 화살을 맞았다는 판사가 아니라, 엉터리 재판으로 옥살이를 한 김 전 교수’라고 암시한다. 법원은 어떤 근거로 그에게 유죄를 선고했을까?
■ 무슨 일 있었나? 2007년 1월15일 저녁 6시30분, 서울 송파구 잠실동 ㅇ아파트 1~2층 사이 계단. 석궁에 화살 한발을 장전한 김 전 교수가 1층 현관 엘리베이터 앞에 들어선 박홍우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불렀다. 박 부장판사는 김 전 교수가 낸 교수지위확인소송 항소심에서 사흘 전 그에게 패소 판결했다. 김 전 교수는 대학입시 본고사 수학문제 오류를 지적했다가 이듬해 재임용에서 탈락한 뒤 대학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뒤돌아보는 박 부장판사에게 김 전 교수가 물었다. “항소 기각 이유가 뭐냐?” 김 전 교수는 박 부장판사에게 다가섰다. 김 전 교수가 들고 있던 석궁에서 화살 한발이 발사됐다. 병원 진단 결과, 박 부장판사는 복부 근육층이 찔린 상해를 입었다. 손으로 박 부장판사의 멱살 부위를 잡은 김 전 교수는 그를 바닥에 넘어뜨렸고, 서로 엉긴 상태에서 몸싸움을 벌였다.
■ 석궁 발사는 우발적이다? 김 전 교수는 화살을 쏜 경위에 대해 “몸싸움 도중 우발적으로 발사됐다”고 주장했다. 석궁을 가져간 것도 단순히 겁만 주려고 했다는 설명이다. ‘상해를 입힐 고의가 없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김 전 교수가 직접 석궁 시위를 당겼으리라 짐작할 근거를 여럿 제시했다. 우선 석궁은 시위를 당겨 걸면 자동으로 안전장치가 잠기는데, 실제 석궁이 발사된 것을 보면 단지 위협만 할 생각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박 부장판사가 석궁에 손을 댄 흔적이 없는 정황도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로 봤다.
또 범행 전 김 전 교수의 행적도 문제삼았다. 김 전 교수가 석궁과 화살을 구입한 것은 교수지위확인소송 항소심 재판의 변론이 끝나기 한달 전쯤이었다. 김 전 교수는 이때부터 자신의 집 주변 공터에서 1주일에 한 차례 60~70발씩 화살을 쏘는 연습을 했다. 항소심 선고 전날까지 7차례 박 부장판사 집 근처를 찾아가 현장을 사전답사하기도 했다. 범행 당일 노끈과 함께 압수됐다. 김 전 교수는 회칼과 관련해 법정에서 “노량진 수산시장 근처로 이사할 예정이라 미리 구입해 갖고 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 사라진 화살 범행에 쓰인 화살이 수사 도중 행방을 감춘 부분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혹이다. 김 전 교수는 범행 당시 아파트 경비원 등의 진술을 근거로 범행에 직접 사용된 화살은 화살촉 끝이 뭉툭하고 뒷부분이 부러져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압수된 증거로 제출된 화살 9개는 모두 멀쩡했다. 이들 화살촉에서 혈흔은 발견되지 않았다. 김 전 교수는 “우발적으로 발사돼 맞지 않은 화살을 수사기관이 인멸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범행 당시 김 전 교수가 소지하고 있던 화살들과 다른 증거들을 종합해 범죄사실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즉 ‘총알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서 살인사건을 무죄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 핏자국 없는 와이셔츠 김 전 교수는 박 부장판사가 입은 윗옷 중 와이셔츠에만 유독 핏자국이 없었던 점을 들어 화살이 실제 박 부장판사의 복부를 관통하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박 부장판사는 겉에서부터 양복 상의와 조끼, 와이셔츠, 내복, 속옷을 차례로 입고 있었으며, 화살이 뚫은 윗옷 구멍 주변에 핏자국이 있었다. 그런데 와이셔츠에는 육안으로 핏자국이 보이지 않았으며, 오른팔 뒤쪽에서만 혈흔이 발견됐다. 옷가지의 혈흔들은 같은 남성의 것으로 확인됐지만, 박 부장판사와 일치하는 지는 재판부가 ‘그럴 필요가 없다’며 감정 신청을 기각해 혈흔의 주인은 직접 확인되지 않았다. 김 전 교수는 “피해자가 복부에 화살을 맞은 적이 없으면서 영웅심리로 자해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하지만 재판부는 범행 당시 현장에 있던 목격자들 진술의 증명력을 높게 봤다. 재판부는 “처음 피해자를 목격한 경비원은 피해자의 옷을 들추자 다량의 혈흔이 보였다고 진술하고 있다”며 “와이셔츠의 혈흔이 육안으로 잘 확인되지 않는다는 사실보다는 속옷과 내복에서 다량의 출혈 흔적이 확인된다는 사실의 증명력이 훨씬 우월하다”고 밝혔다. 김정필 기자 fermata@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정태근 “외교부가 ‘다이아몬드 게이트’ 조직적 은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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