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정수장학회 판결’ 비판
지난 24일 정수장학회 관련 판결을 두고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권총을 차고 협박당했는데도 김지태씨의 의지로 주식을 증여했다고 판단한 부분과, 제척기간(주식 증여를 취소할 수 있는 기간)이 완성되기 전인 1972년까지 살아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상대로 소송을 냈어야 한다는 법원의 판단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우선 법원이 ‘의사결정권 박탈 기준’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해석했다는 지적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7부(재판장 염원섭)는 “강박에 의한 법률 행위가 무효가 되기 위해서는, 의사결정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여지를 완전히 박탈당한 상태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김지태씨가 정부의 강압으로 주식을 증여한 사실은 인정되나 의사결정 여지를 완전히 박탈당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김지태씨의 부인 송혜영씨 및 회사 임직원 10명이 구속되고, 권총을 찬 중앙정보부장한테서 “살고 싶으면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라”는 요구를 받았다는 사실은 인정했지만 의사결정권 박탈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법원의 이러한 논리는 1970~80년대 국가의 불법행위로 강제헌납된 재산을 보전하는 데 일조해 왔다. 80년대 계엄사 합수부에 의해 동곡문화재단(현 서울장학재단)을 강제로 헌납한 김진만씨 역시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40여일간 불법구금됐고, ㄷ그룹의 경영자인 아들의 재산까지 몰수하겠다는 협박을 받았지만, 법원은 의사결정의 자유를 박탈당하진 않았다고 판단했다. 법원 관계자는 “(계약자의 의사에 반해) 손을 강제로 쥐여주며 계약을 강요해야 무효 수준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법원의 이런 기준은 법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김갑배 변호사는 “형법은 협박을 해서 재산을 뺏는 행위(공갈)와 강제로 물건을 빼앗아가는 행위(강도)를 모두 처벌하고 있는데, 이번 판결의 논리를 따르자면 공갈은 피해자가 의사결정권을 박탈당하지 않은 채 스스로 물건을 주었기 때문에 재산을 돌려받지 못한다는 결론이 나온다”며 “법원은 재산을 넘길 의도가 있었는지, 누가 먼저 헌납을 요구했는지 등 복합적인 상황을 보고 의사결정권 박탈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번째는 제척기간을 너무 기계적으로 계산했다는 비판이다. 민법은 주식을 증여할 때로부터 10년이 지날 때까지 증여를 취소하지 않으면 더이상 취소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10년 동안 박 전 대통령의 독재가 이어진 만큼 취소권 행사가 불가능했던 점을 법원이 판단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국가 범죄로 재산권에 침해를 당했음에도 단기간의 제척기간을 정해놓는 것은 법치국가의 원리에 반하는 것”이라며 “국가범죄의 경우 제척기간을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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