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2월18일 김영삼 새 대통령을 보좌할 박관용 비서실장(맨 가운데)을 비롯한 청와대 비서진 내정자들이 집권여당인 민자당 당직자들과 상견례를 하고 있다. 둘째아들 현철씨 쪽에서 추천한 인사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 <한겨레> 자료사진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④
1993년 2월17일 새벽 나는 당선인으로부터 전화로 통일부총리 임명 통보를 받았다. 그날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청와대 보좌진 주요 인사들이 모였다. 그 모임의 면면을 보면서 나는 ‘대통령 친인척 관리지침’을 건네며 당부하던 이창해씨의 얼굴이 새삼 떠올랐다. 둘째 처남 현철씨의 행보와 권력남용을 걱정했기에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미리 막아달라는 의미였음을 헤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새 정부 출범을 즈음해 정부 내 고위직 인사 및 제2이동통신사업자 선정, 경부고속전철 사업자 선정 등 대형 이권사업이 추진될 것으므로 유력한 친인척에 대한 로비가 치열할 것으로 전망된다. 친인척 관리 문제는 새 정부의 개혁 의지를 시험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그는 관리지침에서 새 정부를 겨냥한 반개혁적 유혹의 가능성을 정확하게 예견하면서 국내외의 권력형 비리 사례를 상세하게 짚었다.
권력의 정통성이 취약했던 5공화국의 전두환 정권은 과감한 부정부패 척결로 민심을 얻으려 했으나 82년 6월 터진 ‘장영자 사건’으로 결국 국민의 불신만 깊어졌다. 동생 전경환을 비롯한 친인척의 세도도 물의를 일으켰다. 전두환 대통령 자신도 대전 순방 때 기관장 회식에 사촌형인 전순환을 참석시켜 잘 도와주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바로 전 6공화국에서도 ‘황태자’로까지 불린 측근과 실세들의 이권개입에 대한 사회적 비판을 적시했다. 지침에는 대통령에 대한 경계도 밝혀 놓았다.
“이러한 친인척 문제는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부당하게 권력을 행사한 당사자의 책임이 가장 크나, 그러한 영향력 행사를 가능하게 한 대통령의 마음자세에도 못지않은 책임이 있다고 본다.”
한편으로, 그는 법적 근거 없이 친인척의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직간접으로 규제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식적인 언로가 막혀 있을 때는 친인척이 대통령에게 정확하고 정직하게 민심의 동향을 직언하는 임무를 맡아야 한다는 제언도 잊지 않았다. 그는 이런 신중하면서도 엄격한 관리가 궁극적으로 퇴임 뒤 친인척의 불행한 사태를 막는 장치라고 여겼다.
이는 ‘영일대군’이니 ‘영포라인’이니 대통령 측근 비리로 어지러운 요즘 세태에도 매우 유효한 지침이란 점에서 다시금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친인척 관리의 세가지 원칙과 함께 제시해놓은 세부시행방안은 다음 정부에 참신한 참고가 될 만하다.
첫째, 친인척의 자제를 호소한다. ‘친인척 스스로 일체의 공직 인사나 이권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공표할 것, 대통령은 친인척에게 청탁을 하지 않도록 대국민 협조 담화를 발표할 것, 공직자들에게도 친인척의 청탁을 거부하도록 지시할 것, 민간기업을 상대로 한 친인척 빙자 사기행각은 관계기관에 신고하고 엄격하게 처벌할 것, 청와대에 친인척 비리 신고 창구를 개설할 것, 해마다 친인척의 재산도 공개할 것’이 그 방안이다.
둘째, 친인척은 공직에서 배제해야 한다. ‘대통령 당선 이전부터 공직에 종사하지 않은 친인척을 새로 등용하지 않는 원칙을 천명할 것, 기존 공직의 친인척도 요직에 중용하거나 서열을 무시한 채 승진시키지 않도록 할 것, 친인척의 현실정치 참여는 집권 초기보다는 개혁 의지가 상당 수준 구현된 이후 필요성을 고려해 판단할 것’이다.
셋째, 친인척의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보장한다. ‘친인척은 대통령의 후광을 이용할 생각을 하지 말 것, 가까운 친인척은 집권 초기 한시적으로 외유를 하거나 일체의 공식 사회활동을 중단할 것, 소외되고 불우한 친인척일수록 적절한 지원으로 돌출행동 가능성을 사전에 막을 것, 친인척은 가감없는 민생 정보를 대통령에게 전달하되 공직 인사에 관한 대화는 금기로 할 것’이다.
나는 그때 새 대통령이 보배 같은 사위를 두었다는 생각을 했다. 동시에 이미 실세로 떠오른 현철씨의 행보가 염려스러웠다. 만약 그때 내가 비서실장이 되었다면 이 지침을 강력히 추진하려고 애썼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마음과 의지였다. 맏아들에 대한 기대를 일찍 접은 당선인이 둘째에게서 정치적 자질을 보았다면, 그런 아버지의 판단을 백분 활용하려는 둘째아들을 냉정하게 관리했어야 했다.
한완상 전 통일·교육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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