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3월10일 필자(오른쪽)는 초대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으로서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첫 통일 관계 장관회의를 주재했다. 서울 삼청동 남북대화사무국에서 한승주(왼쪽) 외무장관과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씨의 북송 문제를 논의하고 있는 모습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10
1993년 3월8일 레이먼드 버그하트 주한 미 부대사가 통일원을 예방하자 언론에서는 일제히 이인모씨 북송 문제에 대해 물었다. 나는 대변인을 통해 ‘현재 송환을 추진하고 있지 않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인 9일 밤 9시쯤 최형우·김덕룡 의원과 저녁을 함께하고 있던 시내의 한 식당으로 박관용 비서실장이 헐레벌떡 들어왔다. 그는 내게 귓속말로 깜짝 놀랄 얘기를 전했다. 조금 전 청와대에서 중앙 일간지 편집국장들과의 만찬 자리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이인모씨 북송 허용’을 발표했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편집국장들은 대통령의 지지도가 90%를 넘을 정도로 굉장히 높다는 사실을 전하면서 기분을 돋우었다고 했다. 안가를 허물고 청와대를 개방하며 과감하게 개혁을 추진하는 모습에 국민들이 아낌없는 지지를 보낼 때였다. 그러자 대통령은 뭔가 선물을 주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기자들에게 가장 큰 선물은 특종 아니겠는가. 그 순간 깜짝 놀란 박 실장은 일단 ‘엠바고’(한시적 보도금지 약속)를 요청한 뒤 나를 수소문해서 찾아왔던 것이다.
나 역시 혼비백산했다. 물론 3월2일 조찬 때 이씨 송환을 새 정부의 대북정책 변화를 보여주는 강력한 신호로 활용하자고 진언하긴 했지만, 체계도 없는 이런 ‘깜짝 발표’는 민주적인 대통령에게 어울리지 않는 처사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중요한 정책은 충분히 논의한 뒤 신중히 결정하는 것이 순리였다. 그런데 불쑥 터뜨렸으니 수습할 일이 난감했다. 그래서 3월10일 열린 첫 통일관계장관회의에서 나는 이씨 북송 문제를 전략회의로 넘기기로 했던 것이다.
3월11일 아침 일찍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 있는 안기부장 전용실에서 통일 관계 전략회의를 소집했다. 이때까지 참석자들은 내가 왜 그렇게 이른 시간에 모이게 했는지 모르고 있었다. 나는 박 비서실장이 도착하자 9일 저녁 청와대 만찬 때 일을 보고하라고 눈짓을 보냈다. 하지만 그는 짐짓 모른체했다. 결국 내가 먼저 ‘이씨 북송 방침’을 밝혔다. 예상대로 모두 놀라며 냉담한 반응이었다. 그동안 북쪽에서 이씨 송환을 끈질기게 요구했지만 노태우 정부에서 조건을 달아 반대해왔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들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다시금 박 실장 쪽으로 ‘왜 갑자기 지금 논의해야 하는지’ 그 배경을 설명해주라는 눈짓을 보냈으나 그는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 할 수 없이 또 내가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모두들 너무 놀라 말이 없었다. ‘엠바고’ 효력이 언제까지 갈지 몰라 전략회의 도중 나는 오인환 공보처 장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한국일보> 편집국장과 주필 출신인 그는 그날 오후 3시를 넘기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날 오후 3시 이전에 송영대 통일원 차관을 통해 ‘이씨의 조건없는 북송 허용’을 발표하기로 결정했다. 또 송환이라는 용어는 쓰지 않기로 했다. ‘송환’이라 하면 전쟁포로의 신분임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신 ‘방북 허용’이라는 중립적 표현을 하기로 했다.
곧바로 통일원으로 돌아온 나는 이씨 방북 관련 기본 계획안을 작성해 정식으로 대통령의 재가를 얻는 절차에 착수했다.
먼저 배경을 설명했다. “새 정부 출범에 따른 민족화합 차원에서, 남북관계를 우리가 주도한다는 통치권자의 정치적 결단에서 이씨의 방북을 허용한다. 이는 대통령 취임사에서 밝힌 과감한 통일 의지와 민족 당사자 원칙에도 부합한다.” 추진 방침은 이랬다. “이씨의 건강과 희망을 고려한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조건 없이 방북을 허용하되 방북 통로는 판문점을 활용한다. 당국간 접촉을 통해 실무 절차를 협의하고 방북 안내는 적십자사에서 주관한다. 또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절차에 따라 빠른 시일 안에 실현되도록 한다. 새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전향적 의지가 부각될 수 있도록 홍보 대책을 강구한다.” 방북 일자는 ‘3월22일’을 복안으로 정했다.
이씨 북송 관련 모든 업무는 내가 직접 지휘하기로 했다. 종전 관례로는 안기부가 접촉 창구였으나 이번엔 통일원이 맡기로 했다. 다만 우방에 알리는 일은 외무부가 하기로 했다. 안기부와 경찰청은 민간단체들의 환송식이나 반대시위 같은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관리하고, 필요하다면 풀기자단을 구성해 보도에 협조하도록 공보처에 요청했다. 나는 이를 통해 갓 출범한 통일원의 위상을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보여주고 싶었다.
한완상 전 부총리
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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