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한상대 뒤 최재경 중수부장 한상대 검찰총장이 30일 오전 사퇴 기자회견을 마치고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을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뒤쪽으로 최재경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의 모습이 보인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청·법무부 등돌리자 ‘백기’
한상대 검찰총장이 30일 검찰을 떠났다. 애초 ‘신임을 묻는 사표’를 내겠다고 했지만 이날 아침 태도를 바꿔 조건없이 사퇴했다. 검찰 개혁안도 서랍 속에 넣은 채 공개하지 않았다. 그는 “밤새 고민하다가, 결국 깨끗이 사직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고 누를 안 끼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 ‘고립무원’ 사퇴 자초 한 총장은 지난 29일 겉으론 사퇴 얘기를 꺼내면서도 스스로 이를 용납하지 못하는 태도를 취했다. 사표의 조건으로 임명권자인 이명박 대통령의 ‘신임’을 내걸었고, 그동안 준비해온 검찰 개혁안 발표를 강행하려 했다. 하지만 이날 “떠나는 사람은 말이 없다”며 표표히 자리를 떴다. 하루 사이 180도 달라진 모습이었다. 한 총장으로선 검찰 안팎의 사퇴 압박에 더는 버티기 힘들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검찰 개혁안 문제로 의견이 맞선 최재경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에 대해 무리한 감찰을 지시한 게 직접 원인이 됐다. 이로 인해 자신을 보좌한 대검 참모들은 물론 까마득한 후배인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들한테서도 ‘용퇴’를 요구받는 ‘수모’를 겪었다. 외부의 사퇴 요구에 직면했던 한 총장으로선 내부의 입지마저 크게 흔들리는 결정타를 입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믿었던 청와대와 법무부가 등을 돌리자 한 총장도 모든 걸 내려놨다.
권재진 법무부 장관은 28일 최 중수부장에 대한 감찰 사실이 알려지자, 곧 “감찰은 적법절차에 따라 수행하고 검찰개혁 논의는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며 한 총장에게 ‘경고’를 보냈다. 청와대도 관련 내용을 전해 듣고 한 총장에게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통보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 자기 잘못은 언급도 안해 한 총장은 이날 오전 8시께 박계현 대검 대변인에게 연락해 오후 2시로 잡혔던 사퇴 발표 일정을 오전 10시로 앞당기라고 지시했다. 검찰 개혁안 발표도 없다고 했다. 최근 취재진을 피해 대검 청사 지하주차장으로 출근했던 한 총장은 이날 오전, 오랜만에 현관 입구로 들어오며 의외의 미소를 지었다.
오전 10시, 한 총장은 취재진 100여명에 둘러싸여 회견장으로 들어섰다. 손에는 직접 쓴 사과문 한장을 쥐고 있었다. 곁에는 박 대변인 등 3명만이 함께했다. 연단 위에 오른 한 총장은 마이크 앞에 서 잠시 숨을 고른 뒤 옆으로 한 걸음 옮겨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저는 오늘 검찰총장직에서 사퇴합니다”로 시작한 그의 사과문은 8문장에 불과했다. 현직 검사의 금품수수와 성추문을 언급했을 뿐, 한 총장 자신의 과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사과문을 다 읽는 데 1분 남짓 걸렸을 뿐이다.
이날 사퇴 발표 전에 대검 차장 및 대검 간부들이 총장을 찾아가 “그동안 잘 못 모셨다”고 사과했다. 이에 한 총장도 “정말 미안하다. 특히 최재경 부장한테 피해를 줘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고 한다. 한 총장은 10시15분께 마지막으로 청사를 떠날 때 최 중수부장을 비롯한 대검 간부들의 환송을 받을 수 있었다.
김정필 기자 fermat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