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새벽, 서울 영등포구 ㄴ공원의 장애인 화장실 안에서 노숙인들이 바닥에 누워 잠을 자고 있다. 올 겨울 기록적 한파 때문에 화장실에서 추위를 견디는 노숙인은 서울에만 적어도 수백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문틈 휴지로 막고 난방기옆 칼잠
면적 넓은 여성용 장애인칸 선호
쉼터 집단생활·규칙 피해 찾아들어
‘노숙인 무섭다’ 불평민원도 종종
서울시 “개별방 주는 희망원룸 운영”
면적 넓은 여성용 장애인칸 선호
쉼터 집단생활·규칙 피해 찾아들어
‘노숙인 무섭다’ 불평민원도 종종
서울시 “개별방 주는 희망원룸 운영”
르포 l 노숙인의 엄동설한 아지트
14일 밤 10시30분, 서울 용산구 ㄱ공원의 어느 공용화장실에서 기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쓱쓱쓱.’ 노숙인 김아무개(53)씨가 두 평 남짓한 장애인용 화장실 바닥을 휴지로 닦고 있었다. 김씨는 이어 화장실 바닥에 신문지를 깔았다. 작은 비닐을 뭉쳐 화장실 문틈도 막았다. 바깥 기온은 영하 4도였지만, 화장실 안은 라디에이터가 가동되고 있어 제법 따뜻했다. 김씨는 그대로 누웠다.
지난해 11월부터 김씨는 이 화장실을 찾았다. 인적이 뜸해지는 밤 9시에 들어와 사람의 발길이 시작되는 아침 6시에 화장실을 나선다. 공원관리인의 눈을 피하고 시민들에게도 불편을 끼치지 않으려고 나름의 ‘규칙’을 정했다.
날이 바뀐 15일 새벽 1시께, 서울 영등포구 ㄴ공원의 장애인용 화장실에서도 세 명의 노숙인이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40대로 보이는 남자 노숙인은 화장실 바닥에 종이 박스, 은박 돗자리, 신문지를 차곡차곡 쌓아 한기를 막았다. 화장실 문틈은 휴지와 종이로 틀어막았다. 그는 검은색 파카를 입은 채로 화장실 라디에이터에 바짝 붙어 모로 누워 자고 있었다. 바닥에는 먹다 남은 초코바가 뒹굴었다.
올겨울 기록적 한파를 화장실에서 견디는 노숙인은 서울에만 적어도 수백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12월 전국노숙인복지시설협회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서울지역 노숙인은 모두 4374명으로 이 가운데 쉼터 등에 입소하지 않고 거리에서 지내는 이는 964명이다.
“서울시 모든 공원의 공용화장실에서 노숙인들이 잔다고 보면 돼요. 그나마도 힘 있는 사람들만 자요. 약한 사람들이나 노인들이 가면 무시당하고 심지어 얻어맞기도 하죠.” 서울시청 앞에서 만난 50대 초반의 노숙인이 말했다. 쉼터의 집단생활을 꺼리는 거리의 노숙인들에게 공용화장실은 ‘탐나는 잠자리’인 셈이다.
‘거리 노숙인’들은 원래 서울역 또는 지하철역 등에서 겨울을 보냈다. 그러나 최근 역사에서 노숙인을 몰아내는 단속이 이뤄지면서 이들이 공용화장실로 몰리고 있다는 게 관련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현재 서울시에 있는 720여개 공중화장실 가운데 24시간 개방하는 화장실은 616개다. 이 중 상당수는 동파 방지를 위해 라디에이터 등 난방시설을 밤새 가동한다.
“노숙인들은 장애인용 화장실을 선호하고, 그중에서도 여성 칸을 더 선호한다”고 용산구 ㄱ공원 화장실 관리 담당자 박아무개(47)씨가 말했다. 면적이 넓은 여성 장애인용 화장실은 노숙인 3명이 한꺼번에 들어가 잘 수 있을 정도다. 평소 이용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박씨는 “청소 시간인 아침 8시에 와 보면 사람들은 이미 사라졌는데, 샤워를 하고 간 흔적이 종종 눈에 띈다”고 전했다.
서울시에는 노숙인을 위한 쉼터가 39곳이나 있다. 난방은 물론 비교적 쾌적한 조건에서 숙식을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도 노숙인들은 쉼터가 아닌 공용화장실을 선호한다. “쉼터에선 음주 금지 등 ‘규칙’을 지켜야 하거든요. 여러 사람이 모여 있으니 ‘통제’도 받아야 하고. 노숙인들 입장에서는 이런 규칙과 통제가 있는 쉼터를 ‘불편한 곳’으로 여기고, 제약 없이 혼자 자유롭게 지내는 화장실을 ‘안락한 곳’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에서 노숙인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박재서 사회복지사가 말했다.
노숙인 때문에 공용화장실 이용이 불편하다는 민원이 종종 제기되기도 하지만, 갈 곳이 없어 이곳을 찾는 노숙인들을 무작정 내몰 수는 없는 일이라 서울시의 고민도 깊다. 난방·숙식 말고 개인의 자유와 사생활 존중이 가능한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서울시 자활지원과 관계자는 “개인생활 보장을 바라는 노숙인들의 요구를 반영해 고시원을 통째로 빌려 노숙인들에게 개별 방을 제공하고 취업을 돕는 ‘희망원룸’ 사업을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집단 수용 중심의 ‘시설’과 개인 생활 중심의 ‘주거’의 중간 개념인 셈인데, 이런 사업이 성공적으로 정착되면 기존 노숙인 쉼터들도 같은 방식으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규남 조애진 기자 3strings@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형 대신 노역형” 30대, 벌금 납부한 형 때문에 ‘들통’
■ [단독] 이동흡 업무추진비, 주말·휴일 집 근처서 45차례…30~40만원 고액결제도
■ MB “‘4대강 수출 반대’ 시민단체는 반국가적”
■ 말단사원에서 여성 사장 되기? 차라리 별을 따지
■ 박근혜 주변 사기꾼들, 왜 “공약 버리라”고 하나
■ “형 대신 노역형” 30대, 벌금 납부한 형 때문에 ‘들통’
■ [단독] 이동흡 업무추진비, 주말·휴일 집 근처서 45차례…30~40만원 고액결제도
■ MB “‘4대강 수출 반대’ 시민단체는 반국가적”
■ 말단사원에서 여성 사장 되기? 차라리 별을 따지
■ 박근혜 주변 사기꾼들, 왜 “공약 버리라”고 하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