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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사형수였던 버스기사 “과거 아닌 오늘의 나를 봐주세요”

등록 2013-06-06 20:27수정 2013-06-07 18:09

버스기사 신상진(가명·52)씨가 3일 오후 이른 저녁을 먹은 뒤 버스 운행에 나서고 있다. 출소자 출신으로 사회의 냉대와 차별을 겪은 신씨는 차별금지법 입법이 좌절된 데 실망감을 드러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버스기사 신상진(가명·52)씨가 3일 오후 이른 저녁을 먹은 뒤 버스 운행에 나서고 있다. 출소자 출신으로 사회의 냉대와 차별을 겪은 신씨는 차별금지법 입법이 좌절된 데 실망감을 드러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차별 대신 차이로-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9. 출소자 자립 막는 ‘전과자’ 낙인
버스 안에선 온갖 사연이 뒤엉킨다. 다양한 사연, 저마다의 배경을 지닌 이들이 날마다 버스에 오른다. 1000원 안팎의 요금만 내면 누구나 제 권리를 누려 마땅하다. 서울에서 안양을 오가는 버스 운전사 신상진(가명·52)씨에게 이런 믿음은 더욱 단단하다.

“어서오세요.” 버스 문이 열리기도 전에 반가운 목소리가 먼저 손님을 반겼다. 버스에 오르던 외국인의 구릿빛 웃음에서, 한국인의 환대가 익숙치 않음이 느껴졌다. “이 버스가 대학교와 공단을 두루 지나칩니다. 외국인 노동자들과 교환학생들이 많이 타지요. 일부러 외국인들에겐 더 반갑게 인사합니다.” 신씨는 3일 서울 구로공단을 지나며 말했다.

“임신부나 어르신들이 버스에 타시면 짐을 들어드리고, 장애가 있는 분들께는 승·하차에 도움을 주려고 노력을 하지요. 내가 운전하는 버스만은 약한 사람들에게 포근한 공간이었으면 좋겠어요.”

취업하려 했지만 거절만 당하다
과거 문제 안삼는 회사에 취업
“우리 사회가 차별 지워준다면
다른 이들 도우며 살아갈텐데…”

신씨가 ‘넘치게’ 친절한 운전사가 된 데는 사연이 있다. 그에게 버스 운전사로서의 삶은 3년 전 기적처럼 주어진 선물이다.

그는 사형수였다. 죄수번호 2225. 교도소 안에서조차 사형수의 낙인은 가장 깊이 새겨졌다.신씨의 가슴엔 붉은 명찰이 박음질되었다. 하얀 명찰을 단 다른 죄수들과 ‘미결수’ 신분인 사형수는 구별됐다. 사형이 구형되는 순간 채워진 수갑은, 재판이 끝날 때까지 밥을 먹을 때도, 잘 때도 그의 두 손을 묶고 있었다.

그의 운명은 남들보다 낮은 데서 시작됐다. ‘첩이 낳은 자식’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가족들마저 홀대했다. ‘나는 왜 평범하게 태어나지 못했을까?’ 어린 시절을 괴롭힌 물음이다. 차별과 멸시는 아무리 거듭돼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20여년 전인 1991년, 자신과 어머니를 욕되게 한 데 격분해 그는 친족 2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모든 게 끝나버린 듯했던 그의 삶에도 한가닥 희망이 남아 있었다. 참회의 나날 끝에 사형수에서 무기수로 감형되는 기회를 얻은 신씨는 교도소에서 각종 자격증과 상장을 30여개 따냈다. 그의 노력에 아내와 두 딸의 정성이 더해져 2010년 3·1절 특사로 석방됐다. 사회가 허락한 첫 기회였다.

자립은 쉽지 않았다. 택시와 버스를 운전했던 경험을 되살려 자격증을 새로 취득했다. 버스회사 10여곳의 문을 두드렸지만 거절당했다. 면접에서 좋은 느낌을 주고받아도 채용 소식은 없었다. “암암리에 범죄 경력 조회를 했겠지요. 의료보험 서류에도 수감기간은 ‘특수기간’으로 표기됩니다.” 일용직 일자리도 찾기 어려웠다.

1년6개월 만에 두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과거를 묻지 않는 버스회사였다. “자격, 사람됨, 과거 버스 운행 경력만을 보고 일자리를 준 고마운 회사지요.” 6개월의 수습기간 끝에 그는 정직원으로 채용됐다. 현재는 버스 운전사로, 법무부의 교정위원으로 활동한다.

지난 4월 신씨는 국회에서 추진중이던 ‘포괄적 차별금지법안’ 입법이 좌초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가 이해하기로, 차별금지법은 누군가 자신처럼 전과나 출생에 따른 차별을 받지 않도록 나라가 보장한다는 법안이었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출소자들에 대한 일자리 차별도 금지될 것이다.

“일류 민주국가가 되려면 누구나 노력한 만큼 기회를 구할 수 있는 세상이 돼야 할 텐데…. 저같은 전과자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서로 능력과 내면, 지금의 모습만 보고 대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신씨는 여전히 두렵다. “동료들은 그저 저를 사업에 실패했던 가장으로만 압니다. 늦게라도 알게 되면 어쩌나 전전긍긍이지요. 겨우 저를 받아들이고 성실히 살아가는 딸들에게 짐은 안되고 싶어요.” 내내 밝았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차별금지법안은 신씨의 두려움을 지울 수 있을까. “제 떳떳치 못한 과거로 인해 차별받지 않아도 된다고 우리 사회가 말해준다면, 다른 이들을 더 보살피면서 살아갈 수 있겠죠.”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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