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군청 공무원들이 부실한 건물을 눈감아주지 않았다면, 소망유치원 선생님들이 따로 술을 마시지 않았더라면 23명의 생명이 안타깝게 사라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2013년 7월 사설 병영캠프에서 또 5명의 학생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1999년 씨랜드 사건 당시의 후회는 14년 뒤에도 반복된다. 사진은 1999년 씨랜드 화재 참사 어린이 분향소.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토요판] 표창원의 죄와벌
<24> 씨랜드 수련원 & 사설 병영캠프 참사
<24> 씨랜드 수련원 & 사설 병영캠프 참사
544명이 묵고 있던 수련원에
‘모기향 발화’ 추정되는 불이 났다
교사와 함께 있던 마도초등학생은
42명 전원이 무사했지만
301호 18명의 소망유치원생은
교사의 부재 속에 모두 숨졌다 씨랜드는 인허가를 받기 위해
시공사·감리사 관계자 매수하고
공무원들의 비호를 받았다
16명 구속되고 55억 보상했지만
종합 안전대책이 미비한 사이
캠프 간 5명의 학생이 또 죽었다 1999년 6월30일 오전 1시30분께 경기도 화성군(현 화성시) 소재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 3층 건물에서 벌건 화염이 솟아올랐다. 곧이어 119상황실에 긴급 신고가 접수되었고 소방차들이 출동했다. 소방서에서 현장까지는 70㎞가 넘는 거리였다. 소방차들이 출동하는 사이 건물 내부 여기저기에서 ‘불이야’라는 비명 소리와 함께 잠에서 깬 교사들이 어린이들을 대피시키는 부산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바닷가에서 1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엔 철골 골조물에 벽돌을 쌓은 뒤 바깥벽에 장식용 목재를 덧씌운 3채의 건물이 이어져 있었다. 허가받은 총 수용인원은 630명으로 화재가 발생하던 날엔 서울 소망유치원생 42명, 서울 공릉미술학원생 132명, 경기도 군포 예그린유치원생 65명, 부천 열린유치원생 99명, 화성 마도초등학교 학생 42명 등 수련생 497명과 인솔교사 등 모두 544명이 묵었다. 대부분 어린이이기 때문에 사상자가 발생한다면 엄청난 비극이 될 폭발성을 안고 있었다. 목숨과 바꾼 김영재 교사의 제자 사랑 불이 난 301호에는 서울 소망유치원생 어린이 18명이, 건너편 방에선 화성 마도초등학교 6학년 학생 42명이 잠들어 있었다. 마도초등학교 홍상국(당시 46살) 교사와 김영재(당시 38살) 교사는 학생들과 함께 훈련과 장기자랑, 축제 및 캠프파이어를 마치고 ‘학생들과 함께’ 같은 방에서 자고 있었다. 반면 소망유치원의 천아무개(당시 35살) 원장과 공동운영자인 남편 및 3명의 여교사 등은 314호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마도초등학교 학생들은 ‘성인 보호자’와 함께 자고 있었지만, 더 어리고 위급상황 시 대처 능력이 없는 소망유치원생들은 보호자도 없이 화염 속에 방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결국 301호에서 자고 있던 소망유치원생 18명은 모두 사망했지만, 마도초등학교 학생들은 모두 구조되었다. 학생들을 모두 구조한 뒤 홍상국 교사와 김영재 교사는 탈진해 쓰러졌다. 홍 교사는 다행스럽게도 출동한 소방관들에 의해 구조되었지만 김 교사는 화재가 진압될 때까지 발견되지 못한 채 실종되었다가, 안타깝게도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김 교사는 자신이 인솔한 마도초등학교 학생들을 모두 구조한 뒤 다른 어린이들도 구조하려고 있는 힘을 다 쓰다가 306호 방 안에서 쓰러진 채 숨을 거둔 것으로 확인되었다. 소망유치원 어린이들에게 닥친 비극이 더욱 안타까운 것은, 화재가 시작된 곳이 소망유치원생들이 ‘성인의 보호 없이’ 자고 있던 301호였기 때문이다. 소방기관, 경찰,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화재 수사 결과 그 방에 켜 둔 모기향이 원료에 인화성 물질이 포함된 가방에 닿으면서 발화되었다고 ‘추정’했다. 피해 학부모 등은 ‘모기향 발화설’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했지만 불이 처음 난 곳이 301호라는 사실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 사고로 19명의 어린이와 인솔 교사 4명 등 모두 23명의 안타까운 생명이 산화하고 6명이 부상당했다.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은 처음엔 ‘철골구조 벽돌건물’로 제대로 된 인허가를 받은 ‘청소년 수련시설’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은 콘크리트 1층 건물 위에 52개의 컨테이너를 얹어 2~3층 객실을 만든 임시건물이었다. 청소년 수련원으로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하고 여러 위험요소를 안고 있는 구조물이었다. 생활관에는 화재경보기가 있었으나 불량품으로 판명되었고, 스티로폼, 목재 등 인화성이 강하고 열전도가 높은 물질들로 채워져 있었다. 비치된 소화기들 중 상당수도 사용불능 상태인 것이 발견되었다. 경찰은 곧 수사에 돌입해 사고 다음날인 7월1일, 씨랜드 수련원 건물주 박아무개(당시 40살)씨를 건축법 및 소방법 위반으로, 서울 소망유치원 원장 천씨 및 교사 신아무개(당시 28살)씨 등 4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경찰은 이어 건물주와 건축사 및 건축설계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건축 관계자들 역시 긴급체포했다. 이렇게 큰 문제를 안고 있는 청소년 수련시설이 버젓이 영업을 하며 어린이·청소년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일이 ‘인허가 관청’의 묵인 없이 가능했을까? 경찰 수사 결과 화성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은 사고 발생 2년 전인 1997년 6월에도 허가를 받지 않고 롤러코스터 등 놀이시설을 설치하고 영업을 하다가, 1998년 2월에도 무허가 건물을 지어 수련시설로 운영하다가 적발당했다. 특히 1997년 10월부터 1998년 1월 사이에 한국전기안전공사로부터 전기안전 점검 시설 개선명령을 받았으나 전혀 이행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무수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화성군은 1998년에 건축허가를 내주었으며, 건축물대장에는 이 건물이 1998년 2월에 착공되어 12월에 완공된 것으로 기재되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1999년 3월에는 경기도에서 화성군에 ‘청소년 수련시설에 대해 재난예방 차원의 시설점검을 하라’는 지시를 내렸으나 화성군은 그 지시를 이행하지 않았다. 경찰의 수사는 화성군을 겨냥하기 시작했다.
‘가족 몰살’ 협박에도 버틴 이장덕 계장
사건 발생 5일째인 7월4일, 화성경찰서는 씨랜드 건물 설계변경과 용도변경 과정에서 불법 사실을 묵인한 혐의(업무상 중과실 치사상 등)로 화성군 강아무개(당시 46살) 사회복지과장 등 화성군 공무원 6명을 직권남용과 업무상 중과실 치사상, 건축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경찰 수사에서 씨랜드 쪽은 갖가지 변칙, 불법 행위를 되풀이하면서 시공회사와 감리회사 관계자들을 매수한 것은 물론, 그때마다 화성군청 공무원들의 묵인 또는 비호를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경찰의 강도 높은 수사를 받던 화성군 전 부녀복지계장 이장덕(당시 40살)씨가 경찰에 제출한 비망록에는 1997년 9월부터 강 사회복지과장으로부터 씨랜드가 접수한 ‘청소년 수련시설 설치 및 운영허가 신청서’를 즉각 처리해주라고 부당한 압력을 받은 과정이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이장덕 계장은 상관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고 원칙을 지키며 버텼고, 강 과장의 부당한 지시와 압력, 폭언에도 아랑곳하지 않자 폭력배들이 이 계장의 사무실을 찾아와 행패를 부리고 집에 전화를 걸어 ‘가족을 몰살시키겠다’는 협박을 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1998년 초 설날 연휴 기간에는 강 과장이 이 계장에게 ‘씨랜드에서 보낸 것’이라고 말하며 10만원짜리 수표 5장이 든 봉투를 던져주고 갔지만 이 계장은 씨랜드 계좌로 이 돈을 모두 송금하고 입금증을 증거로 남겨두었다. 1998년 10월, 결국 화성군은 이 계장을 ‘민원계장’으로 전보 발령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공직 사회에는 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거부하기 어려운 상관의 부당한 지시를 온몸으로 버티고 막아낸 이 계장에 대한 칭송이 잇따랐다.
경찰의 수사는 김아무개(당시 59살) 화성군수에게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비리의 핵심인물로 구속된 강 과장 역시 ‘김 군수의 지시와 방조하에 이루어진 일’이라고 진술했다. 김 군수는 버텼다. 그사이 경찰은 씨랜드의 소방시설 미비를 확인하고도 ‘양호’하다고 허위 기재하고 안전교육을 하지도 않고 실시한 것처럼 기록한 혐의로 소방공무원 2명을 긴급체포했다. 경찰은 7월9일 김 군수에 대한 구속영장을 검찰에 신청했지만 검찰은 이를 반려했다. 김 군수가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하는데 이를 입증할 증거가 강 과장의 진술뿐이라며 강 과장과 김 군수 사이의 대질신문을 실시해 혐의를 입증하라는 요구였다. 김 군수는 병원에 입원한 채 강 과장과의 대질신문을 끝까지 거부했다.
그사이 경찰은 이아무개 전 부군수(당시 45살·행정자치부 실업대책반장)가 이 계장의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하자 있는 씨랜드 허가서류를 조작해 승인(허위 공문서 작성)한 혐의로 입건했다. 7월13일 경찰이 보강수사를 거쳐 다시 신청한 김 군수에 대한 구속영장을 검찰은 다시 기각했다. 그동안 김 군수의 지시 및 묵인 사실을 진술했던 강 과장이 진술을 번복했기 때문이다. 한편 경찰은 1999년 7월14일, 지난 1997년 12월에 이 계장을 찾아가 행패를 부리며 협박한 폭력배 3명의 신원을 확인하고 이들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과 검찰은 화성 씨랜드 화재참사에 대한 수사 결과 김 군수를 제외한 화성군 공무원 6명과 씨랜드 박 대표, 건축 및 감리회사 관계자 및 소망유치원장 천씨와 폭력배 등 모두 16명을 구속 기소하면서 수사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8월1일 김 군수는 씨랜드 인허가 과정과는 상관없는 뇌물 1억3000만원 수수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었다. 화성지역 중소 건설업체로부터 각종 공사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각각 1000만원에서 1억원에 이르는 돈을 받아 챙긴 혐의가 드러난 것이다. 김 군수가 씨랜드와의 관련성은 끝까지 부인했던 이유에는 여러 명의 어린이가 사망한 책임을 지고 싶지 않다는 심리와 유족들에게 보상금이 지급되고 나면 책임있는 개인들에게 구상권 청구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훈장 반납하고 한국 떠난 김순덕 전 국가대표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금쪽같은 자식을 잃은 피해 부모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특히 부패와 비리로 위험한 임시건물에 허가를 내준 화성군과 소방당국, 그리고 어린이들만 남겨두고 술판을 벌인 유치원 교사들에 대한 원망은 극에 달했다. 분노한 부모들은 경찰과 국과수가 ‘모기향’을 화재 원인으로 제시하자 누전 등 시설과 구조의 문제를 덮으려는 시도라며 반발했다. 피해보상에 임하는 경기도의 자세 역시 부모들의 화를 돋웠다. 부모들은 어린이들의 목숨을 돈 몇 푼에 흥정하려는 태도를 보인다고 인식한 것이다.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화성군 김 군수가 법망을 벗어난 것도 분노의 대상이었다. 화성 씨랜드 참사 책임자들에 대한 법원의 1차 공판은 분노한 부모들의 항의가 이어지며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1999년 8월 씨랜드 참사로 6살 아들(도현)을 잃은 전 필드하키 국가대표 선수였던 김순덕(당시 33살)씨가 정부에 항의 편지를 보내며 국가로부터 받은 훈장들을 받납하는 일이 벌어졌다. 김씨는 편지에서 “원인 규명이나 대책을 마련해야 할 정부의 무성의와 무책임에 실망한 나머지 배신감까지 느낀다”고 밝히며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 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에서 금·은메달을 따낸 공으로 받은 체육훈장 맹호장, 국민훈장 목련장, 대통령 표창을 반납하고 뉴질랜드로 이민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실제로 1년 뒤 온 가족과 함께 이민을 갔다.
8월10일 경기도는 유족들과 보상금 및 위로금에 대해 합의했다. 총 55억4084만원에 이르는 보상금은 화성군이 전액 지급한 뒤, 책임있는 개인, 회사, 단체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행사하도록 결정되었다. 경기도는 재발방지를 위해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소방·안전기준과 청소년 수련시설 입소 연령, 지도교사 보호책임 강화 등의 내용을 담은 법 개정안 등을 정부에 건의했다. 아울러 도내 다중이용 시설에 대한 일제점검을 했다. 국무조정실에서는 건설교통부에 청소년 시설의 안전대책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에 건교부는 청소년 수련시설 등 5개종의 건물을 지을 때는 석고보드 등 불연재나 난연재 등을 반드시 사용해 내화구조를 갖춰야 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강력한 처벌을 받도록 의무규정을 마련했다. 아동복지법과 청소년활동진흥법, 건축법, 소방법 등이 정비된 것이다. 그러나 ‘수련원 등 숙박시설’ 안전에만 치우친 정부의 대책은 ‘청소년 수련활동’ 자체의 안전 확보 방안은 마련하지 않은 채 마무리되었다. 종합적인 ‘어린이·청소년 단체 활동 안전’에 대한 법제가 미비한 상태에서 2013년 7월, 해병대를 사칭하는 사설 병영캠프에 학생들을 내맡긴 공주사대부고의 결정이 5명의 학생을 죽음으로 내모는 비극으로 이어진 것이다.
학생들의 정신력을 강화한다며 안전 등이 확인 안 된 병영캠프에 반강제로 몰아넣은 관계자들의 책임에 대해서 철저한 수사와 처벌이 이루어져야 한다. 무엇보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재발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어린이·청소년 단체 활동에는 반드시 사전 안전교육이 이루어지고 안전관리 책임자가 지정되며, 인솔 교사의 입회·참관을 의무화하는 법제 마련이 시급하다. 아울러 학생이나 학부모, 교사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는 민주적 의사결정 방식이 모든 학교에 정착되어야 한다. 화성 씨랜드 참사 전에 문제를 인식하고 부당한 지시에 거부했던 이장덕 계장이 있었던 것처럼, 이번 공주사대부고의 병영 단체 체험학습의 논의와 결정 과정에도 문제를 인식하고 우려를 품었던 교사와 학부모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이들의 우려와 문제 제기와 비판이 보장되고, 효율성이 다소 저해되더라도 민주적인 논의를 거쳐 문제에 대한 점검과 안전장치의 마련이 이루어지는 관행이 정착되어야 한다.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철저한 진상규명과 엄중한 처벌, 그리고 확실한 재발방지책 마련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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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향 발화’ 추정되는 불이 났다
교사와 함께 있던 마도초등학생은
42명 전원이 무사했지만
301호 18명의 소망유치원생은
교사의 부재 속에 모두 숨졌다 씨랜드는 인허가를 받기 위해
시공사·감리사 관계자 매수하고
공무원들의 비호를 받았다
16명 구속되고 55억 보상했지만
종합 안전대책이 미비한 사이
캠프 간 5명의 학생이 또 죽었다 1999년 6월30일 오전 1시30분께 경기도 화성군(현 화성시) 소재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 3층 건물에서 벌건 화염이 솟아올랐다. 곧이어 119상황실에 긴급 신고가 접수되었고 소방차들이 출동했다. 소방서에서 현장까지는 70㎞가 넘는 거리였다. 소방차들이 출동하는 사이 건물 내부 여기저기에서 ‘불이야’라는 비명 소리와 함께 잠에서 깬 교사들이 어린이들을 대피시키는 부산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바닷가에서 1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엔 철골 골조물에 벽돌을 쌓은 뒤 바깥벽에 장식용 목재를 덧씌운 3채의 건물이 이어져 있었다. 허가받은 총 수용인원은 630명으로 화재가 발생하던 날엔 서울 소망유치원생 42명, 서울 공릉미술학원생 132명, 경기도 군포 예그린유치원생 65명, 부천 열린유치원생 99명, 화성 마도초등학교 학생 42명 등 수련생 497명과 인솔교사 등 모두 544명이 묵었다. 대부분 어린이이기 때문에 사상자가 발생한다면 엄청난 비극이 될 폭발성을 안고 있었다. 목숨과 바꾼 김영재 교사의 제자 사랑 불이 난 301호에는 서울 소망유치원생 어린이 18명이, 건너편 방에선 화성 마도초등학교 6학년 학생 42명이 잠들어 있었다. 마도초등학교 홍상국(당시 46살) 교사와 김영재(당시 38살) 교사는 학생들과 함께 훈련과 장기자랑, 축제 및 캠프파이어를 마치고 ‘학생들과 함께’ 같은 방에서 자고 있었다. 반면 소망유치원의 천아무개(당시 35살) 원장과 공동운영자인 남편 및 3명의 여교사 등은 314호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마도초등학교 학생들은 ‘성인 보호자’와 함께 자고 있었지만, 더 어리고 위급상황 시 대처 능력이 없는 소망유치원생들은 보호자도 없이 화염 속에 방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결국 301호에서 자고 있던 소망유치원생 18명은 모두 사망했지만, 마도초등학교 학생들은 모두 구조되었다. 학생들을 모두 구조한 뒤 홍상국 교사와 김영재 교사는 탈진해 쓰러졌다. 홍 교사는 다행스럽게도 출동한 소방관들에 의해 구조되었지만 김 교사는 화재가 진압될 때까지 발견되지 못한 채 실종되었다가, 안타깝게도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김 교사는 자신이 인솔한 마도초등학교 학생들을 모두 구조한 뒤 다른 어린이들도 구조하려고 있는 힘을 다 쓰다가 306호 방 안에서 쓰러진 채 숨을 거둔 것으로 확인되었다. 소망유치원 어린이들에게 닥친 비극이 더욱 안타까운 것은, 화재가 시작된 곳이 소망유치원생들이 ‘성인의 보호 없이’ 자고 있던 301호였기 때문이다. 소방기관, 경찰,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화재 수사 결과 그 방에 켜 둔 모기향이 원료에 인화성 물질이 포함된 가방에 닿으면서 발화되었다고 ‘추정’했다. 피해 학부모 등은 ‘모기향 발화설’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했지만 불이 처음 난 곳이 301호라는 사실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 사고로 19명의 어린이와 인솔 교사 4명 등 모두 23명의 안타까운 생명이 산화하고 6명이 부상당했다.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은 처음엔 ‘철골구조 벽돌건물’로 제대로 된 인허가를 받은 ‘청소년 수련시설’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은 콘크리트 1층 건물 위에 52개의 컨테이너를 얹어 2~3층 객실을 만든 임시건물이었다. 청소년 수련원으로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하고 여러 위험요소를 안고 있는 구조물이었다. 생활관에는 화재경보기가 있었으나 불량품으로 판명되었고, 스티로폼, 목재 등 인화성이 강하고 열전도가 높은 물질들로 채워져 있었다. 비치된 소화기들 중 상당수도 사용불능 상태인 것이 발견되었다. 경찰은 곧 수사에 돌입해 사고 다음날인 7월1일, 씨랜드 수련원 건물주 박아무개(당시 40살)씨를 건축법 및 소방법 위반으로, 서울 소망유치원 원장 천씨 및 교사 신아무개(당시 28살)씨 등 4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경찰은 이어 건물주와 건축사 및 건축설계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건축 관계자들 역시 긴급체포했다. 이렇게 큰 문제를 안고 있는 청소년 수련시설이 버젓이 영업을 하며 어린이·청소년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일이 ‘인허가 관청’의 묵인 없이 가능했을까? 경찰 수사 결과 화성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은 사고 발생 2년 전인 1997년 6월에도 허가를 받지 않고 롤러코스터 등 놀이시설을 설치하고 영업을 하다가, 1998년 2월에도 무허가 건물을 지어 수련시설로 운영하다가 적발당했다. 특히 1997년 10월부터 1998년 1월 사이에 한국전기안전공사로부터 전기안전 점검 시설 개선명령을 받았으나 전혀 이행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무수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화성군은 1998년에 건축허가를 내주었으며, 건축물대장에는 이 건물이 1998년 2월에 착공되어 12월에 완공된 것으로 기재되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1999년 3월에는 경기도에서 화성군에 ‘청소년 수련시설에 대해 재난예방 차원의 시설점검을 하라’는 지시를 내렸으나 화성군은 그 지시를 이행하지 않았다. 경찰의 수사는 화성군을 겨냥하기 시작했다.
7월21일 오전 ‘사설 병영캠프 사고’ 유가족들이 태안군 보건의료원 장례식장에서 공주사대부고 교장 파면을 요구하며 오열하고 있다.
공주/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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