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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민간인사찰 핵심물증 USB, 실종 미스터리

등록 2013-08-01 08:13수정 2013-08-01 16:01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항소심 공판이 열린 지난 5월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진경락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이 취재진을 피해 달아나다 복도 끝에 서서 취재를 거부하고 있다. 지난해 민간인 사찰 사건 재수사 당시 검찰 지휘부가 4.11총선 전에는 진 전 과장에 대한 수사를 못하게 막아 수사팀 검사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김태형 기자 cogud555@hani.co.kr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항소심 공판이 열린 지난 5월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진경락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이 취재진을 피해 달아나다 복도 끝에 서서 취재를 거부하고 있다. 지난해 민간인 사찰 사건 재수사 당시 검찰 지휘부가 4.11총선 전에는 진 전 과장에 대한 수사를 못하게 막아 수사팀 검사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김태형 기자 cogud555@hani.co.kr
지원관실 비선보고 문건 등 담겨
검찰 관계자들 “대검으로 넘어가
상당기간 돌아오지 않았다
최재경 중수부장 지시라고 들어”

공식절차 안 거쳐 증거 이관 기록 없어
수사검사들 사표 낸다며 항의하자
한상대 총장 ‘자율’ 보장 뒤 공수표
일부서 “전면 재수사해야” 지적
‘정치검사의 민낯’ 보도 그 뒤

<한겨레>는 올해 1월28일치부터 네 차례에 걸쳐 ‘정치검사의 민낯’ 시리즈를 보도했다. 첫회([바로가기] 정치검사의 민낯① 최재경 중수부장, 사찰 핵심물증 틀어쥐고 시간끌었다)에서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재수사 때 검찰 지휘부의 수사방해 의혹과 검사의 사표 파문을 보도했다. 다음날 한 검찰 중간간부는 취재진에게 “그 수사 때 난리가 났었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끼리도 ‘이건 기사가 나오면 큰일난다’고 그랬다. 그래서 꽁꽁 틀어막았고, 기사가 안 나올 줄 알았었다”고 귀띔했다. 이후 <한겨레>는 더 자세한 사건의 내막을 캐기 위해 후속 취재를 했다.

‘정치검사의 민낯’ 시리즈 첫회에서 ‘민간인 불법사찰 재수사 때 최재경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현 대구지검장)이 대검 디지털포렌식센터로부터 핵심 물증인 김경동 행정안전부 주무관의 이동식저장장치(USB·유에스비)에서 출력된 자료를 받아 바로 수사팀에 전달하지 않고 시간을 끌어 수사를 방해했다’고 보도한 내용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이 유에스비는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이 대검 디지털포렌식센터에 분석을 의뢰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겨레> 취재 결과, 수사팀 안에만 보관돼 있어야 할 이 유에스비가 뜻밖의 경로로 수사팀 밖으로 유출됐다는 사실이 새로 확인됐다. 이른바 ‘일심 충성’ 문건이 나왔던 이 유에스비는 핵심 중의 핵심 물증으로, 이것이 유출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검사들은 입을 모은다. 대체 당시 검찰 내부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이 지난해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을 재수사할 때, 이른바 ‘일심 충성’ 문건 등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비선 보고를 입증하는 핵심 자료가 담긴 유에스비가 수사팀을 떠나 대검찰청으로 넘어갔고, 상당 기간 돌아오지 않았다고 복수의 검찰 관계자들이 밝혔다. 핵심 증거물 자체가 수사팀 밖으로 유출돼 누군가 쥐고 있었다는 얘기다. 또 당시 증거물 가운데 이 유에스비 하나만 딱 집어 가져갔다는 것이다.

증거물을 분석한 내용이 수사보고서 형식으로 지휘라인인 대검에 보고되는 경우는 있다. 그러나 검사들은 “증거물 자체가 수사팀 외부로 나가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당시 수사 검사들도 유에스비가 수사팀 밖으로 나간 사실을 알게 된 뒤 반발했고, 한 검사가 내부통신망에 공개적으로 ‘사표를 내겠다’고 글을 올린 계기가 됐다고 한다.

■ 누가 ‘유에스비’를 쥐고 있었나 검찰은 2012년 3월16일 특별수사팀을 꾸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재수사에 나섰다. 팀장은 당시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장이던 박윤해 현 대구지검 서부지청 차장검사가 맡았다. 수사팀은 3월23일 장진수 주무관의 전임자였던 김경동 행정안전부 주무관의 자택 등을 압수수색해 뜻밖의 수확을 거뒀다. 김 주무관이 보관하던 유에스비를 확보한 것이다. 수사팀은 유에스비를 1차 분석해, ‘지원관실은 브이아이피(VIP)께 일심으로 충성하는 별도 비선을 통해 총괄지휘한다’는 내용이 담긴 이른바 ‘일심 충성’ 문건 등을 확보했다. 수사팀은 3월31일 이영호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 4월4일 최종석 청와대 행정관을 불러 조사한 뒤 피의자 신문조서에 ‘일심 충성’ 문건 등 자료를 첨부했다. 그런데 이런 자료들이 나온 유에스비 자체가 갑자기 서울중앙지검에서 자취를 감췄다.

복수의 검찰 관계자들은 유에스비의 행방에 대해 공통된 설명을 내놨다. 한 검찰 관계자는 “수사 중에 유에스비가 대검으로 넘어가 한참 동안 서울중앙지검으로 오지 않았던 것은 모두 알고 있던 사실이다. 수사 검사들은 ‘박윤해 팀장이 대검에 보내라고 했고, 유에스비를 가져오라고 한 사람은 최재경 중수부장(현 대구지검장)이다’라고 들어 그렇게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다른 검찰 관계자는 “‘일심 충성’ 문건이 유에스비에서 나온 사실을 알고 최 중수부장이 유에스비를 들고 오라고 한 걸로 알고 있다. 검찰 수사관이 직접 가서 증거물을 담당하는 서울중앙지검 검사한테 받아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유에스비가 수사팀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수사 검사들은 증거물 관리 담당자를 질책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당시 증거물을 담당한 검찰 관계자는 “관련된 얘기는 말씀드릴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유에스비의 당시 행방을 알 만한 이들은 확인을 거부하거나 부인했다. 박윤해 차장은 “그 부분은 일일이 확인해 주기 그렇다. 솔직하게 얘기할 수는 있는데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나는 안 끼어들었으면 좋겠다. 사실이 아닌 걸로 정리해 줬으면 한다. 다만 수사를 방해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는 점을 말씀드린다. 최재경 지검장한테 직접 확인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최재경 대구지검장은 “그런 기억이 없다. 박윤해 차장 등에게도 확인해 보니 김경동 주무관의 유에스비를 서울중앙지검에서 중수부에 보내거나 받은 바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수사는 대검 중수부가 지휘했다.

유에스비가 대검으로 넘어갈 때 공식 절차를 밟지 않아, 관련 기록도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별수사 경험이 많은 검찰 관계자는 “압수된 증거물 자체가 수사팀 밖으로 나가는 건 상식 밖이다. 훼손 우려도 있어 수사팀 외부로 내보내지 않는다. 다른 검찰청에 대여할 때도 반드시 기록에 남긴다”고 말했다.

유에스비를 가져간 이유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한 검찰 중견 간부는 “압수를 당한 쪽에선 엄청난 물건을 빼앗겼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면 누군가에게 ‘우리가 뭘 빼앗겼는데 거기 중요한 게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래서 누군가 그걸 지목해 가져오라고 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 ‘사직서만은 내지 말아달라’ 2012년 4월7일 새벽, 검찰 내부통신망인 ‘이프로스’에 한 검사가 ‘사표를 내겠다’고 글을 올렸다. 특별수사팀 소속이었다. 4월6일 저녁 박윤해 팀장과 수사팀 검사들이 함께 저녁을 먹고 난 몇시간 뒤였다. 검찰 관계자는 “유에스비를 대검에서 가져간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 수사 검사들이 ‘어떻게 이런 일이 있느냐’며 황당해했다. 유에스비 사건은 검사들의 불만이 표출된 계기였고, 그전부터 사건의 핵심 인물인 진경락(공직윤리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에 대한 수사를 하지 못하게 해 검사들의 불만이 쌓일 대로 쌓인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한 검사가 사표를 내겠다고 글을 올린 뒤 수사팀의 다른 검사들은 모여서 회의를 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박윤해 팀장이 수사 검사들을 만나려고 했으나, 검사들이 피했다. 당시 회의에서 2명의 검사도 사표를 내겠다고 했다고 전해진다.

4월8일 검사들의 요구로 최교일 서울중앙지검장 등과 검사들이 회의를 했다. 검사들은 ‘뭔가 각본에 따라 수사가 진행되는 것 같다. 수사팀 의견에 따라 수사를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취지의 요구사항을 작성해 전달했다. 사표를 내겠다고 글을 올린 검사도 이날 회의에 참석했다고 한다. 내부통신망에 올린 글도 삭제됐다. 일요일인 이날 아침 최재경 중수부장이 이 검사의 집을 직접 찾아갔고, 검사의 대학 동문들도 찾아가 사직을 만류했다. 최교일 지검장은 검사들의 요구를 모두 수용했고, 당시 한상대 검찰총장에게 보고했다. 한 총장도 이를 받아들였다. 대신 한 총장 등은 검사들에게 ‘사직서만은 내지 말아달라’고 했다고 한다. 검사들은 이제 뜻대로 수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오판이었다.

■ 하루 만에 배반당한 검사들 검찰 지휘부의 약속이 공수표였다는 것은 바로 다음날 드러났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팀 검사들은 4월9일 진경락 과장을 체포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박윤해 팀장이 대검의 뜻이라며 진 과장 체포를 4·11 총선 당일이나 그 이후로 하자고 했다”고 전했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의 핵심 인물은 진경락(46) 과장이었다. ‘일심 충성’ 문건도 그가 작성했다. 수사팀은 처음부터 그를 서둘러 조사하려고 했으나 불가능했다. 검찰 관계자는 “당시 수사지휘의 핵심은 진경락 과장을 총선 전에는 구속하지 말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검찰은 3월27일, 4월5일, 4월7일, 세 차례에 걸쳐 진 과장을 소환했지만 그는 불응했다. 그런데도 검찰은 잠자코 있었다. 수사팀은 총선이 끝난 4월13일 진 전 과장이 자진 출석한 뒤에야 그의 신병을 확보했다. 5월 중순 검찰 지휘부는 검사 5명을 새로 수사팀에 투입하는 형식을 빌려 부당한 수사지휘에 반발했던 몇몇 검사들을 솎아냈다. 검찰이 재수사까지 했지만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의 몸통을 규명하지 못했다. 한 검찰 간부는 “전면 재수사해야 한다. 정권이 바뀌었고 당사자들도 새로운 진술을 할 수 있다. 제대로 수사를 하면 권재진 전 법무부 장관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권 전 장관은 국무총리실과 청와대에서 민간인 불법사찰에 대한 증거인멸 작업이 벌어질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었고, 지난해 검찰의 재수사 때 검찰을 지휘하는 법무부 장관이었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와이티엔>(YTN) 노조가 지난 3월 민간인 불법사찰과 관련해 이명박 전 대통령 등을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고소·고발한 사건이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부장 장영수)에 배당돼 있다. 이번이 세번째 수사다.

김정필 기자 fermat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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