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국정원 국정조사’ 청문회에 출석한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이정우 선임기자
원세훈에 앞서 구속영장 청구하려한 이유
댓글 수사결과 발표 시점·문구 등 ‘선거 영향’ 결론
‘청문회선 후보 비방글 알았나’에 집중…초점 빗나가 검찰은 국가정보원의 대선 여론조작 및 정치개입 사건을 수사하던 지난 5월 말 원세훈(62) 전 국정원장에 앞서 김용판(55)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의 구속영장을 먼저 청구하려고 했다. 같은 달 20일 서울경찰청을 압수수색하고 21일과 25일 김 전 청장을 불러 조사한 직후였다. 대선을 불과 사흘 앞둔 지난해 12월16일 국정원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 상황과 관련해 ‘허위 발표’를 해 대선에 직접 영향을 준 만큼 사안이 중대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김용판 전 청장은 국정원 직원의 불법 활동과 관련한 여러 증거물에 대한 보고를 받고도 ‘허위 발표’를 해 선거를 며칠 앞둔 시점에 특정 후보에 관해 선거운동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당시 내부 논의를 통해 원 전 원장과 김 전 청장의 신병 처리를 함께 하기로 하고 김 전 청장의 구속영장 청구를 뒤로 미뤘다. 하지만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원 전 원장에 대한 공직선거법 적용을 반대하면서 논란을 빚은 끝에 원 전 원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기로 하면서 김 전 청장도 불구속 처리되는 ‘어부지리’를 얻게 됐다. 검찰이 김 전 청장의 구속영장 청구를 우선 검토했던 이유는 경찰의 중간 수사 결과 발표 문구와 발표 시점 및 경위 등을 따져볼 때 김 전 청장의 선거개입 의도가 분명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지난 16일 국회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의 초점이 ‘김 전 청장이 박근혜·문재인 후보 지지·비방 댓글을 알았느냐 몰랐느냐’에 맞춰졌지만, 검찰 공소사실을 보면 김 전 청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를 입증하는 데는 당시 김 전 청장이 이를 알았는지 여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설령 김 전 청장이 대선·정치 개입 관련 글의 존재를 보고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당시로선 김 전 청장이 관련 글의 발견 여부를 단정적으로 말할 상황이 아니었는데도 ‘글을 게재한 사실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단정적으로 결론을 내고 발표하게 함으로써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것이 검찰의 기본 논리다. 게다가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디지털증거분석실의 폐회로텔레비전(CCTV) 동영상을 통해 당시 경찰 분석팀이 정치 관련 글 등을 확인하고도 이를 은폐한 정황까지 드러난 만큼, 검찰은 김 전 청장의 선거개입 의도가 더욱 뚜렷하다고 보고 있다. 서울경찰청은 지난해 12월13일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팀으로부터 디지털 증거분석 의뢰를 받았는데, 분석팀은 다음날 저녁 분석에 착수한 지 40분 만에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의 노트북 컴퓨터에서 삭제된 문서파일을 복구했다. 여기에는 30여개의 아이디와 닉네임, 비밀번호, ‘오늘의 유머’ 사이트 게시물 운영·관리 방식 등의 정보가 담겨 있었다. ‘오늘의 유머’ 1만7000여건 등 인터넷 사이트 접속 기록도 확보했다. 분석팀은 확보한 아이디로 인터넷을 검색해 정치·선거 관련 게시글도 여러 건 발견했으나 중간 수사결과 발표 당일 분석자료를 모두 폐기해 버렸다. 이런 내용은 김 전 청장에게 모두 보고됐다. 하지만 서울경찰청은 12월16일 ‘디지털 증거분석 결과, 문재인·박근혜 지지·비방 내용의 게시글·댓글을 게재한 사실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보도자료를 수서경찰서를 통해 배포했다. 수사를 다 끝낸 상황에서나 발표할 결론을 서둘러 언론에 공개한 셈이다. 선거에 영향을 줄 의도가 없었다면 ‘국정원 직원 아이디와 접속 기록 등의 증거가 있긴 하지만 문재인·박근혜 지지·비방 글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발표했어야 한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수사를 더 해야 할 상황에서 ‘발견되지 않았다’고 단정하면서 그런 글이 없다고 믿도록 투표를 앞둔 국민들을 속였다는 얘기다. 살인사건을 예로 들면 한층 이해하기 쉽다.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려는 ㄱ씨의 부인이 어느날 자택에서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 감식반이 현장을 감식한 결과 흉기에선 ㄱ씨의 지문이 나왔고 일부 혈흔도 발견됐다. 감식반은 옆집 주민들까지 만나 ‘부부싸움 소리가 들리다 갑자기 조용해졌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그런데 경찰은 투표일을 사흘 앞두고 ‘감식 결과, ㄱ씨가 부인을 살해한 사실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흉기를 국정원 직원이 쓴 아이디로, 혈흔을 인터넷 사이트 접속 기록으로, 옆집 주민 탐문을 인터넷 사이트 검색으로 바꿔 보면 검찰의 공소사실이 잘 설명된다. 정상적인 발표라면 “의심이 가는 흔적들은 있지만 ㄱ씨가 부인을 살해했다는 직접 증거는 아직 없다”고 발표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정필 기자 fermata@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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