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대화록 ‘편파수사’
김의원 유세때 “최초 공개하겠다”
비공개였던 대화록 내용 줄줄 읽어
권영세는 “우리가 집권하면 까고…”
국정원이 여권에 넘겼을 가능성
검찰이 수사의지 있는지도 의문
김의원 유세때 “최초 공개하겠다”
비공개였던 대화록 내용 줄줄 읽어
권영세는 “우리가 집권하면 까고…”
국정원이 여권에 넘겼을 가능성
검찰이 수사의지 있는지도 의문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유출해 지난해 대선에 활용했다며 민주당이 고발한 새누리당 김무성(62)·정문헌(57) 의원과 권영세(54) 주중대사의 대화록 관련 발언들을 보면, 이들을 서면조사하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는 얘기가 검찰 안에서도 나온다. 국가정보원이 공개한 대화록과 똑같은 내용을 김 의원이 지난 대선 유세 때 줄줄 읽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지난 7월 “비밀문서인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권한 없이 열람하고 그 내용을 유출했다”며 대통령기록물 관리법과 공공기록물 관리법 위반 혐의로 김 의원 등 3명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고발장을 보면, 김 의원은 지난 6월26일 국회에서 열린 비공개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지난 대선 때 이미 내가 그 대화록을 다 입수해서 읽어봤다. 그걸 몇 페이지 읽다가 손이 떨려서 다 못 읽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이 대화록을 확보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털어놓은 것이다.
김 의원은 실제로 대선을 닷새 앞둔 지난해 12월14일 부산 유세에선 “노무현·김정일 간 대화록을 최초로 공개하겠다”고 말하고, “(엔엘엘 문제는) 헌법 문제가 절대 아니다. 얼마든지 내(노 전 대통령)가 맞서 나갈 수 있다”는 대화록 내용을 공개했다. 실제로 국정원이 지난 6월24일 공개한 대화록에는 “헌법 문제 절대 아닙니다. 얼마든지 내가 맞서 나갈 수 있습니다”라고 쓰여 있다. 김 의원은 또 “남측에서는 이것을 영토로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는 대화록 내용을 공개했는데, 이 문장은 대화록 원본과 그대로 일치한다. 이런 정황은 김 의원이 대화록을 이미 다 봤을 것이라는 관측을 뒷받침한다.
검찰 관계자는 “대화록 유출 의혹 수사의 핵심은 김 의원 등 당사자 입을 통해 유출 경위를 역으로 따져 들어가며 출처를 조여가는 것이다. 그런데 서면조사로 빠져나갈 해명만 들으면 (출처를) 어떻게 찾겠나”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7일 ‘어떤 형태의 조사라도 받겠다’는 뜻을 검찰에 전달했지만, 정문헌 의원과 권영세 대사도 대면 조사가 필요하기는 마찬가지다.
정문헌 의원은 “국정원은 정상회담 회의록의 발췌록 보고서를 2009년과 2010년 두차례 만들었다”고 말해, 2009년 청와대 통일비서관 신분으로 보고를 받아 대화록 내용을 알고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의 대선 종합상황실장을 지낸 권 대사도 대화록을 보지 않고서는 내놓을 수 없는 발언들을 했다. 지난 6월 민주당이 확보해 공개한 녹취록을 보면, 권 대사는 “엔엘엘 관련 얘기를 해야 되는데, 엔엘엘 대화록, 대화록 있잖아요. 자료 구하는 건 문제가 아닌데… 말 그대로 그거는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이고… 근데 지금 소스가 청와대 아니면 국정원이니까. 대화록 작성하는 데서 거기서 들여다볼 수 있으니까. 그래서 이거는 우리가 집권하게 되면 까고…”라고 말했다.
검찰이 국정원이 갖고 있던 대화록을 공공기록물로 판단했기 때문에 이들이 국정원 보유 대화록을 봤다면 공공기록물 관리법의 적용을 받게 된다. 이 법은 ‘무단 열람’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고 ‘합법적으로 열람한 자의 무단 유출’만을 처벌하고 있다. 정 의원은 ‘청와대 통일비서관으로 있을 때 대화록을 봤다’고 주장하고 있어 ‘합법적으로 열람한 자의 무단 유출’에 해당할 수 있다. 김 의원과 권 대사가 국정원 직원 등으로부터 대화록을 건네받았다면 전달한 사람은 공무상 기밀누설죄 등으로 처벌할 수 있으며, 김 의원 등은 지시·가담 정도에 따라 공범이 될 수 있다.
검찰 관계자는 “여러 의혹을 밝히려면 당사자를 직접 불러 대면한 상태에서 질문별로 답변을 들으며 상대 주장의 논리적 허점을 파고들어야 한다. 서면조사서로 질문 내용을 다 던져주고 혼자 답하라는 것은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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