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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2014년 깨우는 소망의 말 “제발 인간답게 살았으면”

등록 2013-12-31 20:07수정 2014-01-02 11:52

노동자들 “고용·노조활동 보장”
청년들 “취업해 사람구실하고파”
안녕 못한 현실 녹일 ‘희망’ 밝혀
“궂은 일 도맡아 하는 나이 든 동료들과 새해에도 계속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청소노동자 윤세현(64)씨에게 2014년은 서울시립대에서 마지막으로 일할 수 있는 해다. 윤씨는 동료 23명과 함께 11년간 붙들어온 빗자루를 1년 뒤 놓아야 한다. 서울시는 시립대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던 청소노동자 63명을 지난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면서 65살 정년 규정을 엄격히 적용하기로 했다. 이들의 새해 소망이 ‘고용 보장’인 이유다.

80일째 살 에는 칼바람 속에 고공농성을 이어온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안녕하고픈 바람도 뜨거웠다. 경부고속도로 근처 옥천나들목 22m 대형 광고탑 위에서 새해를 맞은 이정훈 민주노총 금속노조 유성기업 영동지회장과 홍종인 아산지회장은, 이제 유일하게 남은 고공농성자들이다. 이들의 가장 큰 요구는 유성기업의 부당해고 등 불법노동행위에 대한 형사처벌이다.

이들이 2011년 ‘주야간 맞교대 근무’ 폐지를 요구하며 파업하자, 회사 쪽은 직장폐쇄와 더불어 노동자 27명 해고라는 강경책을 쏟아냈다. 2012년 11월 법원은 해고무효 판결을 내렸지만, 회사는 지난해 10월 또다시 이 지회장을 해고하는 등 노동자 24명을 징계했다. 이 지회장은 “제발 인간답게 살았으면 좋겠다. 책임자들이 구속돼 우리도 내려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원도 춘천터미널 부근 30m 조명탑에서 89일간 고공농성을 벌인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경버스지부 소속 진흥고속지회의 김인철 지회장은 12월30일 땅을 밟았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노사는 김 지회장의 징계를 최소화하며 철탑농성 관련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합의했지만, 노조 사무실 설치 등 노조활동 보장 문제가 완전히 풀리진 않았다. 김 지회장은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내년에도 힘차게 싸우겠다”고 말했다.

일터에서 새해를 맞은 버스기사들은 정초부터 씁쓸해했다. 이종원 공공운수노조 민주버스본부 서경지부 부지부장은 “보신각 타종 행사 등으로 버스가 1월1일 새벽 2시까지 연장운행했지만 연장근로수당은 지급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200여명인 서경지부에 조합원이 많이 들어와 새해에는 9시간이 넘는 초과근무를 막고 노조활동도 보장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젊은이들의 새해 소망은 소박하고도 절실했다. 취업준비생 김아무개(29)씨는 “취업해 사람 구실 하는 것”이 소망이다. 김씨는 지난해 8월 대학원 졸업 뒤 15군데나 원서를 넣었지만 모두 낙방하고 지금은 계약직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편의점에서 매일 밤 11시부터 아침 9시까지 일하는 박건진(20)씨는 “보증금 200만원이라도 모아 집 같은 집에서 살고 싶다”고 새해 바람을 전했다.

노숙인들과 장애인들도 새해 ‘안녕’을 기원했다. 서울역 주변에서 노숙하는 문주호(55)씨는 “노숙인은 사람을 해치지도 않고 일을 찾으며 열심히 살고 있다. 한심한 눈빛으로 바라보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광화문역 부근에서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요구하며 498일째 농성중인 뇌병변 1급 장애인 김문주(42)씨는 “사람에게 등급을 매기는 반인권적 제도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람들이 조금만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새해 안녕하길 바라는 집회와 문화행사에도 많은 이들이 모였다. 12월31일 저녁 민주노총 본부가 있는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앞에서 열린 ‘안녕하지 못한 이유들 다 모여라’ 집회에는 촛불을 든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박효선 민주노총 문화국장은 “철도파업은 끝났지만 정부에 대한 투쟁은 새해에도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집회를 마친 시민들은 서울 광화문 일대로 나가 서로의 어깨에 손을 얹고 ‘기차놀이’를 하며 2014년 새해를 맞이했다.

서울 신촌지역의 문화·시민단체와 시민들은 연세로에서 ‘신촌대첩’ 행사를 열었다. 청년 400여명은 일대 가로등을 모두 끈 채 12월31일 밤 11시59분55초부터 숫자를 세어나갔다. “5, 4, 3, 2, 1!” 마침내 새해가 밝았고 다함께 노래했다. “심장 박동 요동쳐 북소리 되어 울릴 때 내일이 열려 밝은 아침이 오리라~.” 뮤지컬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민중의 노래’였다. 청년들은 연세로 곳곳에 대자보를 걸고 길바닥에 분필로 소망을 적었다. 거리 곳곳에선 길거리 공연이 펼쳐졌다.

김효진 방준호 서영지 이재욱 기자 ju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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