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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수급자 규모 증가 효과” “최저생계비 폐지는 기본권 박탈”

등록 2014-02-10 20:03수정 2014-02-10 20:11

지난해 6월 서울 불광동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열린 ‘기초생활보장 맞춤형 개별급여 개편방향 공청회’에서 진영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인사말을 하는 동안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No! 기초법 개악’이라고 쓴 손팻말을 들고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6월 서울 불광동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열린 ‘기초생활보장 맞춤형 개별급여 개편방향 공청회’에서 진영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인사말을 하는 동안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No! 기초법 개악’이라고 쓴 손팻말을 들고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싱크탱크 광장] 지상토론-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
‘선과 악’ 문제로 도식화해선 곤란
사회적 합의기구 방식 더 바람직
욕구별 급여체계로 다원화하면
급여 총합도 최저생계비 웃돌아
기초연금에 이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개편을 놓고서도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제도 개편의 핵심 내용은 최저생계비에 따라 생계·의료·주거·교육 등을 통합해 보장하는 현행 통합급여체계를, 최저보장수준을 새로이 설정해 생계급여를 별도로 지급하고, 의료·교육·주거 급여 등은 각기 중위소득의 일정 비율을 고려해 결정하는 이른바 맞춤형 급여체계로 바꾸는 것이 뼈대다. 정부·여당은 이른 시일 안에 이런 내용의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을 처리할 방침이다.

하지만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런 개편 방향은 “기초생활보장법을 국민의 권리가 아닌 행정부의 재량과 예산에 따른 시혜적 제도로 변경”하는 것이라며, 결사적으로 막겠다는 입장이다. 참여연대를 비롯한 18개 시민사회단체는 10일 국회 정론관에서 이런 내용의 기자회견을 벌이고 ‘국민기초생활보장지키기 연석회의’를 발족해 본격 활동에 들어갔다. 이에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소장 이창곤)는 이번 제도 개편을 둘러싼 찬반양론을 게재한다.

노대명/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노대명/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찬성] 최근 기초생활보장제도 개편 방안과 관련해서 논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 제도가 빈곤층이 기댈 수 있는 최후의 사회안전망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제도개편 방안과 관련해 찬반 논쟁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제도개편에 대한 찬반 문제를 선과 악의 문제처럼 도식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 제도에서 지킬 것과 바꿀 것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그에 맞게 개편 방안을 마련하는 일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지켜야 할 것은 빈곤층 기초생활보장을 사회적 권리로 법에 명시하고 있는 점이다. 정부가 예산 편의에 따라 선정기준과 급여수준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도록 규정한 것이다.

반대로 바꾸어야 할 것은 하나의 기준(최저생계비)으로 생계급여를 포함한 모든 복지급여의 선정기준과 급여수준을 통제하는 급여체계이다. 빈곤층에게 적정한 급여를 보장하기 어렵게 하고,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거나 근로빈곤층의 자립을 촉진하는 데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선과 악’ 문제로 도식화해선 곤란
사회적 합의기구 방식 더 바람직
욕구별 급여체계로 다원화하면
급여 총합도 최저생계비 웃돌아

이 제도의 장단점을 종합하면, 제도개편의 기본 방향은 “더 많은 빈곤층에게 보다 적정한 급여를 보장할 수 있는 욕구별 급여체계”를 구축하지만, 각 부처가 임의로 선정기준과 급여수준을 바꿀 수 없도록 사회적 권리로서의 성격을 강화하는 것이다. 생계급여, 주거급여, 의료급여, 교육급여의 선정기준과 급여수준(최저보장수준)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기구(중앙생활보장위원회)를 통해 결정하게 하고, 이를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과 각 급여에 대한 법률안에 명시하는 것이다. 이것이 법제화의 핵심 내용이다.

위에 언급한 방향으로 제도를 개편하는 경우, 다음과 같은 지적이나 비판은 적절하지 않다. 먼저 최저생계비 개념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제도의 후퇴를 의미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물론 최저보장수준이 최저생계비 개념처럼 단일한 개념이 아니라는 점에서 불안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법률로 최저보장수준을 규정하고, 구체적인 계측 방법 등을 하위 법령에 위임하고, 사회적 합의기구를 통해 실제 보장수준을 결정하게 되면, 그것은 최저생계비 개념보다 더 큰 강점을 갖게 된다. 각 급여가 빈곤층의 욕구에 맞게 다원화되면서도, 급여의 총합이 최저생계비 수준을 상회하게 되는 것이다.

각 급여의 선정기준을 중위소득의 일정 비율, 즉 상대기준선 방식에 따라 정하는 것에 대한 비판 또한 이해하기 힘들다. 먼저 생계급여는 선정기준(소득기준)이 최대급여액(최저보장수준)이 된다는 점에서 좀더 신중하게 결정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상대기준선 방식에 따라 소득기준을 정하는 것이 문제 또는 제도의 후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어 상대기준선 방식이 예산 폭증을 가져온다는 주장 또한 논거가 취약한 것이다. 지난 10년간 최저생계비 증가율과 중위소득 증가율의 차이가 크지 않았다는 점이 이를 말해준다.

지금까지 알려진 정부의 제도개편안을 보면, 다음과 같은 변화를 예상해 볼 수 있다. 먼저 상대기준선 방식과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로 수급자 규모가 증가하는 것이다. 이어 각 급여의 수준이 빈곤 가구의 욕구에 맞게 적정화되는 효과이다. 단기적으로는 주로 주거급여의 보장성이 강화되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각 급여의 보장성이 강화되고 신규 수급자가 증가하는 양상이 더욱 분명하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아무런 견제와 감시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직 각 급여의 선정기준과 최저보장수준이 명확하게 결정된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을 사회적 합의기구를 통해 결정하는 문제 또한 모든 법률안에 명확하게 규정된 것은 아니다. 이는 기초생활보장제도 개편과 관련해서 국회와 시민단체 그리고 전문가들이 어떠한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노대명/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문진영/국민기초생활보장지키기연석회의 정책위원장(서강대 교수)
문진영/국민기초생활보장지키기연석회의 정책위원장(서강대 교수)
[반대] 1999년 제정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헌법에서 규정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현실 세계에서 구현한 최초의 법률로서, 이 법을 통해서 비로소 국민은 정부로부터 기초적인 생활을 보장받게 되었다. 하지만 지난 14년간 최후의 사회안전망으로 버팀목 역할을 했던 ‘기초생활의 보장’이 현 정부에 의해서 흔들리고 있다. 집권 여당은 인수위 시절부터 사회안전망 체계를 개편한다고 공언하였고, 개편을 이끄는 두 개의 축으로 ‘생활영역별 맞춤형 급여체계 구축’과 ‘일을 통한 빈곤 탈출 지원’을 설정한 바 있다. 그리고 그 개편의 시발점으로 작년 5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법률(안)을 발의하였는데, 그 골자는 급여체계를 욕구별로 다층화하고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함으로써, 제도의 사각지대를 축소하는 한편으로 수급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하는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복지국가의 도덕적 기초를 무너뜨리는 결정적인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그것은 바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골간에 해당하는 ‘최저생계비’ 제도를 폐기함으로써 국민의 생존권적 기본권을 박탈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다. 현행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최저생계비는 수급권자 선정기준이자 급여의 기준선이 되는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서, 생활이 어려운 국민은 법률에서 규정한 최저생계비 이상의 생활수준을 권리로서 보장받아 왔다. 하지만 개정안은 이런 최저생계비의 기능을 철저하게 부정하고 있다. 즉 최저생계비 계측을 포기하고 빈곤실태 조사로 대체하도록 하고 있으며(안 제6조의 2), 더욱이 생계급여와 의료급여 수급권자를 최저생계비가 아니라 “소득인정액이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하는 기준 이하인 사람”(안 제8조)으로 규정하여, 행정부의 재량급여로 전락시키고 있다.

급여 수급권자 자의적 지정 가능
생활보장수준도 정부 편의대로
미세조정으로 생색내기 치우쳐
복지국가 도덕적 기초 ‘흔들’

다시 말해서, 정부는 “중위소득의 일정 비율을 고려하여” 자의적으로 정한 기준에 따라서 수급자를 선정하고, 그 수급자에게는 정부가 다시 편의적으로 정한 최저수준의 생활을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이대로 개편될 경우, 소득인정액과 급여를 합하여 최저생계비 이상의 생활수준을 보장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기본 골격이 무너지게 되고, 이 제도는 사회적 권리가 아닌 정부가 재정적인 여건에 따라서 얼마든지 축소와 후퇴가 가능한 행정 재량형 프로그램으로 전락하게 된다.

물론 현행 기초생활보장제도 역시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가혹한 부양의무자 기준과 불합리한 소득환산제도로 인하여 최저생계비 이하의 저소득자 중 과반이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한 채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정상적인 국가라면 당연히 제도를 정비하여 가난한 사람들이 병들었을 때 경제적 부담 없이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받고, 교육이 필요한 연령의 아동들은 적어도 돈 걱정 없이 학교를 다닐 수 있게 하고, 인간으로서 최소한도의 존엄성을 가지고 생활할 수 있는 주거를 보장하고, 일을 하고자 하는 의지와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직업훈련과 취업의 기회를 제공하여야 한다. 하지만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개편은 절실하게 요구되는 제도의 정상화는 포기하고, 대신에 미세조정에 그침으로써 생색내기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가난한 사람들이 먹고살아야 하는 생존에 관련된 권리는 정부의 재정적인 여건이나 혹은 선의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법률적 근거를 가진 제도를 통해서 실현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인권을 존중하는 문명국가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도의 도덕적 기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개편 방향은 문명성을 부정하는 것이고, 우리 사회의 도덕적 기초를 허무는 일이다. 문진영/국민기초생활보장지키기연석회의 정책위원장 (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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