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투선수 루빈 ‘허리케인’ 카터
백인 살해범으로 몰려 19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해 인종차별의 상징이 됐던 흑인 권투선수 루빈 ‘허리케인’ 카터(사진)가 20일 숨졌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향년 76.
카터의 친구이자 살인 공범으로 함께 기소됐던 존 아티스는 “전립선암을 앓았던 카터가 잠을 자던 중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카터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치료를 받아왔다.
카터는 1960년대 초 폭풍처럼 주먹을 몰아친다고 해 ‘허리케인’이란 별명을 얻었으며, 그의 레프트훅은 파괴력이 커 상대를 한 방에 링에 드러눕히곤 했다. 미들급이었던 그는 프로에서 27승12패1무의 전적을 남겼으나 세계 챔피언은 되지 못했다. 하지만 당대 두 체급을 석권했던 에밀 그리피스를 1라운드에 드러눕혀 역사적인 경기로 남았다.
카터는 오히려 인종차별을 당한 권투선수로 더 이름을 얻었다. 그는 1966년 미국 뉴저지주 패터슨시의 식당에서 백인 남성 2명과 백인 여성 1명을 쏴 죽인 혐의로 이듬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카터와 아티스가 총을 쐈다는 백인 목격자들의 진술은 신빙성이 의심스러웠고 다른 직접증거도 없었으나 배심원들은 유죄 평결을 했다. 그러나 74년 목격자들은 진술을 뒤집으며 수사당국이 카터 등을 범인으로 지목하라고 압력을 넣었다고 폭로했다. 더욱이 목격자라 주장한 이들은 도둑질을 하다가 들켰는데, 수사당국이 유리한 증언을 해주는 대가로 도둑질을 눈감아 주겠다고 한 것으로 드러났다. 76년 카터 등은 보석으로 풀려났으나 같은 해 말에 열린 재판에서 다시 유죄 판결을 받고 감옥에 갇혔다. 진술을 번복했던 목격자 한 명이 다시 진술을 번복했기 때문이다.
중학교 중퇴 학력이었던 카터는 감옥에서 법학·철학·역사·종교 관련 서적을 탐독했다. 그는 판결의 부당함을 주장했고 국제앰네스티도 그를 ‘양심수’라고 말했다. 하지만 뉴저지주 법원은 여러 차례 항소를 기각했다. 판결은 85년 연방지방법원에서 바로잡혔다. 당시 리 새러킨 판사는 “카터의 유죄 판결은 아무런 증거도 없이 인종보복 이론에 근거했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19년 만에 그는 석방됐고, 88년 연방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카터가 감옥에 갇혀 있던 75년에 나온 밥 딜런의 노래 ‘허리케인’은 그에게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99년에는 카터의 삶을 다룬 영화 <허리케인>이 상영됐고, 주연을 맡은 덴절 워싱턴은 이듬해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카터는 캐나다에서 자신처럼 부당한 판결을 받은 이들을 돕는 비영리재단을 만들어 활동해 왔다.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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