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5·16은 군사 쿠데타라는 학설과 당시 정치·경제적 상황에 비추어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립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양쪽 견해 모두 나름대로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21일 인사청문회에 나서는 강신명 경찰청장 후보자가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 미리 제출한 서면답변서 내용이다. 강 후보자는 법정기념일인 제주4·3항쟁이나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서도 “깊은 공부가 없는 상태여서 사견을 밝히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미 역사적·사법적 평가가 내려진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유신과 긴급조치에 대해서는 “깊은 공부가 부족해 답변이 어렵다”면서도 “공과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갈리고 있다”며 굳이 ‘단서’를 달았다.
그가 몇 줄의 답변도 내놓지 못할 정도로 무지하지는 않을 것이다. 강 후보자만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고위 공직에 오르는 이들한테서 ‘5·16은 군사 쿠데타’라는 명쾌한 답변을 들어보기는 매우 어렵다. 경찰을 관할하는 정종섭 안전행정부 장관도 자신이 쓴 책에는 “5·16은 쿠데타”라고 써놓고도 막상 인사청문회에서는 ‘쿠데타’라는 말을 입에 올리기를 꺼렸다. 고위 공직에 걸맞은 합리적 역사인식을 갖췄는지 확인하려는 질문인데도 청와대와 여당이 과민반응을 보이니 공직 후보자도 그 눈치를 보는 것이다.
역사에 대한 “깊은 공부”가 없어서 답변이 어렵다면, 강 후보자는 선배 경찰의 생애라도 곱씹어보기 바란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경국장(현 전남경찰청장)이던 안병하는 신군부의 발포 명령을 거부했고, 오히려 불상사를 우려해 경찰이 소지한 총기를 회수했다. “경찰이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시민을 상대로 어떻게 총을 들 수 있느냐”는 이유에서다. 결국 보직해임된 그는 보안사에 끌려가 10여일 동안 고문당했고, 그 뒤 생활고와 고문 후유증으로 고통받다 1988년 생을 마감했다. 그가 순직경찰로 인정받은 것은 2006년의 일이다.
‘안병하의 길’을 걸으라는 얘기가 아니다. 인사청문회에서만큼은 소신껏 답변하기를 기대하는 것뿐이다.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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