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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법치주의 죽었다”…현직 부장판사 ‘원세훈 판결’ 정면비판

등록 2014-09-12 20:37수정 2014-09-12 22:34

<b>대법원장과 비서실장 무슨 얘기 나눌까</b> 양승태 대법원장(오른쪽)과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12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퇴임 대법관 서훈 및 신임 대법관 임명장 수여식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대법원장과 비서실장 무슨 얘기 나눌까 양승태 대법원장(오른쪽)과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12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퇴임 대법관 서훈 및 신임 대법관 임명장 수여식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김동진 판사, 법원 통신망에 “선거법 무죄는 궤변”
대법, 정치적 중립 어겼다며 3시간만에 직권 삭제
현직 부장판사가 12일 원세훈(63) 전 국가정보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판결은 “상식과 순리에 어긋나는 지록위마(指鹿爲馬·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함)의 판결”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대법원은 법원 내부 게시판(코트넷)에 이 글이 올라와 파장이 일자 법관의 정치적 중립 의무에 위반된다며 직권으로 삭제했다.

수원지법 성남지원 김동진(45·사법연수원 25기) 부장판사는 아침 7시께 법원 인트라넷 형사법연구회 커뮤니티 게시판에 ‘법치주의는 죽었다’는 제목으로 원고지 20장 분량의 글을 올렸다. 여기서 김 부장판사는 “국정원이 2012년 당시 대통령선거에 대하여 불법적인 개입 행위를 했던 점들은 객관적으로 낱낱이 드러났고 삼척동자도 다 아는 자명한 사실인데 담당 재판부만 선거개입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며 “담당 재판부는 ‘사슴’을 가리키며 ‘말’이라고 하고 있다. 사법부가 국민들의 상식과 순리에 어긋나는 ‘지록위마의 판결’을 할 때마다 국민들은 절망한다”고 썼다.

그는 “2012년은 대통령선거가 있었던 해인데, 원세훈 국정원장의 계속적인 지시 아래 국정원 직원들이 조직적인 댓글공작을 했다면, 그것은 정치개입인 동시에 선거개입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라며 “이렇게 도식적이고 기계적인 형식논리가 국민들을 납득시킬 수 있을까? 이것은 궤변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위법적인 정치관여 행위에 관하여 말로는 엄벌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동기 참작 등의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슬쩍 집행유예로 끝내 버렸다”고 형량의 문제점도 짚었다.

김 부장판사는 “이 판결은 ‘정의’를 위한 판결일까? 그렇지 않으면 재판장이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심사를 목전에 두고 입신영달에 중점을 둔 ‘사심’이 가득한 판결일까? 나는 후자라고 생각한다”며 재판부에도 돌직구를 던졌다. 원 전 원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이범균(50·사법연수원 21기) 재판장은 올해 초 고등법원 부장판사(차관급) 승진 대상에서 누락돼 내년 초 승진 대상이다.

김 부장판사는 “(나는) 2012년 대통령선거 당시에 여당·야당 중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았다”며 “판사로서, 대한민국의 법치주의 몰락에 관하여 말하고자 할 뿐이다. 법치주의 수호는 판사에게 주어진 헌법상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이 글이 게시된 지 3시간 만인 오전 10시께 직권 삭제했다. 대법원은 이 글이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하고 타인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보고 사법부 전산망 운영지침에 따라 직권으로 삭제했다고 밝혔다. 서울지역 법원의 한 판사는 “부장판사가 다른 재판부의 특정 판결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글을 올리고, 대법원이 급히 글을 삭제한 것 모두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대법원의 글 삭제에 대해 법원 분위기가 썩 좋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참여연대·한국와이엠시에이(YMCA)전국연맹·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주요 시민단체 14곳이 연합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이번 판결에 대해 성명을 내어 “정상적인 사법부의 판단이라고 도저히 믿기 어려운 수준의 말장난”이라고 비판했다. 연대회의는 “그간 법원은 시민들이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글을 서너 차례 반복해서 올리기만 해도 특정 후보의 당선·낙선을 도모하는 목적성이 있다고 몰아갔다. 국정원이 선거 시기를 포함해 올린 11만3521건의 트위트·리트위트가 정치개입은 맞지만 선거개입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은 사법부의 권위를 스스로 떨어뜨린 부끄러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김선식 이재욱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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