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파주에서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는 한진수(68·사진) 씨.
아파트 경비원 한진수씨
한겨레통일문화재단 1천만원 기부
한겨레통일문화재단 1천만원 기부
경기도 파주에서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는 한진수(68·사진)씨는 요즘 ‘다시 세상을 바꾸며’ 살아가고 있다. ‘봉사와 기부’ 덕분이다.
한씨는 지난 10일 적십자 봉사회 파주지역 총회에 참석했고, 8일에는 봉사회 경기도 대회에도 다녀왔다. 지난 4월 적십자 봉사활동을 시작한 이후 안산의 세월호 합동분향소에도 세차례나 다녀왔다. 격일로 24시간 근무를 하면서도 쉬는 날에는 봉사활동에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고 있는 것이다.
그는 기부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북한 어린이 등을 돕고 싶어 지난 5월과 8월에 500만원씩 총 1000만원을 한겨레통일문화재단에 기부했다. 사실 그때 그는 아무런 직업도 없는 어려운 상태였다. 평생을 ‘행동하는 시민’으로 살아온 그였지만, 이제 세상을 바꾸는 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에 한동안 무력감에 빠져 있었다.
한씨는 1980년대 민주화를 위한 시위 현장에 거의 빼놓지 않고 달려갔다. 특히 87년 6월항쟁 때는 중년의 나이임에도 직선제 개헌 쟁취 등을 요구하며 항쟁의 중심지였던 명동성당에 최후까지 남기도 했다. 세계를 알기 위한 공부도 꾸준히 했다. 총회신학대학을 다닌 뒤 중앙대 산업대학원 연수과정, 천도교 종학대학원 등에서 다향한 학문을 접하고, 그를 통해 신과 세계를 해석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씨는 그때 자신과 같은 열정적인 시민들의 참여가 형식적인 민주주의나마, 한국 사회를 바꾸어냈고, 거기에 힘을 보탰다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며 민주주의가 후퇴하면서 그의 가슴에도 멍이 들었다. 예전과 달리 ‘무력해진’ 자신을 발견했다. 삶의 자신감도 점차 사그라들었다. 6월항쟁 같은 직접적인 행동을 하기에는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너무 무겁게 다가왔다.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시민단체들이 사회에 메시지를 전하는 방법 자체가 달라진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행동하는 시민이 해체된 사회가 된 듯했다.
바로 그때 봉사와 기부가 그의 마음을 끌었다. 그러면서 그는 차츰 무력감과 우울증에서 벗어나게 됐다. 처음에는 다분히 ‘생의 마지막을 차분히 정리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봉사와 기부는 그런 부수적인 삶이 아니었다. 불편하고 무기력했던 마음도 이제는 상당히 안정을 되찾았다. 무엇보다 그는 봉사와 기부를 통해 여전히 세상과 인연을 맺고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민주화운동과 방식은 달라졌지만, 그는 여전히 세상을 바꾸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한씨는 자신감을 되찾으면서 좀더 큰 꿈에도 도전하고 있다. 시의 형식을 빌려서 한국의 현대사를 문명사적으로 서술하는 작업이다. 이 작업은 완전한 문학도 아니고 사회적인 이론도 아니지만, 온몸으로 한국 현대사를 살아온 한 시민의 시각으로 본 한국 현대사라고 밝힌다. 70~80년대 행동하는 시민의 눈으로 바라본 한국 현대사가 어떻게 새로운 시의 형식으로 탄생할지 기대된다.
글·사진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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