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절반만 피우자.”
지난 2일 국회 본회의에서 담뱃값 2000원 인상안이 통과된 뒤 ‘사반세기 애연가’였던 직장인 박아무개(44)씨는 때 이른 새해 다짐을 했다. 끊지는 못하겠고, 하루 한 갑씩 피우던 흡연량을 반 갑으로 줄여 부담을 덜어보기로 했다. 이른바 ‘절충형’이다. 직장인 임관영(40)씨도 박씨처럼 ‘절연’을 택했다. 임씨는 4일 “하루에 한 갑 반을 피웠는데 반 갑으로 줄일 생각이다. 담배에 들어가는 돈은 똑같아지는데, 문제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라며 웃었다.
담뱃값 인상을 앞두고 애연가들의 대응이 천차만별이다. 이참에 아예 담배를 끊겠다는 ‘굴복형’도 적지 않다. 군대에서 담배를 배웠다는 이창욱(38)씨는 “4000원 넘는 돈을 내가며 담배를 계속 피워야 하는지 모르겠다. 끊을 생각”이라고 했다. 학창 시절부터 담배를 피웠다는 자영업자 김영도(39)씨도 “담뱃값이 오르니 빨리 끊으라는 집사람의 잔소리가 벌써부터 시작됐다. 눈치가 보여서 끊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건강 걱정보다 경제적 부담이 더 고민인 셈이다.
담배를 직접 키워서 피우겠다는 ‘경작형’도 있다. 귀농 16년차인 김맹수(56)씨는 “남새밭에 담배를 심으려고 연초조합에 담배 씨앗을 문의해놨다. 개인적으로 소비하고 팔지만 않으면 문제가 없다고 들었다”고 했다. 담배사업법에는 담배 농사 자체를 규제하는 조항은 없다. 판매 목적이 아니라면 재배는 누구나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도 저도 여의치 않고 주머니 사정까지 뻔한 이들은 ‘어둠의 경로’를 찾겠다고 한다. 이른바 ‘저항형’이다. 부산에 사는 김아무개(45)씨는 “국제시장에서 담배를 싸게 판다. 믿음이 안 가서 그동안 사지 않았는데 담뱃값이 오르니 사서 피우게 될 것 같다”고 했다. 담뱃값 인상이 음성적 담배 거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는 시민단체 쪽에서도 나온다. 한국납세자연맹은 3일 “담뱃값 인상으로 담배 암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다. 결국 암시장을 관리하는 이들이 수혜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사재기를 하는 ‘저장형’도 있다. 10년차 애연가인 김현석(29)씨는 “많이는 못 산다. 출퇴근길에, 또는 길 가다 보이는 편의점에서 한 갑씩 산다. 주변에 나 같은 사람이 많다”고 했다.
오승훈 이재욱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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