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29일 오전 법무부에서 이귀남 당시 법무장관이 이건희 삼성 회장의 사면을 발표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은 2007년 삼성그룹의 비자금 조성 및 검사 대상 로비 의혹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가 ‘떡값 검사’로 지목한 3인 가운데 한 명이다. 과천/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회의록 전문, 정보공개청구 통해 입수
불법 경영권 승계를 “국익 위해 열심히 하다 생긴 일”
법무부 검사들, 국가경제 등 강조하며 전경련 수준 발언
민간위원들은 ‘대국민 홍보 전략’ 조언…회의록 공개 우려도
불법 경영권 승계를 “국익 위해 열심히 하다 생긴 일”
법무부 검사들, 국가경제 등 강조하며 전경련 수준 발언
민간위원들은 ‘대국민 홍보 전략’ 조언…회의록 공개 우려도
2009년 12월.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24일 정부과천종합청사 법무부 장관 회의실에 9명이 모여 앉았다. 이귀남 법무부 장관과 황희철 법무부 차관, 최교일 법무부 검찰국장, 주철현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장, 국민수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 등 5명의 법무부 보직 검사들은 ‘당연직’이었다. 여기에 유창종 변호사, 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장, 권영건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오영근 한양대 교수 등 민간위원 4명이 참여했다.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가 열린 날이었다.
이날 사면심사위원회 회의의 안건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특별사면 및 특별복권의 적정성 여부’ 심사였다. 그해 8월 이건희 회장은 아들 이재용씨에게 불법으로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 등으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그로부터 4개월 만에 사면 여부를 심사하는 회의가 열렸다.
사면법은 “법무부 장관은 대통령에게 특별사면, 복권 등을 보고하기 전에 사면심사위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날 사면심사위의 회의는 ‘이건희 회장 1인 특별사면’ 절차의 정점이었다. 한 명만을 위한 사면 절차는 대한민국 헌정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회의가 열리고 5일 뒤인 12월29일 이명박 대통령은 “31일자로 이건희 회장을 특별사면 및 특별복권 한다”고 발표했다.
이건희 회장 1인을 위한 특별사면이 실시된 지 5년이 됐다. 사면법은 사면 뒤 5년 동안 사면심사위의 회의록 공개를 막고 있다. 지난달 말을 기점으로 마침내 회의록의 ‘봉인’이 풀렸다. <한겨레>는 법무부를 상대로 정보공개청구를 했고 당시 회의록을 입수했다.
회의록을 통해 본 사면심사위는 그 존재가 의심스러웠다. ‘감형 및 복권 상신의 적정성을 심사’(사면법 10조의2) 해야 할 이건희 회장 사면심사위는 사실상 이 회장의 사면을 국민들에게 어떻게 설명할지를 고민하는 자리였다고 할 수 있다. 10년 가까운 검찰의 봐주기 수사와 형식적인 논리로 죗값을 덜어준 법원을 상대로 시민단체와 국민들이 힘겹게 얻어낸 결과를 ‘없었던 일’로 만드는 데는 고작 50분 걸렸다. 이 회장의 1인 사면을 발의한 법무부 소속 당연직 위원들은 물론이고 공정성을 확보할 목적으로 외부에서 임명한 민간위원 4명도 마찬가지였다.
■ 누구를 위한 국익?
2007년 삼성그룹의 비자금 조성 및 검사 대상 로비 의혹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가 ‘떡값 검사’로 지목한 3인(임채진·이귀남·이종백) 중 한 명인 이귀남 법무부 장관이 말문을 열었다. 회의가 시작되자 이 장관이 “2018년 동계올림픽의 평창 유치라는 국가적 중대사를 앞두고 국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 이건희 IOC 위원에 대한 특별사면 상신의 적정성 여부를 심사해 달라”고 운을 띄웠다. 이 회장은 당시 유죄가 확정돼 IOC 위원 자격이 정지된 상태였고 이듬해 2월에 열릴 예정인 총회에서 제명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이 컸다.
이후 회의는 이 회장의 사면 여부에 대한 심사가 아니라 이 회장의 사면이 얼마나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를 강조하는 자리가 됐다. 검사 출신 유창종 변호사는 “서울올림픽조직위에 파견 나간 경험이 있어 IOC 위원이 사라지는 게 얼마나 국익에 손실인가를 잘 알고 있다”며 “UN의 사무총장이 되는지 여부가 우리 국익에 엄청나게 영향을 미치 듯 체육계에서도 IOC라는 것이 유엔기구와 마찬가지로 국익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강조했다.
국민수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은 “이건희 개인이 아니고 IOC 위원을 사면한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이건희를 사면하는 게 아니라 IOC 위원을, 국익을 위해 사면한다고 생각하면 편할 것 같고 그래서 찬성한다”고 말했다. 권영건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은 “그동안 국가 경제, 국익을 위해 굉장히 공헌한 것은 인정하지 않나. 평창에서 추진하고 있는 올림픽도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검찰, 법무부, 청와대가 상당히 고민했을 것으로 보아 재론하기 그렇다. 아쉽고 개운하지는 않지만 찬성한다”고 말했다.
■ 봐주고 또 봐주고
죄지은 사람을 처벌하는 일을 해야 할 검사들도 되레 이 회장의 사면을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최교일 검찰국장은 “여러 안을 놓고 고민했다. 정치인이나 경제인, 교육계 인사를 모두 포함시키는 안, 정치·경제인들만 하는 안, 그 속에서 범위를 넓히거나 좁히는 안을 놓고 두어 달 동안 검토하고 고민했다. 세계 외교관계라든지 스포츠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국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차원에서 한 사람에 대해서만 안건을 올리게 됐다”고 밝혔다.
황희철 법무부 차관은 “지금 우리는 경제적으로 전쟁을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경제인이 국익을 위해 열심히 하다가 문제가 되면 처벌을 하고, 또 처벌을 하더라도 아예 전쟁을 못하도록 해 가지고 국익에 위배가 되는 그런 일은 없어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이 아들 이재용씨에게 불법으로 경영권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것을 ‘국익을 위해 열심히 하다 생긴 문제’로 해석하고, 법에 따라 이 회장의 죄를 묻을 것을 ‘국익 위배’라고 주장한 것이다.
자신들 스스로도 봐준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는지 주철현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장은 “이건희 회장은 (판결 선고에) 사회봉사명령도 안 붙었더라. 법원에서 많이 봐준 것 같은데, 법무부에서 또 봐주는 것으로 생각이 들지만 찬성하겠다”고 말했다.
삼성그룹의 경영권 불법 승계에 대한 법적 논란은 2000년 법학교수 43명이 이건희 회장 등을 고발하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검찰과 법원은 이러저러한 논리로 수사와 처벌을 미뤘다. 검찰은 공소시효 만료를 하루 앞둔 2003년 12월 대리인에 불과한 허태학, 박노빈 등 에버랜드 전·현직 사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삼성 에스디에스(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발행 사건을 “비상장 주식을 평가할 방법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여섯 차례나 불기소 처분했다(▶ 관련 기사: 검찰·법원도 ‘한통속’).
■ 보도자료에 고스란히 반영된 ‘대국민 홍보 전략’
이건희 회장 1인 사면을 ‘국익을 위한 사면’으로 정리한 사면심사위는 이후 사면의 명분과 ‘예상 질문’에 대한 ‘모범 답안’을 만드는 데도 공을 들였다. 오영근 교수가 “사면 권한이 있는 대통령이 정치적 부담을 안고 간다고 하니 난 정치적으로 신중 검토 의견으로 하겠다”고 하자, 황희철 차관이 “많은 토론과 신중 검토 의견도 있었으나 대부분 좋은 쪽으로 의견을 내셨다고 하겠다”고 정리했다.
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장이 “(4개월 만의 사면이) 전례에 비해 조금 빠르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다”고 하자, 간사로 참여한 권익환 법무부 형사기획과장은 “판결 확정 직후에 사면했던 사례들도 몇 번 있고, 작년 8·15 사면 같은 경우도 판결이 확정되고 6개월 이내이었던 분들이 열 분 가까이 된다”고 설명했다.
곽배희 소장은 이후 “이건희라는 개인에게 특혜를 주는 것이 아닌 적법한 특별사면 절차에 의해서 사면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부각시키는 게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법무부 입장에서는 논리적으로 적법한 절차라는 것을 부각시키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조언했다. 그러자 최교일 검찰국장이 “제가 기자들에게 브리핑하고 답변해야 하는데 오늘 여러 위원님들께서 좋은 말씀을 해주신 것 같다”고 맞받았다.
■ “민간위원들 공개되면 집중포화 받을 것”
사면심사위 회의록의 ‘5년 비공개 조항’은 2011년 7월 개정된 사면법에 포함됐다. 애초 사면법엔 심사과정 및 심사내용의 공개범위나 공개시기 조항이 없었다. 경제개혁연대는 2008년 광복절 특사에 앞서 법무부에 사면심사위와 관련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거절당하자 소송을 냈다. 법무부는 1,2심과 대법원 최종심(2010년 2월)에서 모두 패소했다. 이후 국회는 ‘특별사면 등 행사에 있어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고 사면위원들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한다’며 사면법에 ‘5년 비공개 조항’을 넣었다. 이건희 사면심사위가 열릴 당시(2009년 12월24일)엔 2심(항소심)에서 패소한 법무부가 대법원에 상고를 한 상황이었다.
이건희 회장 사면심사위의 회의록을 보면, 사면심사위와 관련된 정보공개를 거부한 법무부의 입장이 위원들에게 ‘방패막이’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공개라는 방패 덕분에 사면심사위원들이 시민들의 감시와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 사면심사위 회의에 참가한 위원들도 자신들이 이름이 공개되는 것을 걱정하는 말들을 회의록에 그대로 남겼다. 회의가 끝날 때쯤 유창종 변호사가 “사면위원이 누구냐고 자꾸 물어오던데 어떻게 되어가고 있냐”고 묻자, 법무부 권익환 과장이 “항소심까진 패소했다. 우리(법무부)가 상고를 제기해 대법원에서 심리중”이라고 답했다.
권영건 이사장이 “공개하면 어떤 문제가 있냐”고 묻자 황희철 차관은 “공개되면 엄청나게 괴로움을 당하실 것이다. 외부 위원들의 명단이 알려진다면 집중포화를 받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날로부터 5일 뒤인 12월29일 오전 법무부는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열어 이 회장의 특별사면 및 특별복권을 발표했다. 기자회견에 나온 이귀남 법무부 장관은 A4 용지 두 장짜리 보도자료를 2분 만에 읽어내려간 뒤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갔다. 이 장관과 동행한 최교일 검찰국장이 보충설명을 한다며 단상에 올라 빠른 속도로 사면의 경위와 과거 사례 등을 읽어나갔다. 기자들의 질문도 받지 않고 떠나려던 최 국장은 질문이 쏟아지자 “마이크 끄고 하자”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후 최 국장은 사면의 이유와 과거 사례 등을 묻는 질문에 사면심사위에서 나온 얘기들을 쏟아냈다. 그러나 법무부가 든 사례들 대부분이 사형을 무기징역으로 감형하는 등 이 회장의 사면과는 성격이 달랐다(▶ 관련 기사: 법무부 “단독사면 선례 8번” 강조하지만…대부분 사형→무기징역 감형). 최 국장은 “비난 여론을 고려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겠냐는 식으로, 국익에 굉장히 중요한 사안”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박현철 김원철 박수진 기자 fkcool@hani.co.kr
2009년 12월24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주민센터 앞에서 민주노총, 민가협, 용산법대위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이건희 회장 사면 방침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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