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후반부터 20대 초중반 여성이 즐겨보는 유명 여성잡지 10월호에 ‘부자 남자 꼬시는 법’, ‘차종별 남자 공략법’ 등의 기사가 수록돼 빈축을 사고 있다.
“부자남자 꼬시는 법?” 여성지 기사 눈살
‘부자남친 식별법’과 ‘차종별 남자공략법’ 소개
인터넷쇼핑몰업체에서 근무 중인 박아무개(29)씨는 최근 2년간 사귄 동갑내기 남자친구에게 결별을 선언했다. 매너 좋고, 똑똑한 애인이었지만 문제는 ‘돈’이었다. 대학원생인 그는 데이트 비용 대는 것조차 사치였다. 집안의 경제사정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박씨는 지금 열흘 전 소개팅으로 만난 두 살 연상의 새 남자친구와 결혼을 ‘적극’ 고려하고 있다. 고급 외제차를 끌고 다니는 새 남자친구에게 박씨는 매혹되었다. 박씨는 “외모나 성격보다 그가 가진 ‘돈’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며 “이 남자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씨의 취미는 쇼핑이다. 주말이면 백화점 명품관을 헤매고, 매달 여성잡지를 산다. “명품 브랜드의 최신 패션 경향뿐 아니라 남자 꼬시기 등 연애비법 등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박씨는 직장생활 7년째이지만 통장 잔고는 바닥에 가깝다. 부자남자 이렇게 구별하세요! 이런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듯 한 여성월간지 10월호에는 ‘부자남자 꼬시기’ 비법이 실려 빈축을 사고 있다. ‘부자남자 알아보기!’와 ‘차종별 남자 공략법!’이라는 제목의 기사들은 명품시계와 셔츠로 보는 부자남자 특징, 차종별 남자 공략법을 자세히 소개했다. 이 잡지는 한 주간신문사가 10대~20대 여성을 주독자층으로 패션과 미용·다이어트 방법 등을 다루는 월간지다. 이 기사는 주독자층인 젊은 여성들의 관심사를 반영한 것이고, 사실보도 기사가 아닌 흥미 위주의 읽을거리에 지나지 않는 글로 패션잡지에 실린 것이지만, 그 표현과 정보의 수준이 너무 노골적이어서 잡지와 독자의 품격이 의심되지 않을 수 없다. 기사는 “명품시계 브랜드가 파텍필립, 브뢰게, 블랑팡, 바쉐론콘스탄틴, 오데마 피게라면 그는 진정한 하이클래스. 하지만 희소성이 심하게 높은 이런 부류보다는 IWC, 브라이틀링, 지랄드페르고, JLC 등의 경우가 공략하기(꼬시기) 편하다”고 공략법까지 제시했다. 그러나 “구찌, 까르띠에, 에르메스, 랑방 같은 브랜드의, 로고가 강조되고 보석이 박히거나 번쩍번쩍 빛나는 모델. 특히 1백만~2백만원대 가격이라면 10만원짜리가 어울리는 사람이 과시용으로 힘겹게 마련했을 경우가 99%”라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셔츠의 경우, “부자 남자들은 어릴 때부터 좋은 소재에 익숙하고, 나쁜 소재를 입으면 알레르기를 일으킬 정도로 고급 피부를 가졌다”며 “질감이 실크처럼 매끄럽고, 인공적이지 않은 부드러운 광택과 흔치 않은 자연스럽고 고급스러운 색감을 선호하며, 목걸이나 팔찌, 커프스 링크 등 불필요한 악세사리 착용을 즐기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반면, 졸부 집안 출신이거나 어린 시절 생활고 때문에 금에 목마른 사람들은 닷 돈짜리 금반지와 쩔렁거리는 귀금속 사슬 목걸이를 하고 있으니 무조건 피하라고 충고했다.
“졸부 출신은 귀금속 사슬 목걸이…무조건 피해야” 기사대로라면, 부자의 헤어스타일은 취향에 맞는 스타일리스트가 정기적으로 손질하기 때문에 늘 비슷한 모습을 유지하며, 몸매는 볼륨감이 지나친 근육타입도, 지나치게 마른 타입도 아닌 표준형이지만 느긋한 성격으로 인해 배가 나온 경우가 흔하다. 또 부자는 어릴 때부터 철저히 관리되었기 때문에 심한 덧니나 치아의 얼룩이 있을 수 없다. 잡지는 또 잘 생긴 남자의 외모가 엄마를 닮았거나 못생긴 그의 외모가 아빠를 닮았을 경우, 데이트 때 고기를 밝히지 않거나 당신에 대한 그의 관심사가 ‘어떤 스포츠를 좋아하세요?’, ‘요리를 즐기나요?’ 등 취향에 대한 질문이라면 부자인 반면, 닮은 외모가 그 반대이거나 ‘요즘 회사는 어때요?’, ‘부모님은 뭐하세요?’ 등 백그라운드에 관한 질문이 위주인 남자는 ‘생계유지형’이라고 설명했다. 남자가 타고 다니는 차량에 맞춰 그를 꼬셔라? 기사는 차종별 남자의 특성과 꼬시는 방법도 자세히 소개했다. “일단 스포츠카 오너드라이버는 ‘돈을 흘리고 다니는’ 부자스타일. 학벌보다 외모를 중시하는 이 남자를 공략하고 싶다면 차처럼 미끈한 스타일(섹시한 패션에 웨이브 헤어스타일)로 자신을 중무장할 것.” 기사는 “전문직 종사자가 많은 지프형 오너의 경우, 평범한 스타일의 여자는 어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튕기는 여자에게 오히려 매력을 느끼니 마음에 들더라도 눈에 띄게 호감을 표현하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다”고 기술한 뒤, 여행을 소재로 말을 걸라고 충고했다. 외제차 오너는 집안이 좋거나 본인의 능력이 뛰어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청담동 스타일의 외모와 적당히 지적인 아름다움으로 어필해야 한다고 썼다. ‘아반테XD’ ‘EF쏘타나’는 무난하고 평범한 스타일로 흔히 알고 있는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 스타일’을 선호하고, ‘SM3’나 ‘세라토’, ‘그랜저XG’는 약간 섹시한 스타일을 선호하며, ‘슈마’나 ‘스펙트라’는 세미 정장 차림보다 데님팬츠에 티셔츠로 공략하라고 조언했다. “부자남자를 잡아라” 일부 여성잡지 경쟁적 보도 이런 부류의 기사는 여성잡지들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3년 말 한 여성지가 ‘부자 남자친구를 잡아라!’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낸 뒤, 경쟁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그 당시 기사는 “부자 남자친구를 만나는 여성은 무엇이 다를까’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부자 남자친구를 사귀고 있는 여성들의 인터뷰를 통해 청순, 발랄, 럭셔리 등 그 비법을 공개했다. 부자 남자친구를 사귀는 박씨 역시 이런 여성잡지를 읽고 ‘요령’을 전수받은 경우다. 박씨는 이 여성잡지에 실린 기사가 “현재의 남자친구를 사귀는 데 유용했다”고 평가했다. “어떤 남자를 만나냐에 따라 여자의 인생이 달라지잖아요. 아무리 똑똑하고 잘났어도 돈없는 남자와 결혼한 친구들은 하루하루 팍팍하게 살아가는 반면 부잣집에 시집간 친구들은 명품으로 온몸을 치장하고 값비싼 외제차를 끌고 다녀요. 기왕이면, ‘여왕’처럼 살고 싶은 게 모든 여성의 꿈 아닐까요?” 그러나 이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많다. 여성잡지가 노골적으로 ‘부자 애인 공략법’을 다뤘다는 것이 알려지자 누리꾼 ‘tsutiya’는 “남자 능력만 밝히는 여자들은 여자 얼굴과 몸매만 따지는 남자들 못지않다”고 꼬집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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