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실종자 가족들이 지난해 4월29일 오후 전남 진도군 진도체육관 안에서 이날 오전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침몰사건과 관련해 사과하는 내용의 방송 뉴스를 보고 있다. 진도/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청와대가 세월호 참사 등 주요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에 대한 구두보고와 대통령의 구두지시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고 있다는 점이 확인돼 “조선시대보다 못한 대통령 기록관리”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녹색당과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한국기록전문가협회, 한국국가기록연구원은 20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판문점 지뢰 폭발 사건 등 주요사건에 대해 대한민국의 최고권력자인 대통령의 중요한 의사결정과 관련된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밝혔다. 이 단체들은 “심지어 조선시대에도 왕의 옆에 항상 사관이 있어 왕이 하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까지 기록했고,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도 백악관 녹음기록이 존재했기 때문에 진상이 밝혀질 수 있었다. 정보화시대에 조선시대보다 못한 기록관리”라고 덧붙였다. 이 단체들은 “청와대는 현재의 부실한 기록관리시스템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기록관리시스템을 혁신해야 한다. 또 국회는 청와대의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에 대해 조사하고 녹음 등을 입법으로 강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청와대는 지난해 녹색당이 청구한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에 대한 보고와 대통령의 지시사항에 대한 정보공개를 거부했다. 그러자 녹색당은 지난해 10월 청와대를 상대로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했다. 청와대가 소송 과정에서 법원에 제출한 ‘4·16 세월호 사고 당일 시간대별 대통령 조치사항’을 보면,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 안보실로부터 구조 인원과 구조세력 동원 현황 등에 대한 보고를 받는 것을 시작으로 오후 5시15분까지 모두 18차례의 보고를 받았다. 이중 서면보고는 11건, 구두보고는 7건이고 박 대통령은 “단 한 명의 인명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 “해경 특공대를 투입해서라도 인원구조에 최선을 다할 것” 등 6차례에 걸쳐 구두로 지시를 내렸다.
청와대가 소송 과정에서 법원에 제출한 ‘4·16 세월호 사고 당일 시간대별 대통령 조치사항’
21일 결심공판을 앞둔 이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재판과정에서 청와대는 구두보고 7건과 대통령의 구두지시 6건과 관련해 처음에는 정보공개법상 ‘비공개 사유’에 해당해서 공개할 수 없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구두보고와 지시 내용이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다’고 말을 바꿨다”고 했다. 또 하 위원장은 “청와대가 제출한 18건의 보고는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해 박 대통령이 서면과 유선으로 21차례의 보고를 받았다고 발표한 내용과도 횟수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청와대는 지난 5월26일과 6월30일 준비서면을 통해 “대통령이 평소 사용하는 업무전화기를 통해 국가안보실장 등 참모진들에게 지시하거나 보고를 받는 경우나 직접 면전에서 구두로 지시·보고가 있는 경우에는 별도로 녹음하거나 이를 녹취하지 않는 것이 업무의 관행”이라고 밝혔다.
전혜영 한국국가기록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박근혜 정부가 정부3.0을 통해 공공기관의 기록 공개와 행정 투명성을 강조하면서 정작 청와대는 기록공개를 위한 바탕인 기록을 남기지 않는 것은 모순”이라고 꼬집었다. 김유승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은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안에서 하는 모든 발언을 기록으로 남긴다. 한국의 ‘대통령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은 미국에서 상당부분 가져온 것인데 대통령 기록의 중대성을 담은 이 법의 취지와 정신은 상실돼 있다”고 했다.
또 기록이 남아있는 대통령에 대한 서면보고 11건에 대해 청와대가 밝힌 비공개 사유에 대해 하 위원장은 “이 자료가 공개되면 대통령이나 보좌기관이 업무수행을 하는 과정이 밝혀져 이후에 업무수행하는 데 현저한 지장이 초래되기 때문에 밝힐 수 없다고 한다”고 전했다. 하 위원장은 “그러나 국민의 알권리와 이같은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공개해야 마땅하다”고 반박했다.
김규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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