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검문소 총기사고와 경찰의 석연찮은 해명

등록 2015-08-26 16:56수정 2015-08-27 13:25

[뉴스AS]
25일 오후 서울 은평구 진관동 구파발 군경합동검문소 내무반에서 총기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의경 한 명이 숨졌습니다. 경찰 수사 결과, 내무반 감독관인 박아무개(54) 경위가 25일 오후 4시45분께 자신을 빼놓고 간식을 먹고 있던 의경 3명과 장난을 치는 과정에서 안전고무를 제거한 뒤, 공포탄이나 실탄이 발사되지 않을 것으로 오인해 방아쇠를 당겼다가 실탄이 발사됐고, 박아무개(21) 상경이 왼쪽 가슴을 맞아 숨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경찰은 박 경위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입니다.

의무 복무를 하던 젊은 생명이 숨진 사건인데, 경찰의 설명을 들어도 석연치 않은 의문이 몇 가지 남습니다. 석연치 않은 의문과 사건을 둘러싼 기본 지식들을 하나씩 정리해봤습니다.

1. 한국 경찰 무슨 권총 쓰나?

한국 경찰이 사용하는 스미스앤드웨슨(S&W) 모델 10 권총. 스미스앤드웨슨 누리집 갈무리
한국 경찰이 사용하는 스미스앤드웨슨(S&W) 모델 10 권총. 스미스앤드웨슨 누리집 갈무리

-한국의 일선 경찰은 대부분 탄두의 구경이 0.38인치(약 9.7mm)인 38구경 6연발 리볼버 권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주로 쓰는 기종은 미국의 총기제조사 스미스앤드웨슨(S&W)이 만든 ‘모델 10’입니다. 몇년 전부터 총열 길이를 1인치, 무게를 360g 가량 줄이면서 휴대성을 높인 은색 권총 ‘모델 60’을 도입했지만 보급률이 높지 않습니다. 사건에 사용된 권총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만 동일한 총탄을 사용하기 때문에 둘의 살상능력은 같습니다. 38구경 권총은 한때 군용으로 쓰였으며, 이번 사건처럼 근거리에서 피격당하거나 급소에 명중하면 치명상을 입거나 생명을 잃을 수 있습니다.

한국 경찰이 사용하는 스미스앤드웨슨(S&W) 모델 60 권총. 스미스앤드웨슨 누리집 갈무리
한국 경찰이 사용하는 스미스앤드웨슨(S&W) 모델 60 권총. 스미스앤드웨슨 누리집 갈무리

일각에선 한국 경찰의 38구경 권총이 미국 경찰이 쓰는 40구경 권총이나 대형 동물까지 사냥할 수 있는 44구경 권총에 견줘 ‘약하다’는 평가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총기로 무장하지 않은 민간 범죄자를 주로 상대하는 한국 경찰이 이보다 강력한 총을 쓸 일은 많지 않습니다. (대간첩 작전 등 강한 물리력이 필요한 경우 경찰서 무기고 등에서 별도의 화기를 지급받아 사용합니다.)

2. 권총에 걸린 안전장치는?

-경찰장비관리규칙은 경찰이 휴대하는 권총의 6개 약실 가운데 ‘1탄은 공포탄, 2탄 이하는 실탄을 장전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실제 현장에서 경찰은 휴대 상태에서 공이가 위치하는 ‘6탄’ 약실을 아예 비워두고 있습니다.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는데도 공이가 탄피를 때려 발생하는 오발 사고를 막기 위해서입니다. 공포탄은 1탄에 장전하게 됩니다. 실제 범죄 현장에서 폭음과 화염으로 위력 사용을 경고할 수 있는 것이 공포탄이지요. 그리고 두번째 약실부터 다섯번째 약실까지 모두 4발의 실탄이 장전됩니다. 그러니까, 경찰관이 실탄을 발사하려면 방아쇠를 최소 두 번 당겨야한다는 말이 됩니다. 휴대 상태에서는 공이가 빈 약실 위에 있을 것이며, 첫 번째 방아쇠를 당기면 실린더가 돈 다음 공포탄이 발사되고, 두 번째는 실탄 발사 등의 순서가 되겠지요.

경찰 규정에 따른 탄 6연발 리볼버 권총 장전 예. 오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평소 휴대 상태에 공이가 놓이는 6탄 약실은 비워두며, 1탄 약실에는 공포탄(노란색), 2~5탄 약실에는 실탄(빨간색)을 장전한다. 예시에 사용된 권총은 콜트 파이슨 357로, 실제 경찰 권총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위키미디어 커먼스
경찰 규정에 따른 탄 6연발 리볼버 권총 장전 예. 오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평소 휴대 상태에 공이가 놓이는 6탄 약실은 비워두며, 1탄 약실에는 공포탄(노란색), 2~5탄 약실에는 실탄(빨간색)을 장전한다. 예시에 사용된 권총은 콜트 파이슨 357로, 실제 경찰 권총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위키미디어 커먼스

여기에 안전 장치가 하나 더 추가됩니다. 방아쇠를 당길 수 없도록 방아쇠 뒤에 단단한 고무 재질의 안전 장치를 설치해두고 있습니다. 보통 ‘안전 고무’라고 부릅니다. 정리하자면, 실탄을 발사하기 위해선 안전 고무를 빼고, 방아쇠를 두 번 당기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실수를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지요.

그런데 25일 사건에서 박 경위는 방아쇠를 딱 한 번 당겼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런데 실탄이 발사돼 박 상경이 피격당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경찰 권총의 안전 고무 개념도. 방아쇠 뒤쪽에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어 실수로 방아쇠가 당겨져 발생하는 사고를 방지한다.
경찰 권총의 안전 고무 개념도. 방아쇠 뒤쪽에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어 실수로 방아쇠가 당겨져 발생하는 사고를 방지한다.

3. 풀리지 않는 의문들

경찰은 이에 대해 “총탄을 장전할 때 실수가 있지 않았나 싶다”며 “박 경위는 공격발로 생각하고 방아쇠를 당겼다고 한다”고 말합니다. 실수라는 말이 맞다면 두 가지 가능성이 나옵니다. 박 경위가 됐든 박 경위와 근무 교대를 하면서 총기를 인수인계한 또 다른 경찰이 됐든 총기에 총탄을 장전을 한 사람이 공포탄과 실탄을 헷갈린 경우입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순서대로 맞게 총탄을 장전했으나 추후에 리볼버 실린더가 돌아가면서 순서가 바뀐 경우입니다.

먼저 공포탄과 실탄이 헷갈린 경우라면, 그 가능성이 몹시 의문스럽습니다. 공포탄은 실탄과 달리 탄두가 없어서 육안으로도 쉽게 구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989년 경찰에 입문해 26년이나 경찰관 생활을 한 54살 간부가 한 실수라고 보기엔 뭔가 석연치 않지요.

두 번째로 순서대로 맞게 총탄을 장전했으나 추후에 실린더가 돌아간 경우라면 어떨까요. 경찰은 25일 브리핑에서 “2번 실탄이 격발됐다”며 “총을 쏜 뒤에 보니, 1번 실탄은 11시 방향에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경찰은 또 26일 브리핑에서 “박 경위가 총기를 인수인계받을 때 실린더를 열고 공포탄 1발과 실탄 3발을 확인하고 닫았다고 한다”며 “하지만 닫을 때 상황이 어땠는지는 기억나지 않고,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라고 한다”고 밝혔습니다.

종합하면, 총을 쏘기 전에 이미 실린더가 돌아가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그런데 실린더는 사실 왠만한 물리력을 가하지 않으면 돌아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총을 격발하는 공이가 걸려 있으니까요. 공이를 살짝 들고 실린더를 돌리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지만, 실수로 총을 쐈다는 박 경위가 그렇게까지 정말하게 총을 만졌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경찰은 “실린더를 옆으로 제끼면 빙글빙글 돌아간다"고도 밝혔습니다. 그러니 박 경위가 총탄을 확인한 뒤 실린더를 닫는 과정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박 경위도 모르게 총탄 순서가 바뀐 것일까요.

그러나 이런 가능성들은 모두 선명하게 사건을 설명해주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안전 고무는 어떻게 된 걸까요. 경찰은 “사망한 박 상경 등 의경 3명과 박 경위가 장난을 치면서 총을 쏘는 흉내와 피하는 흉내 등을 냈다. 이런 장난을 치면서 박 경위가 안전 고무를 제거했다”고 밝히고 있는데요. 안전 고무를 제거하면서까지 장난을 쳐야 했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요. 단순히 안전 불감증이나 경찰 기강 해이 정도로 설명할 수 있는 걸까요.

이 때문에 장난이나 실수에 의해 의해 벌어진 사고가 아니라 고의성을 가지고 행한 사건 아니냐는 의견이 경찰 내부에서도 나옵니다. 한 경찰은 “안에 실탄이 들어있기 때문에 장난으로라도 보통 총을 겨누지는 않는다“며 ”더군다나 첫발은 공격발, 두번째는 공포탄, 세번째부터 실탄인데 바로 실탄이 나왔다는 것도 이상하다. 내부적으로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경찰도 “사고가 아니라 사건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일각에선 고의까진 아니어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혐의로 수사를 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군인권센터는 26일 기자회견을 열고 “총기를 장난으로 사용했다는 말이야말로 장난으로 보이는데도 경찰당국은 박 경위의 오발 주장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앵무새처럼 되뇌이고 있다”며 “정확히 박 상경의 급소를 향해 총을 겨누고 안전 고무를 의도적으로 제거한 것은 당연히 미필적 고의를 의심해야 하며 처음부터 ‘오발사고’로 단정지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이에 대해 “평소에 박 경위와 의경들의 관계로 볼 때 고의성이 있어 보이진 않는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 역시 아직은 모를 일입니다.

기자는 20여년 전 신병훈련소에서 K2 소총을 처음 받아보고 신기한 마음에 동기들끼리 서로 겨눴던 적이 있습니다. 이를 본 조교는 불같이 화를 내며 소대 전체에 얼차려를 가했습니다. 이번 사건으로 그때 들었던 ’빈 총으로라도 사람 겨누지 말라’는 불호령이 떠올랐습니다. 기껏해야 20대 초중반인 젊은이도 아는 총기 안전 상식인데, ‘장난으로 실탄이 든 총을 사람에게 겨눴다’는 이야기를 하는 경찰,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을까요.

조승현 기자 shch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속보] 윤석열 “연설 때 박수 한번 안 치더라”…계엄 이유 강변 1.

[속보] 윤석열 “연설 때 박수 한번 안 치더라”…계엄 이유 강변

[단독] 박현수 서울청장, 이명박·박근혜·윤석열 대통령실에 전부 파견, 모두 승진 2.

[단독] 박현수 서울청장, 이명박·박근혜·윤석열 대통령실에 전부 파견, 모두 승진

[속보] 헌재, 윤석열 반발 일축…“내란 피의자 조서, 증거능력 있다” 3.

[속보] 헌재, 윤석열 반발 일축…“내란 피의자 조서, 증거능력 있다”

[단독] 윤석열 “‘덕분에’ 빨리 끝났다”…조지호 “뼈 있는 말로 들려” 4.

[단독] 윤석열 “‘덕분에’ 빨리 끝났다”…조지호 “뼈 있는 말로 들려”

“빨갱이라고?”…유재석·한강·아이유 등 100명 명단 SNS에 돌아 5.

“빨갱이라고?”…유재석·한강·아이유 등 100명 명단 SNS에 돌아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