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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삐삐도 핸드폰도 없던 시절…“우리, 종로서적에서 만나요”

등록 2015-09-17 22:36수정 2015-09-18 13:29

종로서적.
종로서적.
[광북 70년, 책읽기 70년]
서점은 책과 사람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던 공간
대학가 서점 창문은 간이게시판
약속 장소 알리는 색색 메모지
예전에 서점은 책과 사람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공간이기도 했다. 1980년대를 전후한 시기에는 거의 모든 대학 주변에 작은 인문사회과학 서점들이 있었다. 그곳은 운동권만이 아니라 모든 학생들의 사랑방이었다. ‘삐삐’도 핸드폰도 없던 그 시절, 저녁나절이면 서점 창문에 붙은 간이게시판에는 약속 장소를 알리는 형형색색의 포스트잇이 나부꼈다. ‘××과 개강총회 ××로’ ‘××× 생일파티 ××로’ 등등. 약속 장소를 확인한 후 서점에 들어가 책을 한 권 사들고 첫 속지에 때로는 좋아하는 마음을 수줍게 숨겨둔 문장을, 때로는 사회를 위해서 헌신하자는 멋진 다짐을 써서 생일파티 장소로 향했던 추억을 떠올리는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이제는 경영난으로 거의 사라진 그 서점들과 더불어 어쩌면 우리네의 추억도 함께 ‘도산’하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이러한 서점 문화의 경험은 대학생만의 것은 아니었다. 시민들도 자기 지역의 서점에서 책과 사람을 만났다. 규모에서는 1981년 개점한 교보문고나 1990년대 문을 연 영풍문고에 뒤졌지만, 오랜 역사를 지니고 대중들의 애호를 받았던 추억의 서점으로 종로서적을 빼놓을 수 없다. 1907년 서울의 중심 종로 복판에 ‘예수교서회’라는 이름의 기독교 서점으로 출발한 종로서적은 주변 대형서점 및 인터넷 서점과의 경쟁으로 경영난을 겪다가 월드컵 열기가 달아오르던 2002년 6월 부도 처리되었다. 많은 이들이 그 시절 친구 혹은 애인 등 정겨운 이들을 만나러 종로서적으로 설레고 바쁜 발걸음을 옮겼다. 종로서적은 한 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시민들이 책과 사람을 만나는 소중한 명소였다. 대학가와 마을의 작은 서점들, 100년 전통의 서점을 지켜내지 못하는 현실, 국민소득 3만달러 구호가 울려 퍼지는 우리 시대의 부끄러운 문화적 초상은 아닌지 반문하고 싶다.

정종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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