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아버님댁에 귀뚜라미 한마리 사드려야겠어요.”
머잖아 이런 내용의 광고를 보게 될는지도 모르겠다. 가을철이면 흔히 들을 수 있는 귀뚜라미(왕귀뚜라미·사진) 울음소리가 노인들의 우울증 치료에 효과가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귀뚜라미가 ‘반려곤충’의 반열에 오르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도 나온다.
농촌진흥청은 28일 귀뚜라미의 울음소리가 노인들의 정서적 안정과 인지능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인 <제론톨로지>(노인병학)에도 실렸다.
이번 연구는 65살 이상의 노인 94명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쪽 그룹만 귀뚜라미를 두달 동안 키우게 하고, 그러지 않은 쪽과 비교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귀뚜라미를 키운 그룹은 우울증 지수는 낮아진 반면 인지 기능과 정신적 삶의 질(건강) 지수는 높아졌다. 또 자기공명영상(MRI)으로 이들 두 그룹의 뇌를 찍어보니 귀뚜라미를 키운 이들의 뇌 활성도와 임무 수행 정확도가 높아졌다.
이번 연구에 사용된 왕귀뚜라미는 한국에 사는 30여종의 귀뚜라미 가운데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종이다. 자연에서는 1년살이 곤충으로 가을에 소리를 내어 짝짓기를 한 뒤 알을 낳고 죽는다. 알은 겨울을 나고 봄에 깨어나 서너달가량 어린벌레(약충)로 지낸 뒤 늦여름에 어른벌레(성충)가 돼 두달가량 노래를 부른다. 그러나 인공으로 기르면 생애 주기 전체가 여섯달 정도로 줄어든다.
다만 인공에서도 어른벌레로서 노래하는 기간이 두달뿐이고, 그 뒤엔 바로 죽기 때문에 노인들한테 또다른 심리적 충격을 줄 수도 있다. 귀뚜라미는 고려 때부터 궁중의 여인들이 키웠다는 기록이 있다. 농진청 강필돈 곤충산업과장은 “개나 고양이 같은 보편적 반려동물 외에 왕귀뚜라미도 사람들의 정신 건강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온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왕귀뚜라미는 인터넷이나 대형마트 등에서 구입할 수 있다.
세종/김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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