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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아시아 첫 저글링 세계 챔피언 재일동포 3세 김창행씨

등록 2005-10-14 18:34수정 2005-10-14 18:34

김창행씨
김창행씨
“세계 최고 묘기로 ‘조선인’ 차별 날렸다”
“어려서부터 증조할머니가 ‘뭘 하든 세계 최고가 돼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재일 조선인은 무엇을 하든 일본인들이 인정을 하지 않지만, 세계 최고가 된다면 그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계평화의 꿈을 싣고 지구촌을 항해중인 피스보트에서 만난 ‘저글링 세계챔피언’ 김창행(20)씨는 저글링의 최고봉에 오르기까지 험난한 과정에서 자신을 격려해준 정신적 지주가 증조할머니의 가르침이었다고 말했다. 이달 초 아프리카 케냐에서 피스보트에 오른 그는 신기에 가까운 저글링 묘기로 스무살 나이에 이미 ‘만능 연예인’이란 별칭을 얻었다. 저글링이란 공 같은 물건 3개 이상을 공중에서 두 손으로 돌려받는 것을 말한다.

그는 불과 15살 때인 2000년 ‘세계 엔터테이너 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4년에 한번씩 열리는 이 대회에서 아시아인이 금메달을 따낸 것은 50여년 대회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고 한다. 그는 지난해 캐나다에서 열린 대회에서 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내년 독일 월드컵 개막식에도 초대돼 특별공연을 한다.

우토로의 15살 소년 세계 재패
일본 언론들 취재하고도 외면
“세계 빈민촌 돌며 자선공연 꿈”

태극기가 그려진 트레이닝복을 즐겨 입는 그는 일본 식민지 시절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의 집단 거주지역인 교토의 우토로 마을에서 나고 자란 재일동포 3세다.

김씨는 ‘재일 조선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선 어려서부터 차별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어머니의 뜻에 따라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일본인 학교에 다녔다고 했다. 학교에선 ‘오카모토 마사유키’란 일본식 이름을 사용했지만, 그가 재일 조선인임을 모르는 아이들은 없었다. 운동회 때마다 그의 어머니가 태극기와 ‘공화국기’(북한기)를 양손에 들고 학교를 찾아 아들을 응원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재일조선인의 차별을 지적한 ‘내가 최고가 되고 싶은 이유’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가 담임교사로부터 매를 맞으면서 ‘차별’의 뼈아픈 실체를 경험했다고 말했다.

그의 인생이 바뀌기 시작한 건 중학시절 우연히 들어간 저글링용품 전문점에서 비디오 테이프를 발견하면서다. 김씨는 “제목이 ‘당신은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돼 있었다”며 “호기심에 한번 따라해 봤는데, 그리 어렵지 않게 흉내를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 때부터 그는 밤낮없이 저글링 연습에 매달렸다. 그렇게 저글링에 입문한 지 1년여 만인 중학 3학년 때 출전한 세계대회에서 그는 1100여명의 성인을 제치고 우승했다.

세계 최고가 됐지만, 주변에선 여전히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일본에 사는 한국인’으로 알고 취재에 나섰던 일본 신문·방송사들은 김씨가 ‘자이니치(재일)’란 사실을 알고는 기사를 내보내지 않았다. 다행히 세계대회 입상 경력이 인정돼 ‘저글링 특기생’으로 교토고교에 진학하면서 지긋지긋한 따돌림과 매질에선 벗어날 수 있었다. 학교 명물이 된 덕에 중학교 때까지 한명도 없었던 친구도 여럿 생겨났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친한 친구 몇에게 처음으로 재일 조선인이란 사실을 털어놨다고 한다.

요즘도 하루 10시간 이상 연습에 매달린다는 그는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그 리듬을 저글링으로 표현해 내는 게 꿈”이라고 했다. 역시 특기생으로 입학한 교토대 법학부 생활은 잦은 외국 공연으로 잠시 미뤄둔 상태다.

그는 “오는 2008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세계대회에서 3연패에 성공하면, 대회에는 더 이상 나가지 않을 생각”이라며 “대신 내가 태어난 우토로와 비슷한 전세계 빈민가를 돌며 자선공연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피스보트/글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사진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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