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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기자가 물대포 맞아보겠다고 나서자, 경찰 ‘안돼요’

등록 2015-11-17 17:14수정 2015-12-07 11:02

17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지방경찰청 기동본부에서 열린 경찰 살수차 시연.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17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지방경찰청 기동본부에서 열린 경찰 살수차 시연.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영상] 경찰, 살수차 물대포 시연
3000rpm, 10m거리 ‘직사 물대포’ 맞아 보셨나요
백씨가 맞았던 세기와 거리와 유사한 직사 물줄기
아스팔트 바닥 부딪힌 뒤 어른 무릎까지 튕겨올라
“3000아르피엠(rpm) 10m 직사입니다. 자, 기자님들 비키세요. 물도 많이 튀고 위험할 수 있어요. 자, 이 방송을 경고방송으로 갈음하겠습니다!”

17일 오전 서울 신당동 서울지방경찰청 기동본부 앞마당에서 거센 물보라가 일었습니다. 지난 14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대회에 참석한 농민 백남기(68)씨가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중태에 빠진 가운데, 경찰은 이날 “실제로 살수차가 어떻게 운용되는지 보여주겠다”며 기자들을 불러 시연회를 열었습니다. “경찰이 ‘살수차 운용지침’을 제대로 지켰냐”는 논란 속에 벌어진 시연회에서 서울청 관계자는 “당시 상황을 재연하려는 게 아니라 살수차의 구조와 기능에 대해 설명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백씨 중상 입힌 살수차 운용 어떻게 했길래…

이날 등장한 살수차는 8.5t 트럭을 개조해 만든 차량으로 2010년 도입했습니다. 백씨에게 물대포를 쐈던 충남지방경찰청 소속 살수차(9호차·2005년식)는 아니지만, 비슷한 구조입니다. 철망·철판으로 둘러싸인 차량에는 최대 10m 높이에서 물을 뿌릴 수 있는 지지대에 물포가 달려 있습니다. 지지대는 위아래, 양옆으로 회전이 가능해 표적을 따라가며 물을 뿜을 수 있습니다. 차량 지붕에도 물포가 있습니다. 1분당 2400ℓ, 최대 4t의 물을 뿜어내는 살수차에는 2명의 운용요원이 탑니다.

■ 살수 강도 시연회 2500rpm

두 물포 바로 위에는 41만 화소짜리 카메라가 설치돼 있습니다. 물대포 앞에 달린 카메라가 모니터 화면은 중계하기 때문에 당시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경찰은 지난 16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당시 살수차 운용요원 등이 장시간 계속된 시위 상황으로 정신이 없는데다, 카메라에서 보이는 물보라가 워낙 커서 백씨가 넘어진 것은 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카메라 위치를 바꿔 달거나 성능을 높이는 등 개선이 필요해 보입니다.

얼마나 강하길래 1m까지 튕겨나갔을까?

경찰은 지난 1988년 이스라엘에서 수입한 살수차 2대를 처음 도입했습니다. 앞서 4·19 혁명 당시 경찰이 한강 인도교를 건너려는 대학생 시위대에게 소방차를 동원해 물대포를 쐈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안행위) 임수경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현재 전국에는 모두 19대의 살수차가 있습니다. 2005년부터 국산화를 시작했습니다.

이날 살수차 시연회에서 경찰은 아스팔트 바닥을 향해 물대포를 쐈습니다. 물보라가 어른 무릎 높이까지 튀어올랐습니다.

살수차가 뿌릴 수 있는 최대 수압은 15바(bar)로 1㎠당 15㎏의 무게가 전해지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화재진압에 쓰는 소방호스(평균 수압 10바)보다 1.5배 정도 세다고 합니다. 그러나 “도대체 얼마나 세게 쐈길래 백씨가 1m 남짓 밀려났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경찰은 마네킹 등의 표적물을 두고 시연하자는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본인이 직접 맞겠다고 나선 기자도 있었지만, 이 마저도 거부했습니다.

아날로그 장치가 가득한 차량 내부를 보니, 경찰이 규정대로 쐈는지를 확인할 길이 없었습니다. 차량 내부엔 폭 60㎝의 스위치 패널 안에 최루액·색소 등을 섞는 스위치와 아르피엠 계기판이 있었습니다. 지름 10㎝의 다이얼을 돌려 500아르피엠 단위로 0~3000아르피엠까지 조절할 수 있다고 합니다. 즉, 운용요원이 다이얼을 계속 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상태로 둘 수 있어서 경찰이 백씨에게 “2800아르피엠 정도로 쐈다”고 주장하는 바를 확인할 방법조차 없습니다. 경찰이 살수차를 발주할 당시 규격서(제안요청서)에도 이에 대한 요구사항은 없고 다만 분당 방수량, 최대 수압에 대한 규정만 있었습니다. 게다가 아날로그식 다이얼이라 급박한 상황에서 과연 잘 보일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운전석·조수석에도 운용지침을 요약해둔 문서도 없었습니다.

진압 현장에서는 직사로 오래 쏘았을텐데…

이날 경찰은 기자들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대출력인 3000아르피엠으로 물대포를 오래 쏘지 않았습니다. 10초 남짓 쏘는데 현장에 있던 경찰 관계자는 “엔진에 과부하가 걸려 쉬었다 쏴야 한다”고 했습니다. 집회 현장에선 직사로 오래쏘는 경우가 많았을 텐데 이상한 일이었죠.

의문은 살수차의 모습 뿐아니라 ‘살수차 운용지침’에서도 이어집니다. 4년 전 한·미 자유무역협정반대 집회 때 박희진(40)씨가 물대포에 맞아 고막이 찢어졌고, 이강실 한국진보연대공동대표는 뇌진탕을 입는 등 대형 집회마다 살수차 운영에 대해 손봐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경찰은 ‘요지부동’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8년 촛불집회 당시 “살수차를 사용할 때 압력이나 최근 거리 등 구체적인 사용기준을 명시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라”고 경찰청에 권고를 했지만, 당시 경찰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헌법재판소도 2011년 결정문에서도 “경찰관직무집행법에서 살수차를 위해성 장비의 하나로 추가한 뒤 ‘위해성 경찰장비는 필요한 최소한도에서 사용해야 한다’는 내용을 규정한 것 외에 여전히 구체적인 사용기준에 대하여는 아무런 규정을 두지 않고 경찰청 훈령과 같은 내부 지침에 맡기고 있다”며 제도적 미비를 지적한 바 있습니다.

■ 살수 강도 시연회 3000rpm

국회서 예산 줄이려 하자, “살수차는 인권 보호장비” 궤변

실제로 살수차가 아르피엠에 따라 직사를 할 대에는 분산·곡사·직사 살수 등을 몇 초 동안 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습니다. 또 직사 살수의 경우에는 “분산·곡사 살수를 거쳐야 한다”는 내용도 없습니다. 구 청장도 이 지침을 두고 “예시일 뿐이다”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총기와 같이 분류하는 위해성 장비인 살수차에 대한 좀 더 구속력 있고, 상황에 따라 구체적인 운용 방법을 담은 지침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경찰 살수차 보유현황
경찰 살수차 보유현황
경찰은 최근 국회에 1997년에 도입된 살수차 3대를 교체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지난 9일 국회 안행위 예산심사소위원회에서 경찰은 살수차 도입을 끈질기게 요구했지만, 결국 내년도 살수차 예산은 1대 분(3억원)으로 줄었습니다. 당시 회의속기록을 보면, 의원들은 지난 5월 세월호 추모집회 등에서 물대포 직사에 따른 집회 참가자 부상 등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예산을 줄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상원 경찰청 차장은 위원들에게 “살수차는 인권 보호장비”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윤영석 새누리당 의원은 “살수차는 시위 자체를 아주 평화적으로 진압하기 위한 그런 부분이죠? 살수차가 도입된 것은 김대중 정부 당시 시위 진압문화를 바꾸기 위해서 한 것 아니겠습니까”라며 경찰의 주장에 힘을 실어줬습니다. 강창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도 “살수차는 인권보호를 위해서 필요한 것 아니야? 옛날에는 최루탄으로 막 해버렸는데…”라는 말을 했습니다. 백씨가 부상당하기 닷새 전에 이런 발언을 한 의원들이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14일 밤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민중총궐기 대회를 하려던 시민들이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14일 밤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민중총궐기 대회를 하려던 시민들이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경찰, 이번 사고는 “우연찮게 쏘다 보니 생긴 불상사” 발뺌

상황이 이러한데도 구은수 서울청장은 백씨가 부상당한 이번 사고를 “우연찮게 쏘다 보니 불상사가 생긴 것이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시위대와 경찰을 떨어뜨리기 위해선 최후의 방지책이 살수차 밖에 없다”고도 했습니다. 결국 계속 사용하겠다는 뜻입니다. 집회 참가자의 생명을 위태롭게 만드는 ‘우연’이 반복되지만, 제도개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듯합니다.

■ 민중총궐기 당시 물대포 맞고 사다리에서 떨어진 시민

그런 가운데 지난 14일 집회에서는 경찰이 종로구청앞 사거리에서 차벽트럭 위에 올라 살수차의 물대포와 비슷한 세기의 ‘휴대용 물대포’로 시위대를 향해 직사하는 장면까지 목격됐습니다. 시민단체들이 꾸린 인권침해감시단이 동영상으로 촬영했는데요. 이 경찰관은 호스를 직접 잡은 채 사다리를 대고 차벽에 오르는 집회 참가자를 향해 1m 이내에서 직사를 했습니다. 물대포를 맞은 참가자는 3m 정도 높이의 사다리에서 떨어졌습니다. 경찰장비규정에도 없는 ‘유령 장비’가 등장한 것도 과연 우연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위해성 장비’에 대한 강력하고 제한적인 규정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에 앞서 ‘위해성 장비’인 살수차를 버젓이 ‘인권장비’라고 말하는 이들의 낮은 인권의식에 대한 개선부터 필요해 보입니다. 같은 도구일지라도 쓰는 사람에 따라, 방법에 따라 인권적으로 쓰이는가 하면 사람을 다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박태우 기자
박태우 기자
다시 한 번, 백남기씨와 집회 당시 부상을 입었던 집회 참가자들, 그리고 공무집행 중에 부상을 당한 경찰관 여러분들의 쾌유를 빕니다.

박태우 김규남 기자 ehot@hani.co.kr

관련영상 : 11월14일 민중총궐기 대회, 세월호 이준석 선장 살인죄로 무기징역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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