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카카오는 지난 10월6일 사이버 사찰 논란 속에 일년 동안 중단했던 감청 영장 협조를 다시 시작하며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와 중범죄자 수사에 차질을 빚는다는 비판 사이에서 고민한 결과”라고 밝혔다. 카카오톡을 대신할 ‘사이버 망명지’로 꼽혔던 독일 ‘텔레그램’은 지난 20일 “(테러에도 불구하고) 정부를 비판하는 것이 불법인 국가에서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검열에는 응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비슷한 두 개의 서비스가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한국에서 무료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을 쓰는 사람은 3800만명에 이른다. 사람들은 숨 쉬듯 카톡을 한다. 의사소통 수단이 변하면 그 내용을 감시하고자 하는 국가권력의 ‘감청 욕망’도 변한다.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하면서 ‘감청 욕망’은 국민 대다수가 쓰는 모바일 서비스를 향하게 됐다. 감시 권한을 강화하려는 욕망은 최근 파리 테러를 빌미로 더 거세지고 있다.
과거내용 보는 압수수색 영장으로
카톡 계정수 16만여개 들여다봐
미래내용 보는 감청영장 쉽게 받으려
여권·국정원 ‘테러방지법’ 추진해
카카오톡, 결제·인터넷은행 등 확대
법 시행땐 더 많은 개인정보 엿볼 듯
■ 국정원-국가보안법, 한국의 특수성 2015년 현재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감청 욕망’을 보이는 곳은 국정원이다. 올해 상반기 국내에서 이뤄진 실시간 감청의 98.6%(2791개)를 국정원이 집행했다. 아직까지 감청 설비가 없어 휴대전화 감청이 불가능하니 통계에 잡히는 감청은 유선전화 번호와 인터넷 계정만을 대상으로 한다.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동안 국정원이 실시간 감청으로 들여다본 인터넷 계정 수는 6405개에 달한다. 지난해 카카오가 감청 협조 중단을 선언했던 당시 검찰이 나서 “중대 범죄 수사에 방해가 된다”는 논리를 폈지만 사실상 거의 모든 감청은 국정원과 국가보안법을 위해 작동하는 셈이다.
국정원 감청은, 누구의 관리·감독도 받지 않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반국가활동을 폭넓게 규정한 ‘국가보안법’을 근거로 한다는 점에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경찰의 경우 올해 1~6월 감청 영장 21개를 통해 평균 2개씩의 유선전화 번호와 인터넷 계정을 들여다봤다. 하지만 국정원장이 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의 허가를 받아 집행하도록 되어 있는 국정원은 영장 1장당 15.3개의 감청을 요구했다.
다른 범죄 수사는 두 달, 국가 안보를 이유로 한 건은 넉 달까지 한 개의 영장을 이용해 특정인을 감청할 수 있다. 감청 종료 뒤에는 당사자에게 감청 사실을 알려줘야 하지만 국가 안보 등을 사유로 들면 통지하지 않아도 되는 예외 조항도 있다. 국정원이 감청한 6405개의 인터넷 계정 당사자는 지금껏 자신이 감시당했다는 사실을 모를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테러방지법안 등 새누리당이 올해 테러 방지를 명분으로 내놓은 법안들이 모두 통과된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감청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 압수수색, 감청, 해킹… 커지는 욕망 현재부터 미래의 어느 시점까지 실시간으로 감청을 하는 행위는 과거에 오간 대화를 엿보는 압수수색과 차원이 다른 개념이다. 올해 1~6월 사이 국정원·경찰이 압수수색을 통해 들여다본 카카오톡 계정 수는 16만3354개에 이른다. 지난해 ‘사이버 사찰 논란’을 촉발했던 정진우씨의 경우 그의 카카오톡 계정 1개에 발부된 압수수색 영장을 통해 그가 포함된 단체대화방 등 3000여명의 대화 내용이 압수됐다. 이런 무차별 압수수색으로도 부족해 감청을 통해 카카오톡을 들여다보겠다는 것이 현재 상황이다.
국정원이 이탈리아 해킹팀과 거래해오며 ‘카카오톡 해킹’을 요구했었다는 사실로도 ‘카카오톡 감청 욕망’이 드러났다. 올해 국정원은 4년 동안 해킹 프로그램 ‘아르시에스’(RCS)를 운용해온 사실이 발각되자 해외의 간첩 혐의자를 감시하는 데 썼다고 해명했다. 통신비밀보호법은 외국에 있는 사람을 감청할 때는 반드시 대통령에게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국정원은 이마저도 “감청이 아닌 해킹”이라 보고할 필요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 대테러 명분에 힘 받는 감청 의무화 카카오톡의 기술적 특성상 실시간 감청 지원이 불가능한데도 감청 영장을 집행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문제다. 카카오톡 대화방은 그 안에 있는 사람들만 대화를 볼 수 있는 시스템이라 결국 카카오는 감청 영장이 들어와도 압수수색처럼 사후에 서버에 남은 기록을 모아 제출해야 한다. 박주민 변호사는 “기술적으로 실시간 감청이 불가능한 카카오톡에 대해 압수수색하듯 감청 영장에 협조하라는 것은 수사 편의만을 생각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동통신사의 경우 휴대전화 감청 설비를 갖추기 어렵다는 이유로 실시간 감청에 협조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 때문에 올해 새누리당은 통신회사가 감청 설비를 의무적으로 구비하도록 하는 법안을 잇달아 발의했다. 카카오톡 감청을 반대해온 시민단체들의 연합인 ‘사이버사찰 긴급행동’은 “국정원과 새누리당이 기업의 감청 설비 구비 의무화 법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기술적으로 불가능한데도 카카오톡 감청을 재개하는 것은 감청 의무화의 실현인 셈”이라고 비판했다.
감청 의무화는 갈수록 실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프랑스 파리 테러 이후 휴대전화 감청을 의무화하자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이 힘을 얻고 있다. 간첩에 이어 테러범을 색출해낸다는 명분이 국정원의 감시 권한이 더 강화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뒷받침하고 있다. 통신사의 감청 장비 구비가 의무화된다면 카카오톡은 물론 그동안 “기술적으로 감청이 불가능하다”며 감청·압수수색을 피해온 서비스들까지 감시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 결제, 택시, 대리운전… 몰리는 개인정보 카카오톡을 향한 ‘감청 욕망’이 커지는 상황에서 카카오가 내놓은 생활밀착형 수요자 중심(온디맨드) 서비스는 갈수록 더 많은 개인정보가 한곳으로 모이도록 만들고 있다. 간편결제 서비스인 카카오페이, 택시 호출 서비스인 카카오택시, 앞으로 나올 대리운전 서비스까지 카카오 계정 하나로 연결할 수 있다. 카카오는 인터넷전문은행까지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편리한 서비스를 통해 대중의 사랑을 받을수록 더 강렬해지는 ‘감청 욕망’ 앞에 서야 하는 카카오의 상황에 안타까움을 표하는 이들도 많다. 이름을 밝히기 꺼린 한 인터넷 기업 임원은 “외국 메신저의 공격 속에 어렵게 인기있는 국내 메신저가 탄생했는데 그걸 감청하려는 정치권력 때문에 곤란을 겪는 카카오를 보면 한국에서 인터넷 서비스 기업 운영하기가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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