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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폭격 화상’ 꼬마들 몸부림…난민열차가 멈출 곳 있을까요?

등록 2015-12-07 20:05수정 2015-12-08 09:28

시리아 난민 어린이 하디야가 27일 새벽 세르비아 프레셰보에서 시드로 향하는 난민 열차 안에서 어머니 카이라 옆에 앉아 잠을 자고 있다. 하디야는 1년 전 아사드 정부군이 쏜 포탄으로 4도 화상을 입었다. 시드/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시리아 난민 어린이 하디야가 27일 새벽 세르비아 프레셰보에서 시드로 향하는 난민 열차 안에서 어머니 카이라 옆에 앉아 잠을 자고 있다. 하디야는 1년 전 아사드 정부군이 쏜 포탄으로 4도 화상을 입었다. 시드/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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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새벽(현지시각), 8량짜리 열차 한 대가 희뿌연 연기를 뿜어내며 세르비아의 국경도시 시드에 도착했다. 전날 오후 5시30분, 세르비아의 프레셰보에서 출발해 10시간20분 동안 490㎞를 달려온 이 열차 안에는 마케도니아 국경을 넘어 세르비아로 들어온 시리아 난민 300여명이 타고 있었다. 프레셰보는 난민들의 ‘발칸 루트’ 중 마케도니아에서 세르비아로 향하는 첫 관문, 시드는 또 다른 기착지인 크로아티아로 향하는 출구 구실을 하는 도시다. 프레셰보에는 목숨을 걸고 시리아를 탈출해 유럽으로 가려는 난민 5000~8000명이 모여들어 매일같이 북새통을 이룬다. 난민들은 이곳에서 유효기간 72시간짜리 ‘난민등록증’을 받아 들고 시드로 가는 열차와 버스를 기다린다.

시리아·이라크 등서 탈출 300여명
12시간 비좁은 기차에 몸 누인 채
기차바닥 흙더미 이불에서 선잠

‘폭격 화상’ 자녀와 탈출 시리아인
IS 살해위협 도망친 이라크 소년도
“난민은 움직일 때마다 모든 게 위험”

시리아→터키→그리스→마케도니아
거쳐 세르비아 땅 겨우 밟았지만
또다시 크로아티아행 기차 몸 실어

낡은 2인석 좌석이 비좁은 통로를 사이에 두고 2열로 늘어선 난민 열차 안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열차 바닥은 난민들이 신발에 묻혀온 진흙이 덕지덕지 붙어 지저분했다. 난민들의 옷과 생필품 등이 담긴 각양각색의 가방과 비닐 더미 등이 가득 찬 선반은 무너질세라 위태로웠다. 한 주 내내 내린 비로 물에 젖은 스웨터와 바지, 조끼 등이 빨래처럼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좌석을 차지한 사람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흙바닥 위에 얇은 요를 깔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린 채 잠에 빠져들었다. 그들의 이불과 머리카락엔 흙먼지가 들러붙어 있었다. 버스를 타면 시드까지의 이동 시간을 5시간 정도로 절반 가까이 줄일 수 있겠지만, 1인당 요금이 20유로나 차이가 나 한푼이 아쉬운 사람들은 기차를 택했다.

마히르(가명·29)의 가족 8명도 이 열차 5번 객차 안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 시리아 북서부 이들리브에서 농사를 짓던 지난 1월 바샤르 아사드 정부군의 폭격을 받아 삶의 터전을 잃은 뒤 고향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폭격 당시 집 앞에서 놀던 셋째 딸 하디야(가명·5)가 4도 화상을 입는 등 네 아이 모두 화상을 입었고, 집도 파손됐다. 당장 시리아를 떠나고 싶었지만, 브로커에게 쥐여줄 돈이 없었다. 농사를 지어 한 달 손에 쥐는 300달러로는 당장 아이들 수술비 대기에도 버거웠다. 마히르 가족은 친척 집에서 10개월 동안 더부살이를 하며 모은 돈 4000달러를 브로커에게 지급하고 2주 전 간신히 시리아를 떠나는 난민 행렬에 오를 수 있었다.

이들리브를 떠나 터키와 그리스와 마케도니아를 거쳐 세르비아 시드로 가는 열차에 오르기까지의 2주는 “움직이는 것 하나하나가 위험투성이”라는 걸 깨닫는 고된 여정이었다. 터키에서 그리스로 가는 길, 여덟 식구 운명을 걸고 올라탄 고무보트에선 ‘암초에 부딪쳐 보트에 구멍이 나지 않을까’, ‘혹시나 바다 한가운데서 멈춰서는 건 아닐까’ 모터 소리가 달라질 때마다 마음을 졸여야 했다. 각 나라 국경에서 만나는 경찰들은 난민들에게 결코 따뜻하지만은 않았다. “줄서라”, “대기해라” 소리치고, 이리저리 잡아끌거나 손바닥으로 내려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프레셰보에선 난민등록증을 받기 위해 매서운 추위 속에서 5~8시간씩 오들오들 떨며 기다리기도 했다. 어렵사리 얻은 난민등록증을 1장이라도 잃어버릴까, 잘 간수하는 게 가장 중요한 체크사항이었다.

열차가 2시간쯤 달렸을 무렵, 잠을 청하던 하디야가 자꾸만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댔다. 화상으로 쭈글쭈글해진 얼굴 여기저기가 가려웠던 탓이다. 하디야는 이내 짜증을 내며 8개월 된 동생 알로브(가명)를 안고 있는 엄마 카이라(가명·25)에게 기대며 울음을 터뜨렸다. 아빠와 오빠 이트리스(가명·8)와 좌석 아래 빈 공간에 누워서 잠을 청하던 카디자(가명·7)와 옵딕(가명·4)의 얼굴에도 화상 자국이 선명했다. 동생 알라바(가명·3)는 잠이 안 오는지 창을 타고 구르는 빗방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마히르는 “화상을 당한 뒤 아이들이 트라우마와 가려움증으로 잠을 잘 못 이루며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등록소 밖 맹추위에 시달렸던 탓인지 아이들은 연신 콜록거리고 콧물을 흘렸다. 그의 휴대전화 속엔 화상을 입기 전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사진이 담겨 있다. 그는 “아이들도 자신들에게 이런 짓을 한 게 정부라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얘기를 털어놓았다가 보복을 당할까봐 무섭다”고 말했다. 휴대전화를 든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마히르 가족의 최종 목적지는 독일이다. “더 잃을 게 없어서 떠난” 고향, 마히르의 지금 소원은 “독일에서 자리를 잡고 아이들 얼굴의 화상을 깨끗이 수술해주는 것”뿐이다.

2번 객차에 있던 이라크 소년 카데이(가명·16)도 마히르 가족과 마찬가지로 독일로 간다. 두 달 전 독일로 먼저 떠난 아버지는 한 달 전쯤 편지를 보내왔다. “서둘러 독일로 와라. 위험이 없고, 안전한 삶이 보장된 곳이다. 독일에 더 나은 삶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아버지가 브로커에게 2400달러를 건넨 덕분에 카데이와 어머니가 가족 중에 먼저 독일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20대인 누나 셋은 아직 돈을 마련하지 못해 고향 술라이마니야에 남아 있다. 그는 “부모님 모두 미용사인데 독일에서 돈을 벌어 누나들도 독일로 오도록 할 계획”이라고 했다.

카데이 모자도 터키와 그리스, 마케도니아를 거쳐 세르비아까지 왔다. 터키에서 그리스로 가는 동안, 40여명이 탄 고무보트가 바다 한가운데서 20여분 동안 모터가 꺼지는 공포의 순간도 겪었지만 그는 지금까지의 여정이 “조금도 힘들지 않다”고 말했다. “전쟁과 위험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는 지금 행복해요. 이런 여정의 고달픔이 오히려 기쁨인걸요.” 영화 <스타워즈>와 <미스터 빈>을 좋아하는 카데이는 장차 영화배우가 되고 싶다며 웃었다.

난민 열차가 목적지인 시드에 도착한 것은 새벽 3시50분. 열차 문은 5시50분이 돼서야 열렸다. 세르비아 경찰은 이들을 시드역 맞은편에 있는 난민보호소로 이동시켰다. 난민등록증을 받으면 72시간 안에 세르비아 국경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경찰은 “두 시간 뒤에나 기차를 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전 8시15분, 크로아티아행 여정이 재개됐다. 경찰은 “두 줄로 서라”고 호통치며 보호소에 머물고 있던 난민들을 일제히 기차역으로 이동시켰다. 시드역 앞에는 프레셰보에서 난민들을 태우고 달려온 버스가 10대 서 있었다. 기차와 버스를 타고 온 난민 800여명은 한명 한명 난민등록증 검사를 마치고서야 기차에 탈 수 있었다. 기차 안에는 크로아티아 경찰들이 타고 있었다. 탑승 작업만 2시간이 넘게 걸렸다. 27일 오전 10시30분, 난민들을 태운 열차는 이제 세르비아를 벗어나 크로아티아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세르비아/김규남 김성광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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