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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생애 조각을 모으다”…홈리스가 기록한 홈리스의 삶과 죽음

등록 2015-12-23 17:15

“나칠남씨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생전에 그가 머물던 고시원 총무 두 명을 만났다. 그러나 가장 많이 들은 답변은 ‘모른다’였다. 총무들의 무뚝뚝한 성격이나 업무적인 태도 탓이 아니었다. 그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고시원 입실 원서, 통장 같은 서류 몇 개가 전부였다. 누군가의 흔적이 저장되기에 고시원은 너무도 많은 사람이 흐르는 공간이었다.”

“돌아가시기 전날 김문경(86)씨는 앞방에 있는 친구에게 ‘나 죽을 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계속 배가 아프다던 김문경씨는 그날도 병원에 갔다가 검사비가 비싸다며 검사를 중단하고 돌아왔다. 저녁식사를 하고 약을 먹은 뒤 잠자리에 들었는데 다음날 아침 8시가 안 돼 쪽방 관리인이 이상하다며 올라갔더니 몸이 엎어진 채 돌아가신 뒤였다.”

홈리스행동, 나눔과나눔 등 44개 단체가 꾸린 ‘2015홈리스 추모제 공동기획단’은 이같은 내용을 담은 120여쪽의 홈리스생애기록 프로젝트 ‘생애조각을 모으다’ 기록집을 22일 내놨다. 10여명의 홈리스와 단체활동가들이 올해 고인이 된 홈리스 12명의 자취를 탐색하며 증언으로 엮은 생애 기록집이다. 지난 6월 기획해 6개월동안 인터뷰와 집필 작업을 진행했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23일 “홈리스가 언론에서 항상 다뤄지는 방식은 주어로 스스로 말하는 게 아니라 객체화돼 언급되고, 사망할 때도 대개가 무연고자여서 유언 등 이들의 목소리 하나 남지 않는다”며 “하지만 이들의 삶과 죽음이 이렇게 소실돼버릴 정도로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에서 기록에 나섰다”고 말했다.

나칠남씨는 지난달 서울 지하철 4호선 숙대입구역 지하도에서 ‘불명’의 이유로 숨지고, 무연고 사망자로 주검이 ‘처리’됐다. 나씨 관련 인터뷰에 참가했던 홈리스행동 회원 이종대(58)씨는 “과거에 나도 노숙을 해봤고, 앞으로 나도 무연고 사망자로 세상을 떠날지도 모른다”며 “그런 동지애에서 그들의 삶을 기록하고 또 기록을 통해 누군가라도 기억을 해준다는 게 고인에게도 나에게도 위로가 되는 거 같다”고 했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서 10년 넘게 살다 지난 7월 숨진 고 김문경씨의 이웃을 인터뷰한 홈리스행동 회원 김종원(49)씨는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인데 김문경씨에 대한 이웃들의 기억을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글썽이는 등 묘한 동질감이 들었다”고 했다.

당사자의 삶을 직접 듣는 방식이 아니라 지인으로부터 간접적으로 듣는 방식이서 생애집을 완성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일정한 주거가 없거나 불안정한 홈리스의 특성상 고인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 고인 1명 당 인터뷰이는 최소 1명에서 최대 4명이었다고 한다. 그나마 쪽방촌에서 산 고인들은 이웃들이 있어 얘기를 좀 들을 수 있었지만, 서로 속내를 깊이 터놓고 지내지는 않았기에 단편 조각같은 이야기만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동현 활동가는 “고인의 지인들을 만나도 단편, 단편들 밖에 모르고 있어서 고인의 삶의 절반도 채 모으지 못했다”며 “미완의 조각 모으기였다”고 했다. 그는 “고인들 외에 살아있는 홈리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22일 서울역 광장에서는‘2015홈리스 추모제 ‘쫓겨나는 사람들, 설 곳 없는 홈리스’가 열렸다. 저녁 6시부터 시작된 문화제에서 세상을 떠난 홈리스에 대한 추모사 발표와 추모 공연이 열렸다. ‘2015 노숙인추모제 공동기획단’이 주최한 이번 추모제는 거리에서 세상을 떠난 홈리스들을 추모하고 이들의 복지와 인권을 개선하고자 기획됐다. 서울역 광장 중앙에는 50명의 위패가 모셔졌다. 올해 세상을 떠난 노숙인과 쪽방촌 거주민의 이름이 적혀있는 위패에는 형형색색의 목도리가 둘러졌다. 목도리는 시민들에게 기증받은 것이다. 거리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는 노숙인은 한 해 300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새누리당의 ‘시체해부법’ 개정안은 추모제 내내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달 30일 이한성 새누리당 의원은 ‘생전에 반대 의사가 없는 경우에 한해 해부용 시체를 제공할 수 있도록’이라는 단서를 달아 ‘시체 해부 및 보존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내놨다. 같은 달 26일 헌법재판소가 무연고 주검을 생전의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해부용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규정한 ‘시체 해부 및 보존에 관한 법률’이 위헌이라고 결정한 뒤다. 동자동 쪽방촌에 거주하고 있는 차재설(57)씨는 추모제에서 “노숙인들은 앞으로 ‘내 몸을 해부용 시체로 쓰지 말아달라’고 쪽지라도 써서 몸 안에 품고 다니라는 거냐”며 반발했다. 김규남 고한솔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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