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순천 시골선생에 선뜻 보내주신 ‘어깨동무’ 제호는 지금도 아이들과 함께 힘차게 달려가고 있습니다.”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 새천년관 지하에 마련된 추모 전시실 앞에서 순천 별량초등학교 교사 이장규(49)씨는 고 신영복 교수에게 보내는 엽서에 또박또박 써내려갔다. ‘어깨동무’라는 초등학교 학급신문 발행 20주년이었던 2012년, 신 교수의 책을 탐독한 이씨는 “학급신문의 제호 하나만 써달라”고 신 교수에게 편지를 보냈다. 답장을 기대하지 않았지만 신 교수는 ‘어깨동무’라고 쓰인 글씨 세 점을 학교로 보내왔다. “매년 선생님께 학급신문을 보내드렸다. 지난 15일에도 선생님께 학급신문을 보내드리려 편지까지 썼는데….” 이씨는 말끝을 흐렸다.
고 신영복 교수의 빈소를 찾은 추모객들 중에는 신 교수의 글씨로 그를 추억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신 교수는 지식인이자 뛰어난 서예가였다. 추도 현장에도 고인의 글씨가 대형 현수막에 인쇄돼 추모객들을 맞았다. 빈소가 마련된 성미가엘 성당에는 신 교수가 쓴 ‘더불어숲’이라는 글귀가, 새천년관에는 ‘언약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리’라는 문구가 추모객들로 하여금 신 교수를 기억하게 했다.
선생은 자신의 글씨를 아낌없이 나눴다. 17일 오후 1시께 빈소를 찾은 역사학자 이이화씨는 “지난해 5월 역사문제연구소가 제기동으로 자리를 옮길 때 신 교수가 ‘석과불식’ ‘관지헌’ ‘벽사당’ 등 현판 3개를 써줬다”며 “그 현판이 연구소 강당에 걸려있다”고 말했다. 김상곤 전 교육감은 “전국교수노동조합 창립할 때 선생께서 현판도 직접 써주시는 등 많은 성원을 보내주셨다”고 고인을 추억했다.
신 교수의 글씨로 선생의 가르침을 되새기려는 시민들도 추모 행렬에 동참했다. 성공회대를 졸업한 최지연(36)·홍태규(39) 부부는 지난해 12월 결혼하면서 ‘언약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리’라는 글귀를 청첩장에 넣었다. 최씨는 “신영복 교수님께 인사드리면 ‘저분은 내가 학생인걸 모르나’할 정도로 절하듯이 꾸벅 인사하셨다”며 “항상 겸손한 모습으로 지성인의 표본을 보여주셔서, 남편에게 청첩장에 선생님의 글귀를 새기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대학원생 김현진(28)씨는 2011년 학부 마지막 학기 때 신 교수의 강연을 들었다. “사소한 즐거움이면 큰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는 선생의 말씀을 가슴에 새겼다. 친한 언니에게 ‘희망’이라는 신영복 선생의 글씨가 적힌 열쇠고리를 선물 받았다는 김씨는 “제게는 선생님의 존재가 곧 희망이 될 것 같다“고 웃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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