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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포토스토리] 민간인 지뢰피해자 고준진

등록 2016-01-20 15:23수정 2016-01-21 09:16

2015년 11월14일 오전 경기도 양주시청 뒤편에서 열린 ‘파크골프대회‘에 참석한 민간인 지뢰피해자 고준진씨.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2015년 11월14일 오전 경기도 양주시청 뒤편에서 열린 ‘파크골프대회‘에 참석한 민간인 지뢰피해자 고준진씨.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지난해 10월3일 ‘지뢰피해자 지원에 관한 특별법’과 관련해 민간인 지뢰피해자인 이경옥 목사(관련기사▶‘지뢰받이’ 이경옥)의 사연을 보도한 뒤, 11월 후속 보도를 위해 고준진씨를 만났다. 앞으로도 민간인 지뢰피해자의 사연을 계속해서 취재해 알릴 예정이다.

대인지뢰로 두 다리를 잃은 남편 고준진(65)씨는 돈이 궁할 때면 늘 10만 원 가량을 벌어 늦지 않게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당시 비교적 벌이가 좋았던 남편 덕분에 아내 이두리(55)씨는 여유롭게 생활할 수 있었다.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한 아내를 위해 고씨는 1993년 중고로 승용차 ‘엑셀’을 장만했다. 이씨는 넉넉하게 돈을 벌어오는 남편이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했다. 어느날 이씨는 남편의 ‘수상한’ 아침 출근길을 몰래 따라나섰다. 남편은 서울 송파구 지하철 2호선 성내역(현재 잠실나루역) 인근에서 행인들에게 손을 벌리고 있었다. 서울 노원구의 집에서 아내 이씨가 10년이 지난 일을 회상했다. “그것도 모르고 그 돈을 썼던 거였어요. 꼬마 아이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주머니에서 꺼낸 백 원짜리였는데…”라며 이씨는 눈가의 눈물을 훔쳤다. 그는 당시 10살이었던 어린 아들 종현에게 “떳떳한 직업을 가진 아버지가 필요하다.”라며 남편을 설득했다.

고준진씨가 2015년 11월14일 오전 경기도 양주시청 뒤편에서 열린 ‘파크골프대회‘에 참가해 다른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고준진씨가 2015년 11월14일 오전 경기도 양주시청 뒤편에서 열린 ‘파크골프대회‘에 참가해 다른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고씨가 사고를 당한 건 1972년 12월. 22살이던 그는 군입대를 앞두고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토성리 고향에서 땔감을 마련하기 위해 마을 뒷산에 올라갔다가 지뢰를 밟았다. 왼쪽 발목 힘줄이 끊어지고 오른쪽 발목 아래가 형체 없이 사라졌다. 때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군부대 차량으로 당시 경기도 포천시 운천리의 백운병원으로 수송돼 다리 절단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수술이 잘못돼 보름 만에 양쪽 다리의 절단 부위가 썩기 시작했다. 2번의 추가 수술을 받아 처음에는 무릎까지, 다음에는 무릎 위 10㎝를 잘라내야 했다. 점점 짧아지는 다리만큼 집도 기울었다. 동생 4명은 국민학교 혹은 중학교를 끝으로 학업을 마쳐야 했다. 맏아들의 사고 뒤, 매일 찾아오는 절망감을 술로 달래던 아버지는 몇 년 뒤 고혈압으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2008년 세상을 뜨기까지 항상 맏아들을 걱정했다. 사고 이듬해 고씨 가족은 지역 관할 부대에 보상신청을 했으나 거부당했고, 1993년 정부에 재신청했을 때는 “시효가 지났다.”라는 답만 들었다.

고준진씨(왼쪽)가 다른 민간인 피해자들과 함께 2015년 11월11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지뢰피해자 지원에 관한 특별법’ 재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이날 고씨를 비롯한 피해자들은 적은 위로금이 의족교체와 의료 비용에 부족하다며, "현실적이지 않은 개정안 내용이 다른 특별법과의 형평성에 맞춰 수정돼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고준진씨(왼쪽)가 다른 민간인 피해자들과 함께 2015년 11월11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지뢰피해자 지원에 관한 특별법’ 재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이날 고씨를 비롯한 피해자들은 적은 위로금이 의족교체와 의료 비용에 부족하다며, "현실적이지 않은 개정안 내용이 다른 특별법과의 형평성에 맞춰 수정돼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가족의 생계를 위해 고씨는 1998년부터 매일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으로 출근해 팔과 엉덩이로 3층 건물을 오르내리며 잘못 만들어져 버려진 옷가지를 주워 모았다. 아내 이씨는 남편이 주워온 옷에 먼지를 털고 세탁해 다시 수선했다. 부부는 항상 새벽 5시께 동대문시장 어귀에서 그 티셔츠를 3000~5000원 정도에 팔아 번 돈으로 외아들 종현이를 키웠다. 종현이는 고씨에게 천사 같은 아들이었다. ‘한-일 월드컵’이 열린 2002년 당시 초등학교 2학년 종현이는 학교에 다녀와 부모가 시키지 않아도 옷 보따리를 나르며 ‘붉은 악마’ 티셔츠 행상을 도왔다. 그런 종현이에게서 2009년 급성백혈병이 발견됐고, 종현이는 다음해 세상을 떠났다. 장애를 가진 부부는 어려운 형편에서도 잘 자라준 종현이에게 미안했다. 6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부부는 아들 생각에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고준진씨가 2015년 11월13일 오후 국회에서 일부 민간인 지뢰피해자에게 위로금 60만원을 지급하는 ‘지뢰피해자 지원에 관한 특별법’의 개정을 촉구하며 릴레이 1인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고준진씨가 2015년 11월13일 오후 국회에서 일부 민간인 지뢰피해자에게 위로금 60만원을 지급하는 ‘지뢰피해자 지원에 관한 특별법’의 개정을 촉구하며 릴레이 1인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아들을 잃은 슬픔을 잊고 다리 절단 장애도 극복하려고 고씨는 운동삼아 ‘파크골프’를 시작했다. 2014년에는 장애인 전국체전에 서울시 대표로 참가해 은메달을 땄다. ‘파크골프’ 선수인 그가 2015년 11월14일 경기도 양주시청 뒤편에서 열린 ‘파크골프대회’에 참석했다. 잔디가 비에 젖어 고씨의 휠체어는 잘 나가지 않았다. 다른 선수들의 도움을 받아 홀과 홀을 이동해 경기를 했다. “비 오는 날 잔디에선 아무래도 휠체어가 잘 안 나가서 힘들지. 그래도 운동에 집중하면 잠시나마 아들 생각은 떨칠 수 있잖아.” 담담하게 그가 말했다.

고준진씨가 2015년 11월13일 오전 서울 노원구의 집에서 나와 지하철역 장애인 전용 출입구를 통과하던 중 상자에 가로막혀 어렵게 지나가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고준진씨가 2015년 11월13일 오전 서울 노원구의 집에서 나와 지하철역 장애인 전용 출입구를 통과하던 중 상자에 가로막혀 어렵게 지나가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일부 지뢰피해자들에게 전체 위로금으로 60여만 원을 지급하는 ‘지뢰피해자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대로 개정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는 전날 민간인 지뢰피해자들의 국회 앞 릴레이 1인 시위에 참여했다. 휠체어 바퀴를 미는 게 힘들었던 것일까, 뭉툭하게 잘린 다리 때문에 속상했던 것일까. 사타구니 아래로 각각 11㎝, 13㎝ 남은 오른쪽과 왼쪽 허벅지를 휠체어에 싣고 이동하며 그는 여러번 한숨을 내쉬었다. “왼쪽 허벅지 끝 부분에 뼈와 살이 달라붙어서 염증과 통증이 심하다. 절단 수술을 또 해야 된다는데 무섭고 겁나서 못하겠다. 이렇게 살다가 죽는 거지.” 그에게 신체의 고통은 삶의 일부가 돼 있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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