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공항 마비 사태가 3일째 이어진 25일 체류객들이 제주공항 여객터미널에서 노숙을 하고 있다. 제주/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활주로 운항 정지가 사흘째 이어진 25일, 제주공항 3층 출국장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각 항공사 카운터 앞에서는 직원들이 승객들 문의와 항의를 받느라 몸살을 앓았다. 통로와 계단은 김밥, 라면, 과자 등으로 끼니를 때우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콘센트마다 휴대전화 충전기가 꽂혀 있다. 24일 밤 공항에서 노숙을 한 인원이 1700여명에 이른다.
박아무개(35)씨는 “카트에 앉아서 잤다. 목도 무릎도 아프고 다리 뻗고 자고 싶다. 여자화장실은 줄이 30m 가량, 남자화장실은 10m 가량이나 된다. 화장실에서 다 씻을 수 없어, 물티슈로 닦았다”고 말했다.
직장인들은 언제 출근할 수 있을지 걱정하며 비행기가 뜨기를 기다렸다. 공항에서 밤을 지낸 노정남(40)씨는 “담요가 부족해 떨면서 잤다. 추위보다도 직장에 못 가게 된 게 더 걱정이다. 제조업 쪽이라 명절 앞두고 일이 많은데, 동료가 내 몫까지 일하고 있어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노아무개(40)씨는 “업무차 제주에 왔다가 복귀를 못하고 있다. 명절 앞두고 미팅이 다 취소되고 납품도 미뤄진 상황”이라며 발을 동동 굴렀다.
대학생 함유미(25)씨는 “23일 오후 9시 비행기가 결항돼 줄을 선 끝에 오늘 저녁 8시50분 비행기로 바꾸었는데 그 비행기도 못 나게 됐다. 오늘 오후 시험을 못 치르게 돼 내일로 미뤘는데, 그것도 미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제주여행을 왔다가 발이 묶인 가족 단위 승객이나 외국인들도 많았다. 활주로 운항 정지 첫날인 23일 김포행 비행기를 타지 못한 엄준호(39·경기도 오산시)는 아내와 8살, 4살 딸과 함께 사흘째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23일엔 ‘공항 노숙’을 했고, 24일엔 어렵사리 방을 구해 잤다. 그는 “첫째 딸이 피곤해서 코피를 3번 쏟았다”고 말했다. 알바니아에서 온 Anca(24)씨는 “공항에서 이틀 밤을 지새웠다. 오늘 비행기 탑승은 힘들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일부 승객들은 항공사 쪽의 대처가 미흡하다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3일 만에 표를 구했다는 한 탑승객은 “기쁘기보다 기분이 매우 안 좋다. 지연된 걸 환불하고 다시 구매했다. 이런 걸 다 알아서 해야 하는지…”라고 말했다.
졸지에 ‘공항 난민’이 된 이들을 도우러 나온 주민들도 있었다. 식당을 운영하는 김봉경(31·제주시 노형동)씨는 “(체류객들이) 제주에서 택시 바가지 요금을 당했다, 종이박스를 비싸게 샀다는 뉴스를 듣고 마음이 상했다. 제주에 좋은 추억을 남기길 바라는 마음에 알탕과 아구찜 등 밥을 챙겨 나왔다”고 말했다.
한편, 풍랑주의부가 일부 해제되면서 제주연안터미널에서 오후 3시 완도행 한일레드펄호(350명)를 시작으로 오후 4시30분 완도행 블루나래호(572명), 오후 4시50분 여수행 골드스텔라호(823명), 오후 5시 목포행 씨월드고속호(1400명) 등 대형 여객선 4대가 출항할 예정이다. 제주/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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