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부는 정부의 정책 홍보 공식 블로그인 ‘정책공감’에 지난달 27일 ‘1년차 새댁의 첫 명절 준비, 가족 선물부터 음식준비까지’라고 올린 화면 갈무리
‘1년차 새댁의 첫 명절 준비’ 제목의 글
여성이 마치 모든걸 해야 하는양 비쳐
누리꾼 “비혼 장려 글 잘 봤다” 꼬집어
여성이 마치 모든걸 해야 하는양 비쳐
누리꾼 “비혼 장려 글 잘 봤다” 꼬집어
정부가 설 명절을 앞두고 선물 및 음식 장만 관련 정보를 담아 공식 블로그에 올린 글을 두고, 누리꾼들이 ‘명절 준비는 여성의 책임이며 여성은 누군가의 조언에 따르는 수동적 존재인 것처럼 그렸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명절 준비를 여성이 다 하는 것처럼 비칠 가능성을 미처 고려하지 못했다’며 뒤늦게 사과했다.
문체부는 정부의 정책 홍보 공식 블로그인 ‘정책공감’에 지난달 27일 ‘1년차 새댁의 첫 명절 준비, 가족 선물부터 음식준비까지’라는 제목의 글(▶바로가기)을 등록했다.
이 글은 지난해 결혼한 ‘1년차 새댁’ 김씨 이야기로 풀어간다. 김씨는 설날을 앞두고 양가 부모와 친구 등에게 줄 선물을 고민하면서 하루종일 리스트를 만들고 계산기를 두드린다. 그러다 퇴근한 남편이 사회적기업 제품을 떠올리며 권유하자 김씨는 그에 따른다. 이어 김씨는 설 명절 음식 준비에 나선다. 인터넷 등을 찾다 친정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보고는 농산물 직거래 장터를 이용해보라는 재료 구매 팁을 얻는다.
설 명절을 앞두고, 김씨 남편은 퇴근 이후 선물 리스트를 검토하고 정보를 주는 구실에 그친다. 아내 김씨는 종일 선물을 고민하고 명절 음식 장만을 위해 정보를 알아보는 구실을 떠맡는 것으로 그려졌다.
여러 누리꾼들은 이 글이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로 맞벌이 부부가 늘어난 현실을 경시하고, 여성은 남편이나 친정 어머니의 조언에 따르는 수동적 모습으로 보이게 한다’고 지적했다.
한 누리꾼은 “요즘 직장에서 일하는 여성도 많은데, 왜 이 이야기에서는 여자 혼자 고민하고 장만하나요? 하나도 공감이 안 되네요”라며 반발했다. “비혼 장려 글 잘 봤다”, “저출산의 이유가 멀리 있지 않다”며 박근혜 정부의 출산 장려 대책까지 꼬집는 누리꾼도 있었다. “한쪽에서는 결혼해서 애 셋씩 낳고 살라고 하고, 또 한쪽에서는 이렇게 대놓고 결혼 혐오를 조장하고, 대체 어쩌란 말이냐”며 정부 태도를 강하게 성토하는 누리꾼도 있었다.
한 누리꾼은 “정부 대표 블로그마저 명절은 여성이 다 준비하는 게 맞다고 못박는 것”이라고 짚었다. “실제로 이런 가정이 많을지 모르지만 결코 좋은 모습이라고 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해당 블로그를 운영하는 문체부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명절을 맞아 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보 콘텐츠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여성의 다양한 사회적 위치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의도와 다르게 논란을 일으킨 점 사과한다. 해당 게시물 안에 해명과 사과의 뜻을 담은 공지 문구을 넣어 누리꾼들의 이해를 구하겠다”고 밝혔다.
문체부는 3일 오후 해당 게시물 위쪽에 글을 띄워 “일부 누리꾼의 지적처럼 ‘명절 준비를 마치 여자 혼자서 다 하는 것’처럼 비춰질 가능성에 대해 미처 고려하지 못했다”며 “좀 더 세심하게 배려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이어 이날 저녁엔 이야기의 주인공을 ‘1년차 새댁 김씨’에서 ‘1년차 부부 공감씨네’로 바꿔 해당 게시물을 수정했다. 바뀐 글은 “공감씨 부부는 얼마 전 인터넷에서 봤던 사회적기업 제품들이 떠올랐습니다”, “설날 선물 구매를 마친 공감씨 부부, 이번에는 함께 설 명절 음식 준비에 나섭니다” 등 남편과 아내가 함께 명절 준비를 하는 모습을 담았다.
이와 관련해 여성단체인 한국여성민우회 관계자는 “비슷한 논란이 생길 때마다 정부는 ‘의도가 없었다’고 해명하는데, 의도가 없는 상태에서도 여성을 차별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명절이 가까워지면 성 역할 구분이 분명해지면서 여성에게만 노동이 몰린다. 명절마다 가사 노동 쏠림 현상을 막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쉽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며 “이번 명절에는 남녀 각자가 각자의 몫을 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조승현 기자 sh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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