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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우리의 사랑은 예외적이지 않습니다

등록 2016-06-10 23:47수정 2016-06-11 09:21

[토요판] 커버스토리 / ‘동성부부’와 법조계 친구들
김조광수·김승환 부부.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김조광수·김승환 부부.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아주 보통의 부부’가 있습니다. 그들은 이성혼을 통해 가정을 이룬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각자 쓰던 가구로 신혼집 살림살이를 채웠고, 명절 땐 양가 부모님 찾아뵙는 일을 두고 머리를 싸맸습니다. 그들이 서로를 사랑하는 일은 ‘동성혼 제도화’를 위한 싸움의 최전선이기도 합니다. 지난달 25일 법원이 그들의 소송을 각하했습니다. 보수적인 법조계에서 ‘게이다움’을 잃지 않고자 분투하는 ‘게이법조회’가 부부의 집을 찾았습니다. 부부의 싸움을 지지하며 ‘문제의 결정문’을 놓고 ‘격정 수다’를 떨었습니다.

“현직 판사나 변호사가 회원인 거예요?”

부부가 물었다.

“법학전문대학원 학생들도 있습니다.”

손님이 답했다.

“검사는 없어요?”

“그러게요. 검사가 없네요.”

“게이 검사는 상상이 잘 안 되긴 해요.”

부부의 손님 접대는 유쾌했고, 손님들의 주인 응대는 경쾌했다. 8일 밤늦게 부부가 사는 아파트로 손님들이 찾아들었다. 찬물이 솟아 냉천(서울시 서대문구)이라 불리는 동네에서 부부는 2012년 11월부터 살았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추운 땅이라고 했다. 차가운 것은 물이나 땅이 아니었다. 냉천보다 냉혹하고 냉정한 것들이 2주일 전 법원이 생산한 문장들(사건번호 2014호파1842)을 타고 냉기를 뿜었다.

“맛이 괜찮아요?”

부부가 선물받은 무지개 케이크를 쟁반에 담아 내놨다.

“아주 맛있어요.”

손님들의 입에서 빨주노초파남보가 설탕처럼 녹았다. 국가는 부부의 결혼을 법의 이름으로 ‘불허’했다. 법을 다루는 일이 직업인 손님들도 그 법으로 결박당했다. 부부도, 손님들도, 그들은 다만 게이여서 냉혹하고 냉정한 냉기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탁자 위에 뜬 무지개를 나눠 먹으며 부부와 손님들은 때로 폭소했고 때로 심각했다. ‘문제의 문장들’을 읽는 그들의 ‘격정 수다’로 냉천의 밤이 왁자했다.

부부됨을 부정당한 부부

부부. 김조광수(51·영화감독)와 김승환(32·영화사 레인보우팩토리 대표)은 부부다. 부부로 살아왔으므로 부부임을 의심받지 않는 부부가 그들의 부부됨을 부정당했다. 부부가 제기한 ‘한국 최초의 동성혼 소송’(가족관계등록 공무원의 처분에 대한 불복신청)을 서울서부지방법원(재판장 이태종)이 지난날 25일 각하했다.

두 사람은 2013년 9월7일 청계천(서울시 종로구)에서 양가 가족과 하객 2천여명의 축하를 받으며 부부가 됐다. 두 달 뒤 ‘세계인권의 날’(2013년 12월10일)에 혼인신고서를 접수(서대문구청)했고 사흘 뒤 ‘불수리’ 통보를 받았다. 2014년 5월21일 ‘부부의 날’에 그들은 불복 소송을 시작했다. 2년이 흐르고 나흘의 시간을 더 끈 뒤 법원은 그들의 부부됨을 불허했다.

도덕이 사랑의 순수성을 검증하고, 국가가 사랑의 허가권을 행사할 때, 사랑하는 행위는 혐오·차별·낙인과 대결하는 고된 싸움이 된다. 싸워야 사랑할 수 있는 사회에서 누군가의 사랑은 배척과 모욕의 대상이 되고 만다. ‘부부의 자격을 허가받아야 하는 부부’의 사랑이 상처 없이 매끈할 리 없다.

동성 부부인 김조광수·김승환씨
한국 최초의 동성혼 소송 각하
법원 “현행법상 동성혼 허용 곤란”
미국과는 다른 현실 아프게 확인
게이법조회와 부부 ‘결정문’ 토크

지난해 미국 연방대법원의
동성혼 합헌 판결문 나온 뒤
내용 번역하며 게이법조회 결성
판사·변호사·로스쿨 학생들
게이다움 잃지 않는 것 목표

지난 8일 밤 김조광수·김승환 부부의 자택에 ‘게이법조회’ 회원 4명이 방문했다. 그들 앞에 무지개 케이크가 떴다. 부부의 ‘한국 첫 동성혼 소송’을 각하(5월25일)한 법원 결정문을 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지난 8일 밤 김조광수·김승환 부부의 자택에 ‘게이법조회’ 회원 4명이 방문했다. 그들 앞에 무지개 케이크가 떴다. 부부의 ‘한국 첫 동성혼 소송’을 각하(5월25일)한 법원 결정문을 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손님. 정춘(판사), 제이디(JD·변호사), 뮤(변호사), 메코(MECO·법학전문대학원 학생)는 ‘게이법조회’ 회원들이다. 2015년 6월26일 미국 연방대법원의 동성혼 합헌 판결이 있었다. 이 전향적 판결의 법정의견 전문을 번역·소개하기 위해 현직·예비 법조인 게이들이 모였다. 번역 작업 직후 그들은 게이법조회(gay.lawyers.kor@gmail.com)란 이름을 걸고 공개·비공개 활동을 시작했다. 직업적·성적 정체성은 드러내되 회원의 개인정보는 비밀에 부친다. 지난해 8월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성적지향·성별정체성법정책연구회와 ‘제1회 LGBTI 법률가대회’를 공동 주최했다.

현직 법조인 중 존재가 확인된 게이는 30여명이다. 게이법조회와 지속적 네트워크를 맺고 있는 법조인은 15명 정도다. 보수적인 한국 법조계에서 그들은 스스로를 드러내지 못한다. 국가공무원인 경우 원치 않는 ‘아우팅’으로 공직에서 ‘매장’당할 수 있다는 공포가 크다.

회원 중 검사는 없다. 상명하복 문화가 강한 조직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알려오는 게이 검사는 아직 없다. 게이들의 검찰 지원 자체가 많지 않을 것이라고 회원들은 추측한다. 게이법조회는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한다.

“서로의 존재에 힘입어 성소수자에게 척박한 대한민국의 법조 환경 속에서 각자의 자존감과 게이다움을 잃지 않는 것을 소박한 목표로 한다. 법조계 내에도 성소수자가 있고 그들의 동료가 성소수자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시켜 미 연방대법원과 같은 판결이 나오는 데 일조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동료가 성소수자란 사실을 알았을 때 ‘나와 다른 그 무엇’으로 대상화하지 않고 동등한 존엄을 갖는 인간임을 인정하는 변화가 점진적으로 사법부의 판결에도 반영되기를 기대한다.”

미 연방대법원의 동성혼 합헌 판결은 김조광수·김승환 부부의 소송 도중에 나왔다. “그들의 바람은 문명의 가장 오래된 제도(결혼)로부터 배제된 채 외로운 삶으로 추방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이들은 법 앞에 평등한 존엄을 구하고 있다. 헌법은 이들에게 그러한 권리를 부여한다.” 판결문의 마지막 단락을 읽고 게이법조회 회원들은 “눈물이 났다”(제이디)고 했다. 그들은 번역문을 김조광수·김승환 소송 재판부에 참고자료로 제출하며 그들을 지원했다.

“화나고 낙담했어요”

서부지법의 각하 결정은 그들의 ‘희망’과 ‘기대’가 현실과는 먼 곳에 있다는 사실을 아프게 확인시켰다. 모래알같이 까끌까끌한 결정문의 문장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시대적 상황 등이 다소 변경되기는 하였지만 별도의 입법조치가 없는 한 현행법상의 해석론만에 의하여 동성 간의 혼인이 허용된다고 보기는 어렵고, 이를 다투는 신청인들의 주장은 이유 없다.”

김조광수 “(미국의 합헌 판결을 보면서) 큰 기대를 한 건 아니지만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각하 결정이 너무 명확하게 ‘안 돼’라고 하니까 충격을 받았어요. 완벽하게 배제당했다는 생각에 상처가 됐어요.”

김승환 “결혼식 이후 제 주위엔 우호적인 분들이 많았어요. 재판 심리를 받을 때 힘들었지만 잘될 거란 희망을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결정문 받았을 땐 꿈에서 확 깬 느낌이었어요. ‘이게 현실’이라며 누군가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요.”

결정문을 독해하는 법률 전문가들의 반응은 미묘하게 달랐다.

메코 “한국어로 생산된 판결문·결정문 텍스트 중에서 동성애자의 현실을 가장 꼼꼼히 검토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 같아요.”

정춘 “이전 판결에선 ‘무릇 혼인이란 남녀 간의 육체적·정신적 결합으로 성립되는 것으로서’(대법원 2011년 9월2일 2009스117 전원합의체 결정)란 말로 정리해 버렸어요. ‘무릇’이란 단어 하나로 대화 자체를 차단해 버렸잖아요. 동성애 반대 신념으로 가득한 판사가 옛 군형법의 ‘계간’ 처벌 조항처럼 동성애를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일으키는 것’으로 규정했다면 우리 모두 까무러칠 일이 발생했을 거예요. 그 정도는 아니었으니까요.”

김조광수·김승환 부부의 자택 신발장 위에 놓인 케이크 모형. 그들의 결혼을 축하는 케이크 위에 두 사람을 상징하는 인형이 올려져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김조광수·김승환 부부의 자택 신발장 위에 놓인 케이크 모형. 그들의 결혼을 축하는 케이크 위에 두 사람을 상징하는 인형이 올려져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서부지법의 결정문은 세계적으로 동성혼 합법화나 합헌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시대변화가 가족형태와 혼인제도를 바꾸고 있다는 점도 언급한다. 동성혼이 법적으로 승인받지 못하면 법이 보장하는 부부·가족 간의 권리(부양·재산분할·의료행위 동의·유족연금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재판부는 인정한다. “사법의 역할이 소수자라 할지라도 그의 권리를 충분히 보호하는 것에 있다”는 사실도 언급한다.

거기까지다. ‘인정’과 ‘언급’은 동성 간 혼인할 권리에 닿지 못한 채 멈추고 만다. 더디지만 법 판단의 변화를 감지한 법률가들과 달리, 소송 당사자들은 “뭐가 진일보냐”고 했다.

김조광수 “우리는 화가 나고 낙담했어요. 시대가 얼마나 더 바뀌어야 우리 결혼이 인정받을 수 있는 거예요?”

김승환 “마침 기각 결정 나는 날 서울에 오신 어머니가 그러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결국은 안 된다는 말 아니냐’고요.”

제이디 “이번 판결을 보며 거대한 유리벽을 다시 한번 느꼈어요. 우리뿐 아니라 여성과 다른 소수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법원이 몰라준다는 생각을 했어요. 법원이 ‘사법 소극주의’(선판례와 배치되는 결정을 회피해 판결이 정책결정에 개입하는 것을 자제)에 갇히지 않고 소수자 보호에 좀더 적극성을 띠었어야 했어요.”

김승환 “판사님, 법원이 사회적 인식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긴 하나요?”

정춘 “요즘은 신경을 많이 써요. 인터넷 댓글도 의식하고요. (사회 분위기와 결혼·가족제도의 변화를 인정하면서) 각하 결정을 내린 것도 ‘다수’의 눈치를 본 탓일 거예요.”

게이법조회 “게이다움 잃지 않도록”

그 집엔 ‘보통의 부부’가 살고 있었다. 그들의 살림은 단출했다. 결혼 전 김승환의 누나가 쓰던 장롱과 김조광수가 사용하던 탁자가 공간을 채웠다. “살림살이 선물을 극구 사양한 아들들에게 양가 부모님들이 서운해하셨다”고 부부는 전했다. 식물 화분들이 집안 곳곳에 녹색을 입혔다. 김조광수는 “내가 식물 키우는 걸 좋아한다”고 했고, 김승환은 “내가 식물을 못 키워서 너무 다행”이라고 했다.

김승환의 어머니는 결혼식 일주일 전까지 참석을 거부했다. 이젠 서울에 올 때마다 부부의 집에 머문다. “오실 때마다 집안 이야기를 하세요. 집안의 역사가 어떻게 되고 어른 중엔 누가 계시는지를 듣고 있으면 내가 이 집의 가족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구나 싶어요. 시댁 역사를 들으며 살아왔던 우리나라 며느리들의 삶도 이해가 되고요.”(김조광수)

결혼 이후 첫 추석 때 부부는 누구 집에 먼저 가야 하는지를 놓고 고민했다. 양가에게 두 사람은 모두 아들이었으므로 부모님들은 자신의 집으로 먼저 오길 원했다. 부부는 결국 각자의 집으로 따로 갔다. 양가 방문은 명절 전이나 뒤에 했다. 그들의 결정을 부모님들은 존중해줬다. 그들의 명절 나기 방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부부의 결혼생활이 3년을 채워가고 있다. 김조광수는 “설렘은 예전 같지 않지만 ‘우리 집’이 주는 이 편안함이 더 좋다”고 했다. 그 집엔 사랑해서, 결혼한 뒤, 사랑보다 강력한 익숙함으로 삶을 공유하는 ‘아주 보통의 부부’가 있었다. 그 보통의 결혼생활을 지키기 위해 부부는 각하 이튿날 항고했다.

김조광수 “항고를 했지만 고민이 있어요. 법원의 잘못된 결정에 불복하는 판단을 다시 그 법원에 맡기는 게 맞는지 모르겠어요. 항고도 서부지법이 맡아요. 저는 항고를 하면 당연히 고등법원으로 가는 줄 알았는데 가족관계 비송사건(생활 관련 사항을 소송이 아닌 간이 절차로 처리)은 가정법원에 재배당되더라고요. 1심 결정을 서부지법원장이 했는데 그 밑의 판사가 뒤집는 결정을 할 수 있을까요? 재판부 기피신청을 해야 되는 거 아닌가 싶어요.”

동성부부인 김조광수(왼쪽) 영화감독과 김승환 레인보우팩토리 대표가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리 ‘한국 첫 동성결혼 신청 사건 각하 결정에 관한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
동성부부인 김조광수(왼쪽) 영화감독과 김승환 레인보우팩토리 대표가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리 ‘한국 첫 동성결혼 신청 사건 각하 결정에 관한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

정춘 “이론적으로 모든 판사는 평등하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론 법원장이 내린 판결을 변경하기가 쉽진 않아요. 가족관계등록을 다루는 항고 담당 재판부는 해당 법원에 하나밖에 없는 경우가 일반적이에요. 기피 신청을 하더라도 해당 법원의 다른 판사가 맡는 정도일 거예요.”

김조광수 “1심에선 한 번이라도 했는데 항고심에서 심리 자체를 안 할 수도 있잖아요. 제출받은 자료로 법률 판단만 하겠다고요. 그러면 결국 뻔하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에겐 소송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하거든요. 심리 과정에서 오간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있도록요.”

제이디 “그 말이 와닿네요.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돼야 한다는 절박함이요.”

정춘 “항고심은 심리를 반드시 열어야 하는 건 아니어서 웬만큼 주요한 사건이 아니면 항고이유서와 자료를 가지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어요. 항고심에서 심문기일이 열리지 않을 가능성도 대비해 두시는 게 좋지 않을까 해요.”

김조광수가 판사인 정춘에게 의견을 구했다. “항고심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오면 바로 헌법소원으로 가는 게 나은가요?” 정춘이 조언했다. “대법원에 상고는 상고대로 하고 헌법소원도 병행할 필요가 있지 싶어요. 같은 법률 해석을 두고 현재 대법원과 헌재가 다투고 있는 구도거든요.”

김조광수 “지금 대법관 구성으로 볼 때 전향적인 결정이 나올 수 있을까요?”

“걱정스럽긴 헌재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국어사전과 싸워야 하나”

김조광수·김승환 부부의 결혼과 소송은 동성 간의 사랑을 사회적으로 추인받는 싸움의 최전선에 있다. 김조광수는 최근 들어 혐오폭력의 위협을 겪기도 했다. 결혼했으나 결혼제도 바깥에서 살아가야 하는 동성 부부의 실존은 서로를 책임질 수 없는 ‘남남의 관계’다.

김조광수 “시대가 얼마나 더 변해야
우리의 결혼이 인정받을 수 있나”

김승환 “법원 결정문 우리에게 모욕”
현직판사 정춘 “법원, 타인 고통 무감
동료라는 걸 안다면 그런 결정 내릴까”

변호사 JD “법원 ‘사법 소극주의’에
갇히지 않고 소수자 보호에 나서야”
변호사 뮤 “동성부부 아이 불행한 건
그들을 혐오하는 사회적 시선 때문”
동등한 시민 인정받기 위한 싸움

김조광수 “사고를 당해 수술을 받아도 내 배우자가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못 해주는 거예요. 우리에게 위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서로를 지켜주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 있어요. 권리의 승계 문제도 그래요. (김승환을 바라보며) 내가 죽었을 때 우리 부모님이 ‘너는 법적으로 아무 권리 없는 거 몰랐니’ 하고 돌변하실 수도 있어.”(웃음) 김승환 “진짜?”(웃음) 김조광수 “우리 둘의 죽음에 시차가 발생한다면 홀로 남은 사람은 승환씨가 될 가능성이 크니까. 제가 가졌던 권리로부터 승환씨가 배제된 채 혼자 감당할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서 자꾸 울컥하게 돼요. 그게 가장 걱정돼요.”

김승환 “가족 간이면 결합상품 할인받기도 좋은데 전화기 저편에서 ‘가족 없냐’고 묻는 말에 말을 못해요. 의료보험도 같이 안 되고 부부 소득공제도 못 받고. 우리는 모범시민이에요. 세금은 두 배, 권리는 절반.”

재판부는 결정문에 “혼인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흔히 인정되는 사랑과 믿음 혹은 헌신이라는 가치도 기본적으로 남녀의 결합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고 썼다. 두 사람의 사랑이 쌓은 시간은 11년이다.

김승환 “장기 커플은 이성끼리든 동성끼리든 사랑과 헌신, 믿음이 없이는 유지되지 않아요. 결정문을 쓰신 분은 사랑과 믿음과 헌신을 안 해봐서 그렇게 서술한 걸까요. 우리에겐 모욕이에요.”

정춘 “누군가의 삶을 법으로 뒤흔들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당사자들의 고통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자신들 곁에 동성애자들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해요. 저도 제 정체성을 감추고 있지만, 자신들의 권리를 박탈한 결정의 피해자가 바로 자기와 얼굴을 맞대고 일하는 동료라는 걸 안다면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을까 싶어요.”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 태도가 그래요. ‘너희끼리 사랑해, 대신 내 눈엔 띄지 마.’ 자신들의 친척이거나 친구 중에 ‘너희’가 있을 수 있는데도요.”

김조광수·김승환은 자신들을 ‘부부’로 불러달라고 했다. 부부(夫婦)가 아닌 부부(夫夫). 김조광수는 말했다. “동성혼 제도화를 목표로 싸우는 동시에 부부라는 성구별적 용어에 문제제기하기 위해서예요. 부부로 불리지 않으면 법적으로 결혼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의미로 사회는 받아들여요.”

동성혼 불인정 결정문은 표준국어대사전의 용어 풀이를 판단 근거 중 하나로 끌어왔다. “이 시대의 가장 보편적인 개념 정의를 내리고 있는 국어사전에서도 혼인을 ‘남자와 여자가 부부가 되는 일’이라고 정의하고 있다”고 재판부는 설명했다.

표준어는 정치적 선택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의 용어 선택 자체가 정치적 판단이다. 2014년 1월 국립국어원이 ‘사랑’의 의미에서 동성 간의 사랑을 도려내며 논란을 빚었었다. 보수기독교계의 항의에 굴복한 ‘사랑의 재정의’는 성소수자들의 사랑을 배격하고 이성 간의 사랑에만 ‘사랑의 자격’을 부여했다. 수많은 빛깔의 사랑이 ‘사랑이 아닌 것’이 돼 버렸다.

제이디 “동성혼을 부정하기 위한 근거가 정말 부족했구나 싶었어요. 제 개인적으론 국어사전까지 동원해 논거를 펼치는 경우를 본 적이 없어요. 빠르게 변하는 시대적·사회적 인식을 인정하고 반영해줘야 하는데, 이렇게 하면 우리가 싸울 상대가 없어지는 거예요. 우리가 표준국어대사전과 싸워야 합니까?”

“성공보다 존엄”

김조광수 “우리를 보면서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우리 때문에 이제 한국에도 동성혼을 법적으로 다투는 실례가 생긴 거잖아요. 이른바 ‘결혼 적령기’인 여러분은 ‘우리의 과정’을 지켜봤을 때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들던가요?”

법조계에선 결혼과 ‘성공’이 분리될 수 없다고 여기는 정서가 강하다. ‘혼테크’를 잘해야 단단한 기반을 닦을 수 있고 ‘가정을 잘꾸리는 사람이 조직 관리도 잘하는 사람’으로 인정받는다고 회원들은 전했다. 게이법조회 회원들의 선배 세대들(1990년대 초반 이전 학번)은 게이 정체성을 숨기고 결혼하는경우가 많았다. ‘차라리 결혼한 뒤 이혼하라’고 조언하는 선배도 있다고 했다. 결혼이 주는 ‘당근’ 대신 게이로서의 삶을 지켜가는 롤모델이 그들에겐 없었다. 게이법조회 회원들은 성공보다 자신의 존엄을 우선하는 사람들이 현직에 들어온 첫 세대라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저는 게이임을 자각(스무살)한 뒤에도 가정을 꾸리고 싶었어요. 저는 게이가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을 놓지 못해 힘들었던 게 아니라, 게이 정체성을 지키면서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없을 것 같아 두려웠던 것 같아요. 선배들을 만나면서 직업적 성취는 어느 정도 가능하겠다 싶었는데 가정을 이루는 데선 여전히 암담했어요. 한때 이민을 갈까 하는 생각도 했고요. 이젠 두 분을 통해서 모델이 생긴 거예요. 나도 언젠가는 결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게 됐어요.”

메코 “지금 교제하고 있는 친구도 법을 공부해요. 두 분 소송 결과가 나온 날 그 친구와 하루 종일 소송 이야기만 했어요. 연애 상대를 찾을 때마다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했던 것 같아요. 이 사람과 결혼을 하려면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될지를요. 두 분이 삶을 합치고 새 가족을 얻는 걸 보면서 저도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더 커졌어요.”

정춘 “저는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사람)예요.(폭소) 사랑에 빠진 다음날부터 그 사람과의 미래를 구성할 모든 걸 계획해요. 제 안에 소녀 한 명이 똬리를 틀고 앉아 영원한 사랑과 이상적 가정을 그려요.

그때마다 법적 제약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도 고민하게 돼요. 위급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서로의 권리를 써서 공증을 받을까도 생각해보고요. 이 문제들은 사회적 공론화가 돼야 출구를 찾을 텐데 두 분이 그 역할을 훌륭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법률 전문가이면서도 자신의 ‘자신됨’을 드러낼 수 없는 그들은 결혼이란 선택이 스스로를 어떤 길로 이끌지 잘 알고 있다.

정춘 “만약 대법원에서 동성혼 불인정 판결이 나오면 향후 몇 년간은 하급심에서 전향적인 판결을 기대하기 어려울 거예요. 설령 동성혼이 인정돼도 복잡한 상황이 기다리고 있어요. 한국의 가족관계등록은 상대가 있는 소송이 아닌 비송이어서 불복해서 항고할 주체가 없어요. 법적 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요. 운 좋게 괜찮은 판사 만나 동성혼이 인정되고 나면 이후 세금과 각종 권리 등을 다투는 분쟁이 뒤따를 거예요. 그 소송에서 재판부가 혼인을 인정할 것인지는 또 별개의 문제예요. 가족관계등록부상엔 등록이 돼 있지만 파생 소송에 가선 가족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는 기형적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어요.”

김승환 “걱정되네요. 동성혼이 인정돼도 기자회견 계속해야 된다는 거네요.(웃음) 도무지 끝이 안 난다는 거잖아.”

김조광수 “나랑 이혼하지 않으면 계속해야 된다니까.”(폭소)

동성혼 제도화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치러야 할 가치가 있는’ 비용이다. 법원은 가늠할 수 없는 비용의 크기를 각하 결정 논리로 활용했다. 동성혼 인정이 공동입양의 법적 문제, 결혼에 따른 인척관계의 변화, 이혼 절차와 요건 등 가족·친족 제도 전반과 윤리적·철학적·종교적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고 적었다. 결정문은 ‘현행법이 아닌 입법으로 풀어야 한다’며 국회로 책임을 넘겼다. 그사이 미국의 동성혼 합헌 판결은 태평양을 건너 한국 정부에 ‘자국민을 위한 후속 조처’를 압박하고 있다.

김조광수 “지난 4월 한국 정부가 주한미군의 동성 배우자에게도 소파(SOFA·주둔군지위협정)상의 지위를 인정하기로 했잖아요. 주한미군 요청을 정부가 받아들인 거예요. 국내에서 동성혼을 인정받는 사람들은 미군밖에 없는 거예요.”

김승환 “그럼 우리 결혼을 인정받으려면 각자 미군과 다시 결혼해야 한다는 건가?”(웃음)

김조광수 “아니면 우리 중 한 명이 미군에 입대하면 되는 거지. 나는 나이가 많아 힘드니 당신이….”(폭소)

제이디 “법원이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판결을 내놓으면 후속 조처는 발생할 수밖에 없어요. 그게 순리예요. 모든 여건이 조성된 뒤 누군가의 권리를 인정하는 게 아니라고요.”

사법부의 소극적 법해석은 사회적 통념을 반영하기보다 차별과 혐오를 추인하고 강화하는 쪽으로 작동(차별금지법 반대, 기독자유당 약진)하고 있다.

“동등한 시민 되길 꿈꾸며”

최근 증가하는 불임 부부나 자발적 무자녀 부부, 혼인 외 출산, 이혼 등을 “혼인의 예외적 상황”으로 표현한 대목에서 정춘은 “소름이 끼쳤다”고 했다.

정춘 “그들 모두를 예외적 존재로 본 거예요. 그들의 사랑도 똑같이 중요하고 가치 있는 거예요. 재판부가 그들을 비정상적인 존재로 규정할 권리까진 없잖아요. 재판부 자신의 심리를 포착한 표현으로 읽혔어요.”

김승환 “모순이 너무 심한 논리예요. ‘대리모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아이를 가져야 할까’ 생각까지 해봤어요.”

제이디 “혼인이 출산을 장려하는 제도라고 보는 시각만큼은 ‘사법 적극주의’를 띠고있는 거예요.”(웃음)

“결정문은 동성혼으로 이룬 가정이 자녀를 입양해도 동성혼의 효과는 아니라고 했어요. 가정이 없는 아이들에게 가정을 갖도록 하는 것은 분명 동성혼의 사회적 효과라고 할 수 있는데도요. 동성 부부의 아이가 불행한 것은 그들을 입양한 부부 때문이 아니라 그들을 혐오하는 시선 때문이에요. 사회가 바뀌면 아이들이 불쌍할 리도 없잖아요.”

메코 “미국엔 게이 아빠들의 모임이 있어요. 그들 커뮤니티엔 학부모 모임에 참석해서 다른 부모에게 밀리지 않는 법이 공유되고 그래요.”(웃음)

미국과 한국 법원 모두 결혼의 가치를 강조하면서도 결론은 정반대를 향한다. 결혼의 숭고한 가치를 완성하는 데 동참할 기회를 동성애자들에게도 부여해야 한다는 미국과 달리, 한국은 결혼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선 동성혼을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에 이른다.

김조광수 “대법원에서 지더라도 저희는 끝까지 가볼 거예요. 대법 판결이 나온다고 해서 추가 소송을 못하는 게 아니거든요. 혼인신고는 전국 어디에서도 할 수 있으니까 지역을 바꿔도 또 신청하고 접수를 거부하면 또 소송하고요.”

김승환 “(김조광수를 쳐다보며) 계속? 나 어떡해….”(폭소) 김조광수 “그때는 (배우자가) 당신이 아닐 수도 있어.”(폭소) 김승환 “진짜 고맙다.”(폭소)

부부는 결혼생활의 최우선 순위는 “행복”이라고 했다. “행복하기 위해서 결혼하는 거잖아요. 의외로 많은 부부들이 그렇질 못하더라고요.”(김승환) “우리의 싸움이 사회운동의 의미도 있지만 우리 스스로 먼저 행복해지기 위한 여정이에요.”(김조광수)

한국 사회에서 법조인들은 특권층으로 여겨진다. 게이법조회 회원들은 차별받는 존재로서의 긴장을 공유한다. “내가 게이란 사실이 조직 안에서 괴물이 되지 않도록 붙잡아준다”고 정춘은 말했다. 게이법조회는 지난 1월 출간된 마사 누스바움(미국의 법철학자)의 저서 <혐오에서 인류애로>에 해제를 썼다. 그들은 해제 끝자락에서 “적어도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대한민국에서 동등한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기를 소망했다. ‘행복하고 동등한 시민’의 자격이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날 냉천에 모인 사람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감독님 토요일에 봬요.”

냉천의 무지개가 6월11일 ‘2016퀴어문화축제’(오전 11시~오후 7시 서울광장)에서 다시 뜬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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