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법] 판결 체크
반려견 폭행하면 형사처벌…관리 잘못해 피해줘도 유죄
반려견 폭행하면 형사처벌…관리 잘못해 피해줘도 유죄
지난 2014년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시비가 붙었습니다. 애완견 때문이었습니다. 애완견을 안고 엘리베이터에 탄 오아무개(61·여)씨와 주민 김아무개(39)씨 사이에 말다툼이 시작됐습니다. 김씨가 “왜 개 목줄을 하지 않느냐”고 힐난하며 개의 머리를 때렸습니다. 그러자 오씨가 애완견을 감싸며 김씨의 얼굴을 향해 손을 휘둘렀고, 김씨는 오씨의 목을 밀치는 등 몸싸움이 벌어집니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오씨의 손자, 김씨의 장모와 아내, 아기가 함께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엘리베이터 안 시비는 그렇게 끝났지만, 김씨는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오씨가 자신의 얼굴을 때려 목뼈 근육이 늘어나(염좌) 2주간 치료를 했다며 상해 혐의로 오씨를 고소했습니다. 재판부의 판단은 어땠을까요? 서울남부지방법원 남수진 판사는 오씨의 행동이 “개를 때리지 못하게 하기 위한 정당행위”라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먼저,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에서 오씨의 손이 김씨의 얼굴 가까이 갔지만 김씨의 고개가 돌아가지 않아 얼굴을 밀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남 판사는 “설령 피고인 오씨가 김씨의 얼굴을 한 차례 밀었다고 하더라도, 오씨의 행위는 어린 손자 외에는 아무도 없는 엘리베이터에서 건장한 30대 남성인 김씨가 자신이 안은 개를 수차례 때리고 피고인을 폭행하며 위협적인 행동을 계속하는 상황에서 김씨를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거나 자신의 개를 때리지 못하게 하기 위한 소극적 방어행위다.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습니다.
농림축산검역본부 자료를 보면, 지난해 12월 기준 우리나라 전체 2096만 가구 가운데 21.8%인 457만 가구가 반려동물을 기르고 있다고 합니다. 5년 전인 2010년 17.4%에 비하면 상당히 증가한 것입니다. 이 가운데 동물등록제를 통해 지난해까지 등록된 반려견은 모두 97만9천마리에 이릅니다. 반려동물이 크게 늘어나면서 이를 둘러싼 사람들 간 다툼과 갈등이 소송으로 번지는 일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오씨 사건에선 애완견이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만약 애완견이 다쳤다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아래층 주민의 애완견이 자신에게 짖는다는 이유로 발로 차서 다치게 한 최아무개(73)씨는 지난 1월 벌금 70만원을 선고받았습니다. 애완견인 포메라니안의 코 등이 찢어져서 139만원 상당의 치료비가 들 정도로 다쳤기 때문입니다. 최씨에게 적용된 혐의는 ‘재물손괴’입니다. 현행법(민법 98조)의 해석상 동물은 유체물(공간을 차지하는 존재), 즉 ‘물건’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거꾸로 애완견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주인이 처벌을 받는 일도 적지 않습니다. 2014년 ㄱ씨(59)는 경기도 의정부 중랑천변에서 자전거를 타던 중 갑자기 자전거도로로 뛰어든 애완견 때문에 급정거를 하며 바닥에 넘어졌습니다. 머리를 다치고 팔이 부러져 전치 8주의 치료를 받아야 했다고 합니다. ㄱ씨는 애완견 주인인 ㄴ씨(59)를 경찰에 신고했고, ㄴ씨는 과실치상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의정부지방법원의 김진희 판사는 “자전거도로는 자전거 출입이 잦은 곳으로 애완견 출입이 금지돼야 하고 만약 애완견과 함께 걷는다면 목줄을 착용하는 등 자전거와 충돌을 방지해야 할 주의 의무가 있다”며 ㄴ씨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민사상 손해배상은 형사처벌과는 별도입니다. 2008년 애완견의 목줄을 놓치는 바람에 애완견이 행인의 다리를 물었는데, 형사재판에선 벌금 300만원을 내고 민사소송에선 위자료와 치료비 1700만원을 물어내기도 했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 반려견과 산책을 나갔다가 잠시 목줄을 풀어놓은 적이 있을 겁니다. 십중팔구 반려견 주인들은 “우리 개는 물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자칫 큰 대가를 치러야 하니 조심하는 게 좋습니다. 반려동물 전문가들은 반려동물이 주인에게는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다른 사람에겐 달갑지 않은 존재, 신체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도 유념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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