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당 임금 809.7원을 받는 식당 노동자들이 있다. 일주일에 6일간, 하루에 9시간30분 일한다. 임금을 올려달라고 요구하지도, 불평을 하지도 않는다. 빈곤국이 아닌 한국에서, 최고의 사회복지시설로 평가받은 대구광역시립희망원(희망원)에서 일어난 일이다. 희망원은 전국 사회복지시설 평가에서 대통령 표창과 보건복지부장관상을 3차례 받았다. 오갈 데 없는 희망원 ‘식구’(희망원 거주자)들은 하루 1만원을 받고 대학병원에서 종일 간병을, 7692원을 받고 새벽 5시30분부터 삼시세끼 밥을 했다. 2년8개월간 전체 인원의 10.6%인 129명이 숨졌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달 2차례 직권 조사를 벌였다. 폭행, 강제노동, 인권유린, 횡령, 갈취 등이 쟁점이 됐다. 조사 과정에서 폭행치사가 자연사로 조작됐다는 증언이 확보됐다. 대구시가 1958년 노숙인시설로 설립한 희망원은 현재 대구구천주교회유지재단에서 수탁받아 36년째 운영 중이다. 저임금에 시달리는 사회복지 쪽에서 희망원 직원들은 업계 최고의 대우를 받는다. 급여도 대구에서 유일하게 공무원에 준하는 수준으로 받고 있다. 사회복지시설 비리는 매년 일어난다. 대다수 민간인이 운영하는 시설 비리다. 대구광역시가 설립하고, 대구구천주교회유지재단이 운영하며, 국가로부터 최고의 사회복지시설로 평가받은 이곳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좋은 사회복지시설’이란 말은, 대규모 거주인들이 시설에서 조화롭게 사는 삶은 가능한 것일까. 희망원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 신분이던 2007년 1월 대구 달성군 화원읍에 자리한 대구광역시립희망원에 방문해 노숙인과 악수를 하고 있다. 희망원 누리집
인간 사육장에 온 것을 환영해요, 한 남자가 나를 환영했다. 1993년 나는 다른 세계로 들어갔다. 나는 스스로 다른 세계로의 이동을 선택하였지만 나의 선택은 다른 사람에 의해 이행되었다. 나의 두 팔과 두 다리는 한 해 전에 나무가 되어 있었다. 햇빛을 맞은 손톱과 머리카락은 매해 자라났지만 추락사고 이후 팔과 다리는 뿌리 없는 나무가 되어 움직이지 않았다. 걷고 뛰고 앉고 서던 시간이 절단되면서 종일 드러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나는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었지만 아무것도 이행할 수 없었다. 나의 몸은 나무가 되었지만 나무처럼 가만히 있음으로 살 수 없었다. 물을 마실 수도 밥을 먹을 수도 없었다. 움직이지 않는 나의 몸을 대신하여 가족들은 내 곁을 종일 지키고 앉아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를 위해 그들도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가족들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는 다른 세계에 들어갔다. 아프고 병들었거나, 버려진 사람들이 사는 다른 세계.
사람들이 사회복지시설이라 부르는 다른 세계에 들어간 첫날, 사진을 찍었다. 입소를 증명하는 사진이었다. 나는 스스로 걸어 들어갈 수 없었으므로 형과 형의 친구가 나를 그곳으로 데려갔다. 다른 세계에는 미래를 과거처럼, 과거를 미래처럼 영원히 자기만의 방에서 헤엄치는 사람들이 허우적거렸다. 날마다 해안선이 멀어지는 바다에서, 영원히 닿지 않는 물에서 허우적거렸다. 해안가의 사람들이 아무리 불러도 자기만의 방에서 헤엄치는 그들은 이렇게 불렸다. 정문에서 데려오면 정문이, 5월16일에 입소하면 오일육, 뜻 모를 박봉봉. 그들은 그들 자신을 알지, 모를지 알 수 없지만. 이름과 나이와 가족을 모르는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인지 없는 사람으로 불렸다.
나의 첫날밤은 박봉봉과 함께였다. 25명이 등을 날카롭게 세우고 칼잠을 자야 했다. 박봉봉이라 불리는 그는 손과 발이 줄로 묶인 채 앙상했다. 뼈에 껍질만 발라놓은 것처럼. 박봉봉은 밤마다 빨간약(신경안정제)을 한 움큼씩 먹었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은 형과 형의 친구가 몇 시간 함께 있어 주었다. 얼굴 위로 뭔가 떨어졌다. 형이 울고 있었다. 형의 친구가 그를 위로하였다. 두 사람이 집으로 돌아간 뒤 아침이 오기까지 긴 시간이었다. 잠이 들었고 또 깨어났다. 다음날 새벽 4시30분, 방에 불이 켜졌다. 고개를 돌렸다. 줄에 묶인 박봉봉이 어떻게 풀었는지 줄을 풀어놓았다. 손으로 변을 핥고 있었다. 밤사이 박봉봉이 싼 똥이었다. 입에서는 변이 흘러내렸다. 헛구역질이 밀려 올라왔다. 박봉봉을 본 그날로부터 22년의 밤과 낮을 대구광역시립희망원(희망원)에서 살았다.
전국 최우수 사회복지시설
전국 세 번째 규모의 사회복지시설 대구광역시립희망원은 2002년부터 2014년까지 연속 6회에 걸쳐 우수시설로 선정됐다. 거주 인원은 지난해 12월 기준 1214명. 대구광역시립희망원은 2005년 4개 분야에서 에이(A) 등급, 5개 영역에서 94.65점을 받아 전국 노숙인복지시설 분야에서 1위를 차지했다. 2006년에는 전국 사회복지시설 가운데 최우수 사회복지시설로 선정돼 대통령상을 받았다. 사회복지시설은 사회복지사업법 제43조 규정을 근거로 3년 단위로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는 노숙인재활시설, 노숙인요양시설, 정신요양시설, 장애인거주시설로 희망원을 분리했다.
보건복지부장관상과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전국 최고의 복지시설로 불리던 희망원은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의 직권 조사를 받았다. 희망원에서는 2014년부터 2년8개월간 거주 인원의 약 10.6%인 129명이 숨졌다. 노숙인복지시설에서 벌어진 최대의 인권유린 사건으로 12년간 513명이 숨진 ‘형제복지원’과 견줘도 적지 않은 수치다. 희망원 거주 장애인들에게 가해진 직원들의 폭행은 법정에 넘겨졌다.
국가인권위는 지난 8~9일과 23~24일 두 차례에 걸쳐 현장 조사를 벌였다. 국가인권위 김종길 조사관은 “폭행, 강제노동, 횡령, 사망 등 여러 분야를 조사했고 특히 사망 명단을 중점적으로 들여다봤다”며 “현장 조사 내용을 정리해서 다음달에 결과를 내놓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직권 조사 결과가 나오면 국가인권위 장애인차별시정위원회가 희망원 또는 대구시에 시정 권고를 하게 된다. 1958년 대구시가 노숙인시설로 설립한 희망원은 1980년 재단법인 대구구천주교회유지재단에 운영권을 위탁했다.
희망원의 실태는 운영권을 쥔 대구구천주교회유지재단, 관리감독 권한을 가진 대구광역시도 아닌 익명의 내부 고발자에 의해 드러났다. 2013년 이른바 ‘쪽지 사건’이 발생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한 직원이 희망원 내부의 비리를 고발하는 내용을 인터넷 메신저로 직원들에게 일제히 전달했다. 희망원이 쪽지 발송자를 추적하기 시작하자 의문의 발송자는 방법을 바꿨다. 비리 내용을 인터넷이 아닌 우편으로 발송했다. 수신자만 적힌 우편 수백통이 대구시 언론, 각종 기관, 시민단체, 천주교대구대교구, 성당, 수녀원 등에 발송됐다. 희망원 안에서 벌어지는 언어 모독, 폭행, 갈취, 물품 허위 청구에 따른 횡령 사실 등이 적혀 있었다. 매해 복지시설 비리가 드러나고 있지만 대다수가 개인이 운영하는 시설들이다. 광역시가 설립하고, 천주교재단이 운영하며, 최고의 복지시설로 평가받아온 희망원의 ‘속사정’은 한국의 ‘사회복지’가 노숙인을 대하는 태도를 드러내며 충격을 더한다.
1987년 형제복지원 사건으로
대전 성지원, 충남 양지원에서
인간모독의 온상이 드러났다
전국 36곳 부랑인시설 특별점검
시설 개편의 요구가 높아졌다
36곳 부랑인시설, 이름만 바꿨다
정부 특별점검, 변화도 없었다
1958년 대구시가 설립한 희망원
1980년부터 천주교회유지재단 운영
전국 최우수복지시설에 선정됐다
<한겨레>는 22년간 희망원에서 살았던 ㄱ씨를 대구시 대명동에서 지난 18일 만났다. ㄱ씨는 지난해 희망원을 퇴소해 현재 가족들과 살고 있다. 희망원에 살았던 ‘식구’(희망원 거주자를 일컫는 내부 표현)가 언론 인터뷰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그의 이름과 나이, 개인 신원이 드러날 만한 정보는 싣지 않기로 한다.
“인간 사육장에 온 걸 환영해요.” 지난 22년은, 1993년 그가 희망원에 입소한 첫날 한 식구가 건넨 ‘냉소적 인사말’의 이유를 증명하는 시간이었다.
“마음이 여리거나 심성이 고운 선생님은 버티질 못했어요. 모질지 못한 사람이 붙어 있을 만한 환경이 아니었어요. 건물 한 층에 선생님 한 명이 배치되었어요. ‘이 씹새끼야, 죽을래?’ ‘그 카다가(그렇게 하다가) 죽는다.’ 이○○ 팀장이라는 사람이 말을 함부로 했어요.
김○○ 국장한텐 맞은 사람이 많이 있어요. 규율을 어긴 사람을 ‘신규동’에 보내요. 원래는 희망원에 새로 온 입소자들이 교육을 위해 며칠 머무는 건물이 신규동이지만 규율을 어겨도 그곳에 가야 해요. 들어가면 거기 선생님들이 한 번씩 이런 말을 한대요. ‘점심도 먹고 몸도 찌뿌둥한데 점심 먹고 몸이나 풀까?’ 신규동에 올라가서 다 ‘엎드려뻗쳐’ 시켜놓고 선생님이 조진다 카더라고요. 잘못을 저지르면 신규동 독방에 2주씩 넣어요. 지금은 없어졌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신규동이 있었어요. 화장실 가고 싶다 하면 오줌통, 요강을 신규동에 넣어줘요.
직원 정○○씨가 식구들 때리는 건 제가 직접 봤어요. 여성 노숙인 기숙사인 ‘천사들의집’ 건물 옆에서 남자 둘이 싸우고 있는데 한 명은 맞고, 한 명은 때리고 있었어요. 정○○가 일요일에 순찰 돌다가 때리는 사람을 발로 차는 거예요. ‘니도 한 번 맞아보니 기분이 어떻노? 이 씹새끼가 맞으면 기분이 좋나?’ 카면서요. 내가 옆에 휠체어 타고 지나가고 있었거든요. 내 눈치를 싹 보더라고요.”
대구광역시립희망원 전경. 총면적 1만2670평 부지에 노숙인재활시설, 노숙인요양시설, 정신요양시설, 장애인거주시설 등 4개 시설이 설립돼 있다. 희망원 누리집 갈무리
눈 찌르기와 유두 꼬집기
“2015년 7월 또는 9월(날씨는 더웠고, 추석 명절 이전이었으며, 8월은 시몬의집(노숙인 어르신 생활관)이 목욕탕 이용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7월 또는 9월로 기억함) 수요일 오전 10시30분에 대중목욕탕 실로암 내의 탈의실 화장대 옆에서 장애인거주시설 글라라의집 생활인(‘식구’와 함께 희망원 거주자를 뜻하는 내부 표현)과 임아무개씨가 함께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생활인은 전라 상태로 검은색 짧은 커트 머리에 피부가 검고 허리가 많이 굽었으며 키는 임씨보다 작았습니다.
진술인은 생활인의 몸의 물기를 닦던 중 ‘아아아~~’ 하고 우는 듯한 큰 소리가 들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소리 나는 정면 쪽을 보았습니다. 교사 임씨가 있었고 오른쪽에 입을 크게 벌려서 울고 있는 생활인이 있었습니다. 임씨가 왼손으로 생활인의 몸을 붙잡은 상태에서 오른 손바닥으로 생활인의 안면을 ‘짝짝짝’ 연속으로 소리 나게 3~4차례 구타하였습니다. 3회쯤 때렸을 때 울음을 멈추는 것을 목격했습니다.”(2015년 5월부터 1년간 계약직 생활재활교사로 근무한 ㄴ씨의 국가인권위원회 진술서)
2013년부터 돌기 시작한 ‘쪽지’는 올해 1월까지 계속 전파됐다. 희망원 ‘식구’를 폭행한 직원 실명이 투서에 적혔다. 실명이 쓰인 투서는 대구시와 시민단체 등에 뿌려졌다. 대구시는 그해 2월 특별점검을 벌이고 희망원도 달성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했다. 시민단체는 경찰 수사가 미온적이라며 성명을 발표했다. 우리복지시민연합은 지난 4월25일 성명을 통해 “경찰이 3개월 가까이 미적거리고 있다. 폭행을 당한 장애인 당사자와 이를 목격한 다른 장애인조차 아직 조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고 밝혔다. 경찰은 성명 발표 나흘 뒤인 4월29일 장애인복지법 위반 혐의를 받은 직원 김아무개씨 등 2명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또다른 피의자 임씨는 5월16일 검찰에 넘겨졌다.
경찰 조사 기록을 보면, 이들은 ‘사소한 이유’로 장애인을 폭행했다. 생활재활교사 김아무개씨는 지난해 3월 식구 최아무개(43)씨가 건물 내부의 출입문과 창문을 두드려 소란스럽게 한다는 이유로 주먹으로 머리를 때렸다. 지난해 9월 정신요양시설 성요한의집 1층 생활교사실 앞에서 배식을 하던 중 사공아무개(39)씨가 손으로 반찬을 가져가려 한다며 머리를 때렸고, 지난 1월에는 시설 1층에 있는 음식을 2층으로 옮기기 위해 장애인 정아무개(63)씨를 불렀는데 늦게 왔다는 이유로 얼굴을 폭행했다. 임아무개씨는 2012년 5월 생활인 장아무개씨가 식사거부 증상을 보인다는 이유로 교사실에 데려가 창문을 자치회의판으로 가린 뒤 얼굴을 때렸다. 다음날 장씨의 얼굴과 눈, 이마에 멍이 들었다고 다른 생활재활교사가 진술했다.
국가인권위 조사 과정에서도 이들의 추가적인 인권침해와 폭행에 대한 증언이 쏟아졌다. “창문을 가리고 눈을 세게 찌르는 것(울트라맨)을 봄.” “이유 없이 유두를 비틀어 꼬집고 주먹으로 뺨을 때리거나 엄지손가락으로 눈을 세게 찌름.” “식사거부 증상 시 (환자를) 눕힌 뒤 두 다리로 강박 후 수저로 입을 벌려서 음식 투입함.” “정아무개가 식사를 할 때, 정말 옆에 사람 밥맛 떨어지게 먹는다는 말을 수시로 함.” “보관금 지급 시 지장을 칸에 똑바로 찍지 못하는 사유로 뺨을 때리는 행위(수시)를 봄.”(국가인권위원회에서 직원들이 진술한 내용 가운데 발췌)
피의자 3명 가운데 생활재활교사 김씨는 공무원 인사 청탁으로 입사했다. 김씨는 정식 직원으로 채용되기 이전 인턴 기간에 선배 여직원인 송아무개씨에게 욕설을 해 논란을 일으켰다. 인턴 기간 종료 뒤엔 채용 규정에도 없는 3개월의 기간 연장을 거쳐 정직원이 됐다. 2014년 12월 대구시 친인척 특혜채용과 관련하여 대구시가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관리감독을 책임져야 할 대구광역시 공무원들이 희망원에 인사 청탁을 하며 ‘복지 관피아’ 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김씨의 친척 등 관련 공무원 6명에 대한 징계가 이뤄졌다. 희망원은 인사 청탁을 받은 간부 2명을 견책 징계했다.
딸이라 불리는 인간 노예
1958년 노숙인시설에서 출발해 현재 정신요양, 장애인거주 시설 등으로 분화한 희망원 ‘식구’는 장기 거주자가 다수다. 희망원 관계자는 “인지 능력이 없거나 거동이 불편해 혼자 생활하기가 어려운 노숙인들이 대부분이다. 몇 달 머물다 서울역 등으로 빠져나가는 다른 노숙인시설과 달리 사실상 장애인들이 머무는 곳이라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생활인들이 불이익을 받을까 염려해서 시설에서 일어난 일을 절대 이야기하지 않는다. 직원의 생활인 폭행 사건이 일어나서 한 생활인에게 목격 여부를 물었더니 ‘모른다’고 하더라. 증거를 확보한 뒤 다시 목격자에게 물었더니 그제야 실토할 정도”라고 말했다.
22년간 희망원에 살았던 ㄱ씨도 지난 18일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기까지 내부에서 일어난 일을 밖에다 말하지 않았다. 폭행, 인권 유린이 벌어져도 외부와 단절된 채 아무 문제 없이 유지되는 현실을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직원들이 뭘 이야기했는데 내가 거절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면 내가 여기서 편하게 지낼 수 있을까, 미움받지 않을까 걱정이 돼요. 평생 희망원에서 살아야 할 수도 있잖아요. 봉변을 당하지나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거죠. 인지 있는 사람하고 없는 사람들을 대하는 선생들 태도도 어마어마하게 달라요. 무슨 이야기를 (바깥에) 할 수 있겠다 하면 존댓말로 대하죠. 인지가 없는 사람들한테는 안 그래요.”
장기 거주 생활인이 많은 만큼 직원들의 근속 기간도 길다. 2013년 시민단체인 우리복지시민연합은 대구지역 사회복지시설 직원들의 임금을 분석한 결과 희망원이 가장 높았다. 우리복지시민연합 황성재 정책실장은 “희망원 직원은 시 공무원과 동일한 임금을 받아왔다. 대구시가 1980년 재단법인 대구구천주교회유지재단에 운영권을 위탁하기 전까지 공무원이 시설에 파견됐다. 당시의 공무원 임금 체계가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3년 희망원 직원 보수 일람표를 보면, 27호봉의 보수를 받는 사무국장 보수가 6626만6000원이다. 희망원 관계자는 “대다수 시설들을 보면, 사회복지사들이 저임금에 강도 높은 노동을 한다. 반면 희망원은 월급은 많은 데 비해 근무 조건이 좋아서 한 번 들어온 직원은 퇴사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반면 희망원 식구들은 시간당 1000원도 안 되는 임금을 받고 각종 노동에 투입된다. 주 6일 기준으로 하루 9시간30분 일하고 받는 월급은 20만원. 이마저 2010년 월 7만원에서 ‘대폭’ 오른 것이다. 시간당 임금으로 따지면 809.7원이다. 식구가 아파서 희망원 외부 병원에 입원할 경우 이들을 간병하는 것도 다른 식구의 일이다. 외부 병원에 간병도우미로 따라가는 식구는 하루에 1만원을 받는다. 희망원 관계자는 “간부들에게 이들의 임금을 올려 달라고 여러 차례 요구해 이 정도 올라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작 생활인들은 이런 대우를 받고도 불만이 없다. 바깥에 함부로 나갈 수 없는데 병원 도우미로 나가면 외출도 자유롭고 적은 돈이나마 벌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희망원은 직원들의 동의 없이 식구들이 자유롭게 외출할 수 없도록 통제하고 있다.
직원 개인의 가사도우미로 활용된 식구도 있었다. 서아무개(42·2011년 12월27일 사망)씨는 2011년까지 근무한 부원장 김아무개씨의 집으로 매일 출근해 가사도우미로 일했다. 희망원 임춘석 재활시설국장도 서씨의 강제노동을 시인했다. 임 국장은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오래된 일이라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서씨가 부원장의 집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한 사실이 있다. 직원들 사이에서 문제라는 지적이 나와서 서씨가 몇 해 전에 일을 그만둔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서씨는 지문 조회를 받고서도 신원이 확인되지 않아 희망원에서 호적을 만들었다. 일가친척이 한 명도 없었다. 22년간 시설에서 생활한 ㄱ씨는 서씨가 부원장을 ‘아빠’라고 불렀다고 회상했다.
“솔직히 가장 이해 안 간 부분이 부원장 김○○예요. 그분 아들이 장애인이거든요. 희망원 원생(서아무개씨)을 아들 도우미로 붙여줬어. 그분이 인지 능력이 좀 떨어졌거든요. 그분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들 속옷도 다 빨고 했어요. 인간 노예지. 내가 알기로 월급을 한 달에 몇 만원 받았어요. 부원장 집에서 일하고 점심은 희망원에 와서 먹고. 그 여자분이 부원장한테 엠피3(MP3) 갖고 싶다고 말했는데, 부원장님이 사줬나 봐요. 그 물건을 보여주는데 인터넷에서 파는 제일 싼 거 1만몇천원짜리였어요. 서씨는 그게 너무 좋다며 행복해하더라고요. 그분도 불만은 있었겠죠. 주변 사람들한테 가기 싫다 카고 귀찮다 카고. 아들만 보는 게 아니라 집안, 청소, 설거지 다 하고요. 그분이 부원장을 아빠라고 불렀어요. 부원장은 식구들한테 우리 딸이라고 했고요. 그 여자분은 어깨가 아프다는 소리를 자주 했고 요양실에도 자주 갔어요. 그분이 아프면 다른 생활인 이○○씨가 부원장 집에 가요. 서씨가 괜찮아질 때까지.
희망원에선 낮엔 무조건 잠을 못 자게 해요. 낮에 자면 밤엔 잠을 안 잔다면서요. 밤에 잠을 안 자고 돌아다니다 사고 나면 직원들이 피곤하니까요. 선생들이 오후 6시면 퇴근을 해요. 2014년까지 본관 사무실에 직원 단 2명만 당직 서고 시설에 선생이 아무도 없었어요. 그때부터 선생 밑에 있는 (식구 대표) 동장이 실세가 되는 것이죠. 누가 잠 안 자거나 복도 왔다 갔다 하면 죽는 거예요. 방에 처넣는 거죠.
식구 이○○씨(퇴소)가 희망원에 있을 때 폴리(폴리카테터·소변줄)를 차고 있었어요. 밤에 방광이 차면 고통이 어마어마해요. 식은땀을 비 오듯 흘리고 엄청 괴로워해요. 어느 날 보니까 막혔어요. ‘어디 아파요?’ 카니까 ○○씨가 숨을 가빠하면서 ‘아프다’ 그래요. ‘어디가 아파요?’ 하니까 ‘소변이 안 나오는 것 같다’고. 제가 동장님을 불렀어요. ‘간호사들이 다 자는데 어떻게 하냐’며 참으라고 동장님이 그래요. 어이가 없었어요. ‘동장님,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다’고 하니까 욕을 하면서 가요. 그런 시스템이 문제가 많다는 거죠. 바로 조치를 받지도 못하고.”
직원이 식구의 금품을 갈취한 사건도 발생했다. 생활재활교사 김아무개씨는 식구 2명으로부터 2년에 걸쳐 1만~2만원씩을 뜯어내는 수법으로 총 60만원을 가로챘다. 외부 자원봉사자 등이 문제를 제기하자 김씨는 지난해 12월 퇴사했다.
대구시 복지시설 중 최고 보수
2014년까지 직원 2명 야간당직
직원 100여명은 오후 6시 퇴근
노숙인은 시급 809원 받고
새벽 5시30분부터 식당서 일했다
노숙인에게서 60만원 갈취한
직원은 지난해 12월 퇴사
눈 찌르기, 유두 꼬집기 여직원
지금도 재활교사로 근무한다
희망원에 희망은 있는가
식품 유통업체에 허위 청구된 전표. 2012년 2월20일 전표를 보면, 바나나 13상자는 사과 40상자로 청구됐다. 박유리 기자
매월 두 번, 189만원어치 소고기는 어디로 갔나
국가인권위는 희망원 직원의 급식비 횡령 여부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이고 있다. 단가와 수량을 조작해 식품 유통업체에 허위 청구를 하고 차액을 가로챈 혐의다. 해당 유통업체 2곳은 시설에 식품을 납품하고 전표를 줬다. 국가인권위는 해당 전표를 확보하고 영양사를 불러 조사했다. <한겨레>는 2012년 1월3일~2013년 11월1일 급식 전표를 확보했다. 전표를 보면, 일주일에 한두 차례 허위 청구가 이뤄졌다.
‘2012년 2월20일 바나나 6손, 13박스는 사과 40박스로 청구(참푸드)
2월25일 돈수육(전지) 160㎏, 계산은 돈목살 수육용으로 계산(영유통)
3월2일 (영유통) 육우 30㎏, 계산은 40㎏으로 청구
3월16일 (영유통) 절김치 135㎏, 계산은 180㎏으로 청구
9월1일 돈수육 전지 160㎏, 계산은 돈목살 160㎏으로 청구
9월8일 육우 30㎏, 계산은 40㎏으로 청구함.’
분석 결과 23개월간 121건의 식품이 조작된 것으로 확인됐다. 같은 기간 1억743만6000원의 차액이 발생했다. 매달 467만1000원이 착복된 꼴이다. 허위 청구에도 일종의 패턴이 있었다. 돼지고기 전지(앞다리살)는 목살로, 바나나는 사과로, 국거리용 소고기 30㎏은 늘 40㎏으로 과장 청구됐다. 한 달에 두 차례 식구들에게 컵라면과 밥, 달걀이 식사로 제공됐다. 식구들이 컵라면을 먹은 날에는 소불고기 90㎏, 189만원어치가 허위 청구됐다. 영양사 이아무개씨는 국가인권위 조사에서 “모른다”는 말을 반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간식은 일주일에 3~4차례 요구르트와 초코파이, 또는 ‘엄마손파이’ 등이 낱개로 제공됐다. 2014년 조직된 희망원 노동조합은 유통업체 허위 청구 문제를 제기하고 시정을 요청했다.
식구 ㄱ씨는 2014년부터 간식이 달라졌다고 회상했다. “원래 오후에 한 번 간식을 줘요. 두세 시쯤에 방송을 하면 식구들이 ‘구루마’(손수레)를 들고 가요. 1인당 요구르트 하나, 또는 귤 하나 아니면 바나나 하나. 수요일하고 토요일하고 일요일은 안 나오고. 그런데 노조가 생기고 회사하고 사이가 안 좋다 카더니 간식이 나오는데 이래 고급진 거 보고 깜짝 놀랐어요. 20년 넘게 살면서 이래 비싼 거 처음 봤어요. 조각케이크도 나오고 푸딩도 2500원짜리 그런 거 먹었어요. 내가 생각이 드는 게, ‘줄 수 있으면서 이때까지 왜 그런 간식을 주었나’였어요.”
대구광역시립희망원 ‘식구’가 직원이 주차해놓은 차량을 닦고 있다. 희망원 관계자 제공
폭행치사가 병사로 조작
2014년 1월부터 현재까지 희망원에서 숨진 사망자는 129명이다. 사망 기록을 들여다보면 ‘밥버거’나 떡을 먹고 사망하는 기도 폐쇄 사례가 이어졌다. 치아가 없거나 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장애인 또는 노숙인이 떡을 먹고 목이 막힌 상황에서 신속하게 응급치료를 받지 못해 숨진 것이다. 직원들의 관리 부실이 지적되는 사안이다. 희망원 관계자는 “문제를 느낀 일부 직원들이 급식팀에 떡이나 고구마, 빵 등을 급식표에서 빼달라고 요구했지만 식구들에게 계속 지급됐다. 영양사는 매해 사망사고가 발생하는 사회복지시설에서 기도 폐쇄로 사망하는 것이 무슨 문제냐는 식으로 대처했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 조사 과정에서 폭행치사가 병사로 조작됐다는 증언도 확보됐다. 식구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신아무개(59)씨는 같은 방에서 생활하는 이아무개씨의 지팡이에 머리를 맞고 병원으로 실려갔다. 사망 시점은 2011년 2월16일. 그러나 희망원 사망 관련 서류엔 ‘병사’로 기록됐다. 문에 부딪혀 다쳤고, 병원에서 치료 중 사망했다는 것. 국가인권위 김종길 조사관은 “신씨가 폭행치사됐다는 증언이 나와서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ㄱ씨도 해당 사건에 대해 알고 있었다. 식구 모두가 알고 있던 사건이라고 말했다. “사람이 맞아 죽었는데도 아무 그게 없었어요. 형사처벌도 없고 아주 조용히, 선생님은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어요. 놀라운 희망원이지요.”
대구광역시는 매해 정기점검을 벌였지만 이제껏 자체적으로 시정 사항을 적발하지 않았다. 대구시청 복지정책관 관계자는 “시에서 감사를 할 때 예산 사용 등은 들여다보지만 내부에서 살지 않는 한 자세한 사항은 알기 어렵다. (정기점검이) 미흡했다”고 인정했다. 임춘석 희망원 재활시설국장은 “국가인권위 조사 결과를 기다리면서 변화가 필요한 부분은 변화시키고자 한다”고 <한겨레>에 밝혔다. 국가인권위는 조사 결과에 따라 희망원 또는 대구시에 시정 권고를 하게 된다. 사건의 당사자와 부실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자치단체가 얼마나 희망원에 변화를 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희망원은 1958년 부랑인 수용시설로 설립돼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부랑인 시설로는 최대의 인권 유린 사건인 ‘형제복지원’이 1987년 검찰 수사를 받을 당시 전국 36곳의 시설에 대한 특별점검과 복지시설 체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특별점검은 이뤄지지 않았고 대다수 시설이 명칭만 바꾼 채 수명을 이어갔다.
36곳 중 하나였던 희망원은 부랑인시설 비리가 매일 신문에 실리던 1987년에도 언론의 주목을 피했다. 이젠 대구광역시가 설립하고, 대구구천주교회유지재단이 운영하며, 세 차례 보건복지부장관상과 대통령표창을 받은 모범 복지시설이라는 이미지 속에서 희망원 식구들은 곪아가고 있다. 1987년 부랑인시설은 복지라는 이름으로 영장 없이 노숙인을 잡아 가두고 이들에게 강제 노동을 시켰다. 폭행, 강제 노동, 사망 기록 조작, 급식비 횡령 등이 일어난 2016년, 희망원은 1987년의 형제복지원을 닮아 있다. 학대의 정도와 강도만 덜할 뿐이다. 29년이 지나도록 노숙인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는 변한 것이 별로 없어 보인다.
대구/박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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