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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안녕하세요, 저는 황달래입니다

등록 2016-09-08 17:58수정 2016-09-09 15:01

입양미국인 타미 웹스터의 첫 모국방문

38년 전 버려졌던 복지원, 교회 찾아
처음 발견했던 집사와 극적만남에 눈물
친부모는 못 만났지만 하고싶은 말
“슬펐죠, 이젠 이해해요, 미안해말아요”
미국으로 입양된 황달래(미국명 타미 웹스터)씨가 6일 오후 서울 광진구 구의교회에서 버려진 자신을 발견해 다니엘보육원으로 데려간 황면욱 구의교회 집사와 대화를 나누며 손을 맞잡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미국으로 입양된 황달래(미국명 타미 웹스터)씨가 6일 오후 서울 광진구 구의교회에서 버려진 자신을 발견해 다니엘보육원으로 데려간 황면욱 구의교회 집사와 대화를 나누며 손을 맞잡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죄송합니다. 1978.5.4”

생년월일이 적힌 한 장의 쪽지. 미국 이름 타미 웹스터, 한국 이름 황달래(38)씨의 출생 기록은 38년 전 서울 광장동 구의교회 앞에 누군가 놓고 간 포대기에서 발견된 이 쪽지가 전부다. 발견 직후 입양서류 작성을 위해 찍은 증명사진과 미국행 비행기 안에서 찍힌 사진은, 그가 친부모를 찾겠다며 한국에 가지고 온 유일한 단서다. 황씨는 태어난 지 하루 만에 버려졌다. 당시 입양 서류엔 ‘서울 광장동 구의교회 앞에서 발견됐고, 보육시설에서 임시보호하다 입양보낸다’는 취지의 간단한 기록만 남아있다.

지난 6일 오후, 자신이 발견된 구의교회를 찾은 황씨는 대화중인 통역사와 교회 집사님의 얼굴을 번갈아 뚫어지게 쳐다봤다. 이날 오전에는 입양되기 전 머물렀던 서울 내곡동 다니엘복지원(옛 다니엘학원)을 찾았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교회에서도 다른 친생 가족의 흔적을 찾지 못하면 희망이 없다. 남은 건 자신의 유전자 기록을 남겨두고 같은 유전자 정보를 가진 누군가가 나타나길 기다리는 일뿐이다. 황씨를 만난 이 교회 집사님은 “당시 교회 관계자들에게 연락을 취해 봤지만 기억하는 분이 없다”며 미안해했다. 고개를 숙인 황씨가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입양 서류에 의지해 단서를 찾기엔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 40여년 전 교회 맞은 편에 있었다는 보육원은 이사를 했고, 황씨가 발견된 교회 역시 원래 있던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서 현 위치로 옮겨와 신축했다. ‘좀 더 빨리 찾아나섰더라면…’ 황씨의 얼굴에 아쉬움이 스쳤다.

미국 가정에 입양돼 5남매 중 막내로 키워진 그는 부족함 없이 자랐다. 다행히 인종차별이나 입양아라서 겪는 설움도 크게 느껴본 적도 없다. 현재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고, 결혼해 3살 된 딸과 행복하게 산다. “나이가 들수록 친부모가 궁금해졌어요. 제 이름인 달‘래’를 따서 딸 이름을 에밀‘레’라고 지었어요. 아이를 낳고 나니 사랑스러운 이 아이를 내 친부모께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간절해지더라고요”

첫 고국 방문에서 친부모를 바로 찾을 거란 기대는 안했지만,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에 교회를 떠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사이, 교회 집사님이 기쁜 소식을 전했다. “혹시나 하고 연락드린 한 집사님이 그 해에 아기를 한 명 주우셨대요. 지금 이쪽으로 오신다네요.” 통역자의 말을 듣고 난 황씨의 눈가가 금세 빨개졌다. 손으로 입을 가린 채, 크게 뜬 눈에서 도르륵 눈물이 흘렀다. 통역을 맡은 이준석(21)씨는 뛸듯이 기뻐했다.

미국으로 입양된 황달래(미국명 타미 웹스터)씨가 6일 오후 서울 광진구 구의교회에서 버려진 자신을 발견해 다니엘보육원으로 데려간 황면욱 구의교회 집사와 대화를 나눈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미국으로 입양된 황달래(미국명 타미 웹스터)씨가 6일 오후 서울 광진구 구의교회에서 버려진 자신을 발견해 다니엘보육원으로 데려간 황면욱 구의교회 집사와 대화를 나눈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한 시간 남짓 기다렸을까. 자전거 라이딩 복장을 한 황면욱(69) 집사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나타났다. 전화를 받고 서둘러 왔다는 황 집사는 달래씨의 입양 당시 사진을 보더니 “낯이 익다”며 아이를 발견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난 당시 교회 맞은편 다니엘학원의 선생이었어요. 다니엘학원은 보육원, 병원, 학교로 이뤄진 건물 세 동이 있었어. 그 날 아침운동을 하러 나왔다가 보육원 건물 앞 미류나무 밑에 버려진 아기를 발견했지. 쪽지가 있었고,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써있었어. ‘지숙’이라고 이름이 써있었던 것 같은데…. 이건 확실치 않네. 하여간 보육원에서 데리고 있는 동안 다들 지숙이라고 불렀었어. 이렇게 만나니 얼마나 좋아. 참 감사하네.”

황씨가 자신이 발견된 곳을 가보고 싶다고 하자 황 집사는 10분 거리라며 선뜻 나섰다. 지금은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선 곳에 도착하자, 황씨는 열심히 사진을 찍은 뒤 말을 잊은 채 한참을 서있었다. 그는 “친부모를 찾는 게 중요하지만 저를 발견한 분을 만난 것도 너무 기뻐요. 이제 내 인생을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 행복한 인생을 살아왔다고 황 집사님께 말해주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연락하고 지내자며 황 집사가 수첩에 영문 이름과 연락처를 적어주었다. 황씨는 “황, 황...”하며 그와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자신의 성이 왜 황씨가 됐는지 알 것 같다는 표정으로 또 눈물을 흘렸다. 실제 황 집사의 성을 땄을지는 알수 없는데도 달래씨는 그 ‘우연’에 하나라도 더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하는 듯 했다.

“솔직히 어릴 때는 버려진 사실이 마음 아팠어요. 하지만 당시엔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려웠으니까 부모님이 나와 그들을 위해 최선의 선택을 했을 거라는 생각을 지금은 해요. (친부모님이 저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면 용서한다고 얘기하고 싶어요. 달래라는 이름도 입양기관에서 지은 거라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는데, 한국 와서야 내가 있던 보육원의 이름 다니엘을 따 달래로 지었다는 사실을 알게됐네요. 달래가 하얀 꽃이라는 의미라면서요? 참 마음에 들어요.”

친생가족을 찾도록 도와주는 해외입양인연대 ‘모국으로의 첫 여행(First Trip Home)’ 프로그램에 참여해 9박10일간 한국에 머물렀던 황씨는 9일 한국을 떠난다. 그와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입양인 18명중 3명은 첫 방문에서 가족을 만났다. 황씨는 “가족을 만난 이들을 보며 나도 희망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미국으로 입양된 황달래(미국명 타미 웹스터)씨 입양 전 모습. 해외입양인연대 제공
미국으로 입양된 황달래(미국명 타미 웹스터)씨 입양 전 모습. 해외입양인연대 제공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입양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1953년부터 지난해까지 해외에 입양된 한국인은 총 16만7710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67%인 11만2546명이 1970∼1980년대 산업화 시기에 모국을 떠났다. 해외입양인연대 관계자는 “입양 기록의 생산과 보존이 총체적으로 미흡했던 1970∼1980년대에 고국을 떠났기 때문에 가족을 찾는 입양인들에게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면서 “가족들과 연락하고 지내지 않더라도 자신의 진짜 생일과 가족력 같은 정보라도 알길 원하는 이들이 많다”고 당부했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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