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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음주측정 거부했는데 무죄?

등록 2016-09-19 20:10수정 2016-09-19 21:39

판결체크
음주측정하러 집에 들어간 경찰
동의 안 받고, 영장도 없어
법원 “절차적 적법성이 없다” 무죄 판결
경찰관의 음주 측정 모습.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경찰관의 음주 측정 모습.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지난해 3월13일 자정 무렵, 황아무개씨는 친구들과 술을 마신 뒤 대리기사를 불러 차를 타고 집으로 가던 중이었습니다. 황씨는 앞서가던 검정 승용차가 지그재그로 움직이면서 중앙선을 넘나드는 것을 봤습니다. 심지어 사이드미러도 펴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황씨는 ‘음주운전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대리기사한테 차량을 쫓도록 했습니다. 문제의 승용차가 경기도 시흥시의 한 빌라 앞에 멈춰 서자, 황씨는 재빨리 다가가 차창을 두드렸습니다. “아저씨, 음주운전 했어요?” 황씨의 질문에 운전자 문아무개(38)씨는 “당신이 무슨 상관이냐”며 집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황당해진 황씨는 112에 신고를 했고 경찰관들이 출동했습니다.

출동 경찰관 두명은 열려 있는 문씨의 집에 들어갔습니다. 침대에서 자고 있던 문씨에게선 술냄새가 나고 얼굴도 불콰했습니다. 음주운전이 확실하다고 판단한 경찰은 문씨에게 음주측정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문씨는 “집에 와서 술을 마신 것이다. 내 집에서 나가라”며 응하지 않았습니다. 경찰은 세 차례 시각을 적으며 음주측정 요구를 했지만 끝까지 응하지 않자, 도로교통법상 음주측정 거부 혐의로 문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해 경찰서로 연행했습니다.

법정에 선 문씨는 어떻게 됐을까요? 1, 2, 3심 모두 문씨는 무죄라고 판결했습니다. 법원은 문씨의 음주 사실과 음주측정 거부 행위를 문제 삼은 게 아닙니다. 집주인의 동의를 얻거나 압수수색 영장을 받지 않고 집에 들어간 경찰의 행위가 잘못됐다는 것입니다. 법원은 문씨의 아내가 타이 국적의 외국인으로 한국어 능력이 떨어져 경찰관들의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고 출입에 동의했는지 의문이 간다고 판단했습니다. 설령 아내가 동의했어도 문씨가 나가달라고 요청한 사실이 명백하므로 동의를 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또한 법원은 문씨의 운전 행위가 끝난 지 약 1시간이 지났고 이미 집으로 들어간 상황에서 음주운전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는 없다고 봤습니다. 현행범 체포는, 체포 당시에 범죄 행위가 벌어진 시간과 장소의 연속성이 있어야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법원은 “사건 당시 경찰관들은 법관이 발부한 영장 없이 피고인의 주거를 수색한 다음 피고인에게 음주측정을 요구했다. 이런 요구는 절차적 적법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 사건을 보면서 ‘문씨가 음주운전을 한 것은 명확해 보이는데 처벌받지 않은 것은 부당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범죄행위를 처벌하는 것보다 적법한 절차를 거쳐 공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권력이 인신을 구속하거나 주거지를 수색하는 등 강제권을 행사할 때 엄격한 절차를 거치도록 해서 얻는 법익이 더 크다고 보는 것이죠. 영장주의와 같은 법원칙은 오랜 민주주의 과정에서 확립된 ‘문명의 징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문씨처럼 ‘요행’을 바라고 음주측정을 거부해도 되겠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없으시겠죠? 문씨는 음주측정 거부 혐의로 경찰과 검찰의 조사와 법원의 재판을 받으면서 적잖은 ‘처벌’을 받은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실 음주측정 거부는 매우 강력한 처벌 규정이 적용됩니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경찰의 정당한 음주측정 요구를 거부하면 ‘1년 이상 3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500만원 이상 1천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합니다. 이 형량은 음주운전 처벌 기준 중에서 가장 강력한 ‘혈중알코올농도 0.2% 이상’일 때의 형량과 동일합니다. 게다가 지난 4월부터 정부는 상습 음주운전자(음주운전 전력이 있는 운전자가 음주운전으로 사망사고를 일으키거나, 최근 5년간 4회 이상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경력이 있는 자)의 차량을 몰수한다고 합니다. 술 마실 일이 많아지는 추석 명절 기간, 술자리엔 차를 두고 가거나 대리운전을 이용하시길 바랍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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