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기 농민 시신 부검을 위한 압수수색검증영장을 법원이 “부검의 필요성과 상당성을 입증하기 위한 추가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한 것과 관련해 ‘백남기 투쟁본부’는 “경찰의 무리한 부검 시도는 자신의 범죄 혐의를 면책하기 위한 근거를 찾기 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에 대한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살인정권 규탄 투쟁본부’는 27일 오전 11시 백남기 농민의 시신이 있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렇게 주장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조영선 변호사는 “백남기 농민이 사망하기 전부터 서울대병원에 경찰력을 배치하고 입구를 막았다.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 의문”이라며 “부검을 해서, 백남기 농민에게 다른 질환이 있었다는 것을 찾아내 자신들의 혐의를 면책하기 위한 것 아닌지 의심된다”고 꼬집었다.
조 변호사는 “만약 A라는 사람이 건물에서 B라는 사람을 밀어 추락시켜 죽음에 이르게 한 상황에서, A가 자신의 살인죄 혐의를 피하기 위해 B의 부검을 주장하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하지만 부검 결과 B에게서 기저 질환이 발견됐다고 하더라도, 법리적으로 A가 살인죄가 아닌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백남기 농민에게 설사 다른 질환이 발견된다고 하더라도, 이미 알려진 사실과 병원의 의무기록만 보더라도 백남기 농민의 사망원인은 경찰의 물대포 살수다. 이것이 명백한 이상 부검의 필요성은 없다”고 못박았다.
의료계를 대표해 기자회견에 나온 우석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는 “이철성 경찰청장이 백남기 농민의 사망에 다른 원인이 있을 수 있다는 취지로 말씀하신 것은 큰 문제”라며 “암 환자가 마지막에 폐렴으로 사망해도 사망원인은 폐렴이 아니라 암이고, 교통사고 환자가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사망해도 원사인은 장기부전이 아닌 교통사고”라고 주장했다. 그는 “백남기 농민의 사망 원인은 의학적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 이걸 왜 의학적 논쟁의 대상으로 삼아 의사들이 기자회견까지 해야 하는 상황으로 만드는지 안타깝다”고 비판했다.
신경외과 전문의인 김경일 전 동부시립병원 원장은 지난해 11월14일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은 직후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져 찍은 씨티(CT)와 소견서를 소개하며 “당시 백남기 농민의 오른쪽 뇌 부분에 급성경막하출혈이 있는데 매우 심각해 뇌의 중심선을 반대쪽으로 밀어냈다. 그뿐 아니라 뇌를 감싼 경막 전체와 아래 지주막에서도 출혈이 보였다. 질긴 막이라는 뜻의 경막이 심하게 찢어진 증거로 여기저기에 공기방울이 보인다. 두개골 전체와 눈을 둘러싼 협골에도 금이 가 있고, 안와골절도 나타난다”며 “이 씨티 소견서만 보더라도, 이 분은 즉사하실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서울대병원이 수술을 했고 10달이 넘는 연명 치료를 했던 것이다. 그 이후 나타난 진단명에 대한 논란은 사실상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백남기 농민의 유족들은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해, 백남기 농민에게 물대포를 쏜 가해자인 경찰이 고인의 시신을 부검하는 것을 막아달라고 촉구했다.
허승 기자 rais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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