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법] 국방의무와 양심의 자유사이
“병역 기피하려는 게 아닙니다
이제는 대체복무 허용을”
양심적 거부자들 병역법 개정 호소
“병역 기피하려는 게 아닙니다
이제는 대체복무 허용을”
양심적 거부자들 병역법 개정 호소
헌법재판소가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병역법의 위헌 여부를 올해 안에 심판할 예정입니다. 이번이 세번째입니다. 2004년과 2011년 합헌 결정이 났지만, 이번엔 바뀔 수도 있다는 조심스런 관측이 나옵니다. 과거 병역거부 선언을 하고 감옥행을 택했던 이들의 어제와 오늘, 이들의 간절한 바람을 들어봤습니다.
지난 3월 한 법조인이 감옥에 갔다. 4.61㎡보다 좁아 보이는 방에서 매일 회색빛 벽과 마주한다. 2008년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변호사의 길을 걷던 백종건(32·사법연수원 40기)씨였다. 그는 병역법 88조를 어겼다. ‘현역 입영 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소집에 응하지 아니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법을 어긴 법조인은 그가 처음이다. 법을 피와 살처럼 보듬고 살아가야 하는 법조인이 왜 그랬을까.
“아직도 그때 기억이 또렷한데….” 지난 7월 만난 백 변호사는 면회실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기억을 되살렸다. 그가 네살 때인 1988년이었다. 대구교도소 면회실에서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 백승우(57)씨는 항명죄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군사법원의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갇혔다. 의사인 아버지는 ‘여호와의 증인’ 신자였다.
백 변호사는 차분히 말을 이었다. “저는 군에 복무하는 청년들의 수고와 희생을 깊이 존중해요. 그들만큼 저도 다른 방식으로 이 사회를 위해 일하고 싶어요. 민간 대체 복무제도를 도입해 달라며 6년간 법정에서 다퉜지만 저는 결국 졌고, 여기에 있어요.” 여호와의 증인들은 감옥이라는 말 대신 ‘중립’이라는 단어를 쓴다. 군사적 중립을 지킨다는 뜻이다. 그들은 ‘감옥 간다’를 ‘중립 간다’고 표현한다. 백 변호사는 병역을 기피하는 게 아니라 ‘군사적 중립’을 실천한다는 신념으로 감옥에 있다.
“교도관들도 우리가 죄를 짓고 여기 온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온 걸 안다면서 건강히만 있다 가래요.” 감옥으로 들어간 ‘양심’은 처벌 대신 배려를 받고 있다. 병역거부자들은 주로 교도소 내 도움이 필요한 곳에 배치되어 노동한다. 노인과 치매환자들을 수발하고 돕는 간병, 교도소 직원들의 사무 공간을 청소하는 일을 도맡아 한다. 감옥 안에서 실현되고 있는 일종의 대체복무다.
군복무 청년들 수고와 희생 깊이 존중…
방식이 다를 뿐 사회 위해 일하고 싶어
평생 시달리는 ‘왜 병역 거부’ 질문
군대 가는 것 역시 신념, 질문 않아
오랫동안 봉사할 길 열어달라는 것 대법원이 발간한 <사법연감>을 보면, 한 해 재판에 넘겨진 이들 중 14%는 1년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고, 6%는 3년 이상의 형을 선고받는다(1심 재판 기준, 2015년). 병역거부자들은 비교적 무거운 형량인 1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는다. 1년6월은 이들에게 다시 입영통지서가 나오지 않게 하려는 판사들의 ‘고육지책’이다. 몇몇 판사들은 ‘법관의 양심’에 따라 무죄를 선고한다. 올해에만 두 건의 무죄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판례를 따르지 않는 하급심 판결이다. 한 지방법원의 부장판사는 말한다. “다들 불편한 마음으로 판결해요. 대체복무제도를 마련해주면 해결될 일인데 입법의 부재로 병역거부자를 무조건 처벌만 하고 있어요. 형벌의 예방 효과도 사라진 지 오래예요. 처벌해도 또 병역거부자들이 나와요. 수십년간 똑같죠. 그렇다면 국가가 나서서 제도를 정비해야죠.” 어떤 검사들은 “미안하지만 기소할게요”라고 하고, 어떤 판사들은 선고 때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병역거부 관련 사건은 지난해에는 493건이었고, 올해 8월까지만 141건이었다. 백 변호사는 내년 9월께 출소할 예정이다.
“평화? 너희 집 평화나 지켜!” 백 변호사의 동료인 임재성(36) 변호사는 2002년 병역을 거부한 뒤 들었던 병무청 직원의 폭언을 아직도 기억한다. “네 엄마가 멀쩡한 아들 감옥 가게 됐다고 여기까지 찾아와 울면서 입영을 연기해 달라고 사정한 건 알기나 하나?” 임 변호사는 당시 서울의 한 대학 총학생회장이었다. 그는 미국이 벌인 이라크 전쟁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죽고, 한국인(고 김선일씨)까지 희생되는 모습을 보며 병역 거부의 결심을 더욱 굳혀갔다.
그에게 1년6월의 실형을 선고한 판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피고인은 피고인의 병역거부가 전쟁을 멈추는 길이라고 주장하지만, 인류 역사에서 전쟁이 없던 적은 없었다. 전쟁에 대비하는 게 바로 평화를 지키는 것이다.” 임 변호사는 2005년 1월 감옥에 갔다. 출소 뒤 대학을 졸업하고 지난해 4월 변호사(법무법인 해마루)가 되었다. 법을 어겼던 그가, 이제 법조인이 되어 병역법을 어기겠다는 이들을 변호하고 있다.
“틈틈이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무료 변론을 하고 있어요. 부산지법에서 김진만(29)씨의 병역법 위반 재판을 진행 중인데, 김씨는 저처럼 평화에 대한 신념으로 병역을 거부하겠다고 해요. 제가 꼭 변호한다기보다는, 김씨가 법정에서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돕고 있어요. 병역거부자들은 ‘왜 병역을 거부하나’라는 질문에 평생 시달리거든요. 법정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충분히 하는 건, 감옥 갈 때 필요한 일종의 노잣돈 같은 거예요.”
임 변호사의 어머니는 병역을 거부하겠다는 아들을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감옥에 간 아들의 면회를 한동안 오지 않았다. 하지만 석방될 때 친구들이 사다 준 두부를 치워버리며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네가 죄를 지은 게 아닌데 왜 두부를 먹어? 나라에서 법을 만들어줬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임 변호사는 법조계에서 평화운동을 계속할 생각이다. 그게 어머니와 우리 사회를 위한 길이라 믿는다.
김훈태(37) 전 평택초등학교 교사 역시 평화주의자였다. 아이들에게 평화의 중요성을 가르쳐야 할 교사로서, 곧 군에 가야 하는 자신의 처지는 모순이었다. 그는 고민 끝에 2006년 3월 병역거부를 선언했고 감옥에 갔고, 교사직을 잃었다. 그는 아직도 교단에 돌아가지 못한 채 한 교육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살고 있다.
“처음엔 고통스러웠어요. 교사는 매우 중요한 직업이고 제게는 지켜야 할 가족도 있었으니까요. 또 사랑하는 아이들 곁을 떠나야 하고. 저는 평화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이들에게 큰 교육이 될 것이라 믿었죠.” 김씨가 병역거부 선언을 한 게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감옥에 가던 선생님의 모습을 지켜봤던 그 아이들이 군대에 갈 나이가 되어 지금 연락이 온다. “저는 그 아이들한테 군대에 가는 것을 망설이지 말라고 해요. 군대에 가는 것 역시 신념이니까요.” 아이들은 10년 전 김씨에게 “선생님 감옥 가지 마세요”라며 울먹였다. 김씨는 아이들과 헤어진 게 슬펐지만, 그 아이들에게 ‘네 삶의 주인이 되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었다고 한다.
비종교적 이유로 임재성 변호사와 김훈태 교사가 병역거부를 결정한 데에는 2001년 오태양(41)씨의 영향이 컸다. 오씨는 여호와의 증인 신자가 아니었다. 불교도인 그는 불살생 계율과 평화주의 신념을 들어 병역을 거부해 큰 파장을 낳았다. 그는 감옥에 다녀온 뒤 평화단체에서 평화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6일 오씨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15년 전과 지금 신념에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병역거부하고 감옥 다녀온 것을 후회하지 않냐고 물어요. 저는 군인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들에게 ‘후회한 적 없냐’고 묻지 않거든요. 왜냐면 그건 그분들의 신념이니까요. 병역거부한 뒤 제가 배운 것은 이거예요. 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나와 방식이 다른 것일 뿐 나라를 걱정하는 것은 똑같다.”
병역법 88조가 입영 불이행의 사유로 인정하는 ‘정당한 사유’에 대한 문구의 해석을 놓고,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2004년 이후 일관되게 ‘양심의 자유를 이유로 한 병역거부는 정당한 사유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해왔다. 그러나 대체복무제 도입 등 대안 마련 노력 없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계속 형사처벌할 경우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국가 안전 보장을 위해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나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한 헌법 37조 2항을 위배한다는 의견도 상당하다.
유엔의 압박도 거세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유엔 인권위원회는 ‘징역형을 선고받은 병역거부자 전원을 즉시 석방하라’고 한국 정부에 권고했다. 대체복무제 도입 권고 정도가 아니라 감옥에 있는 이들을 석방하라고 한 표현 등은 꽤 강도 높은 수준의 권고로 해석됐다. 2013년 유엔인권이사회(UNHRC)가 발표한 ‘양심적 병역거부에 관한 분석 보고서’는 세계 각국에 투옥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723명으로 발표했는데 이 중 92.5%가 한국인이었다.
지난달 20일 <한겨레> 인터뷰에 응한 유명 방송인인 양지운(68)씨와 그의 아내 윤숙경(60)씨는 셋째 아들 원석(25)씨가 곧 ‘92.5%’라는 병역거부 투옥자 통계 속 한명이 될 운명을 걱정하고 있었다. 이들 부부는 이미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을 감옥에 보냈다. 양씨 가족은 모두 여호와의 증인 신자다. 지난 4월21일 원석씨는 1심에서 병역법 위반 유죄 선고를 받고 항소심 대기 중이다.
“큰형(36)과 작은형(26)이 감옥 가는 걸 제가 모두 지켜봤어요. 저도 언젠가는 가게 될 거라 생각했어요. 저는 성서로 교육받은 양심으로, 전쟁을 준비하는 어떤 군대의 업무에도 반대해요.” 옆에서 이 말을 듣던 어머니 윤씨가 왈칵 눈물을 쏟았다. “제가 차라리 감옥에 가고 싶은 심경이에요. 아들 셋을 감옥에 보내는 부모 심정을 누가 알까요. 저는 (큰아들이 감옥 갔던 2000년 5월 이후) 16년을 가위에 눌려 살아요. 아들 셋의 발에 쇠사슬이 묶여서 끌려가는 모습을 매일 봐요. 아들에게 차라리 난민 신청을 하자고 해도 끝내 감옥에 가겠다고 하네요.” 아들은 우는 어머니를 위로하며 “저 한명 편하자고 나라를 떠날 순 없어요. 후배들의 불행이 반복되지 않도록 저도 뭔가 역할을 해야 해요”라고 말했다.
“제 아들은 병역을 기피하겠다는 게 아니라, 오랫동안 사회봉사를 할 수 있는 다른 길을 열어 달라고 주장하는 겁니다. 이제는 좀 그럴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법에도 눈물이 있다는데”라는 양씨의 이마에 주름이 깊게 팼다.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처벌하도록 한 병역법 88조의 위헌성 여부를 이르면 올해 안에 심판할 예정이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양심적 병역거부로 감옥에 간 백종건 변호사 옥중서신
양심적 병역거부로 검찰에 기소된 사법연수원생 백종건씨가 지난 2011년 6월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공판을 위해 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방식이 다를 뿐 사회 위해 일하고 싶어
평생 시달리는 ‘왜 병역 거부’ 질문
군대 가는 것 역시 신념, 질문 않아
오랫동안 봉사할 길 열어달라는 것 대법원이 발간한 <사법연감>을 보면, 한 해 재판에 넘겨진 이들 중 14%는 1년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고, 6%는 3년 이상의 형을 선고받는다(1심 재판 기준, 2015년). 병역거부자들은 비교적 무거운 형량인 1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는다. 1년6월은 이들에게 다시 입영통지서가 나오지 않게 하려는 판사들의 ‘고육지책’이다. 몇몇 판사들은 ‘법관의 양심’에 따라 무죄를 선고한다. 올해에만 두 건의 무죄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판례를 따르지 않는 하급심 판결이다. 한 지방법원의 부장판사는 말한다. “다들 불편한 마음으로 판결해요. 대체복무제도를 마련해주면 해결될 일인데 입법의 부재로 병역거부자를 무조건 처벌만 하고 있어요. 형벌의 예방 효과도 사라진 지 오래예요. 처벌해도 또 병역거부자들이 나와요. 수십년간 똑같죠. 그렇다면 국가가 나서서 제도를 정비해야죠.” 어떤 검사들은 “미안하지만 기소할게요”라고 하고, 어떤 판사들은 선고 때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병역거부 관련 사건은 지난해에는 493건이었고, 올해 8월까지만 141건이었다. 백 변호사는 내년 9월께 출소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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