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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숱한 기록이 ‘공권력 사망’ 가리키는데...수사라도 제대로 해봤냐”

등록 2016-10-17 19:09수정 2016-10-17 22:07

강경대·김귀정 사인규명 참가했던 양길승 녹색병원 이사장
양길승 녹색병원 이사장이 16일 오전 서울 면목동 녹색병원에서 백남기 농민 부검과 관련한 의견을 이야기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양길승 녹색병원 이사장이 16일 오전 서울 면목동 녹색병원에서 백남기 농민 부검과 관련한 의견을 이야기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양길승(67) 녹색병원 이사장은 “백남기 농민 사건은 자신이 여태까지 경험해온 공권력에 의한 사망사건 중 가장 특이한 경우”라고 했다. 이렇게 많은 목격자와 영상기록, 의무기록을 남긴 죽음은 지금까지 없었다는 것이다.

16일 서울 중랑구 면목동에 있는 녹색병원 원장실에서 양 이사장을 만났다. 그는 한쪽 책장 위에 묵혀뒀던 오래된 사건 기록들을 꺼내들었다. 1991년 등록금 인하와 군사정권 반대 등을 외치며 학생운동을 하다 경찰 진압과정에서 사망한 명지대학교 1학년 강경대와 성균관대학교 김귀정에 대한 기록들이었다. 그는 당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 의사로서 유족의 편에서 사인규명에 참여했다.

양 이사장은 “부검은 필요할 때도 있다. 사인을 알 수 없어 규명이 필요할 때다. 김귀정이 사망했을 때 유족은 정말 부검을 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도 이렇다 할 사인을 알 수 없으니 부검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한달 앞서 강경대가 시위 도중 경찰 구타에 의해 사망했을 때는 검찰과 ‘부검 없는 공동검안’에 합의해 컴퓨터단층촬영(CT) 등을 통해 사인규명을 이뤄냈다. 목격자 진술이 있었고, 외상 흔적이 뚜렷하다는 유족 주장을 검찰이 받아들인 것이다.

양 이사장은 “강경대에 비춰보면 백남기 농민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기록이 있다. 사고 상황을 현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직접 목격했고, 사고 장면이 담긴 영상도 여러개 있다. 사고 직후 수술을 한 집도의의 진술과 기록이 있고, 316일 동안의 의료기록이 있다”고 했다. 그는 “검찰은 이 수많은 기록을 가지고 사인을 밝히고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해보고 지금 유가족들에게 부검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양 이사장은 1969년 서울대 의대에 입학한 이후 학생운동을 하다 수배와 고문, 투옥과 제적 등의 시련을 겪다, 고 김수환 추기경이 안기부(현 국가정보원)에 신원을 보증해 아일랜드로 유학을 다녀올 수 있게 되면서 의대 입학 17년 만인 1986년 의사가 됐다. 그 이후 후배들과 함께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를 만들어 직업병과 산업재해에 시달리는 노동자들과,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다치거나 숨진 이들을 위한 의료활동을 벌여왔다.

그는 “공권력에 의해 사람이 죽은 것이 이 사건의 본질이다. 그런데 사망진단서나 ‘빨간 우의’ 같은 불필요한 논란들로 본질이 가려지고 있다”며 “논란에 휘말리지 말고 ‘아닌 건 아니라’고 하고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망진단서가 잘못됐다고 동료 교수들도 말하고, 건보공단 이사장도 말하고, 심평원장도 말하고, 심지어 가장 보수적으로 움직이는 대한의사협회까지 말했다. 그러면 그건 잘못된 것이다. 그것으로 끝이다. 빨간 우의가 백남기 농민을 때리지 않았다는 것이 영상에 나왔다. 때려서 생길 수 없는 상처라는 게 기록에 있다. 그러면 그것으로 끝이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너무 착해서 그런지 자꾸 그들을 설득하려고 해요. 그게 아니라 그들이 설득을 해야 하는 거에요. 다 아니라고 하는데 일부가 그렇다고 주장한다면 어디 설득을 해봐라 해야 돼요. 그 책임은 이쪽이 아니라 저쪽에 있는 거예요.”

양 이사장은 “수사기관도 마찬가지다. 유족이 반대하는 부검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려면 그 필요성을 검찰이 설득해야 한다. 특검을 하든, 수사를 하든, 존재하는 기록 다 검토하고 수사해볼 거 다 했는데 안 된다고 하든지, 아니면 부검이 안 되면 ‘사인규명을 위해 이렇게 노력합시다’라고 제안을 하든지, 그 책임은 국가에 있다”고 했다. 지금까지 그 수많은 증거를 가지고 제대로 수사도 하지 않다가, 백남기 농민이 사망하자 부검이 꼭 필요하다고 우기는 것은 국가의 또 다른 폭력이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들은 책임을 다하려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어떤 진정성도 보여주지 않고 피해자인 유족들에게 일방적으로 따르라고 강요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양 이사장은 의사지만 “이 사건에서 의학의 역할은 제한적”이라고 했다. 그는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황적준 고려대 교수가 부검을 통해서 밝혀냈지만, 많은 시국사건에서 부검을 통해 사인이 규명된 경우는 많지 않다”고 했다. 김귀정은 부검 결과 그저 질식사였고, 박창수(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은 추락사였으며, 1996년 노수석은 심장마비였다. 2005년 전용철 농민에 대한 부검에서는 ‘외부 타격이 있다 없다 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는 “실제 사인은 당시 정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밝히는 것이고 의학은 그 한 부분에 불과하다. 그런데 진상규명을 하기 위한 다른 모든 정황과 기록들은 무시하고, 극히 일부분인 부검에 집착하면서 본질을 감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양 이사장은 “실제로 사람을 치료해보면 많은 경우에 의술은 작은 부분이고, 환자의 고통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은 큰 부분이었다”고 했다. 그는 “정부도 마찬가지다. 정말 이 사건을 해결하려는 생각이 있다면 작은 것에 집착하지 말고, 유족과 피해자의 아픔을 이해하고 치유해주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우선”이라고 했다.

허승 기자 rais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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