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체크】
집단따돌림으로 세상 등진 학생
예견 가능했으면 학교·교사도 책임
집단따돌림으로 세상 등진 학생
예견 가능했으면 학교·교사도 책임
광주에 살던 16살 ㅂ군에게 고등학교 진학 첫해인 2012년은 악몽이었습니다. ㅂ군은 4월부터 같은 반 친구들로부터 100여 차례 폭행을 당했습니다. 친구들은 ㅂ군에게 바지를 벗으라고 강요한 뒤 휴대폰으로 성기를 촬영해 이를 빌미로 돈을 빼앗기도 했습니다. 해가 바뀌고도 따돌림이 이어지면서 ㅂ군은 우울증을 앓기에 이르렀고, 학교법인과 광주시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습니다. 광주지법 민사3단독 심재현 판사는 지난 3월 학교가 학생 보호·감독에 소홀했다며 ㅂ군에게 3천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학교 현장에서의 ‘집단따돌림’은 사회적 문제입니다. 소외와 폭력의 경험은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흔적을 남깁니다. 육체적 고통뿐 아니라 정신적 상흔을 깊게 남기죠. 이 때문에 법원도 가해자와 교사, 학교 등에 손해배상 책임을 엄격히 묻는 추세입니다. 다만, 집단따돌림의 가해 학생들은 미성년자입니다. 법원은 이들이 대개 민법상 ‘책임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 봅니다. 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해도 이를 판단할 능력이 부족하다고 보는 것이죠. 그래서 미성년자의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책임은 그들의 법정대리인, 대개 부모가 지게 됩니다. 때로 불법행위의 정도가 심각해 가해학생에게 책임능력이 있다고 볼 경우에도, 부모의 책임을 함께 묻기도 합니다. 부모는 자녀가 다른 친구를 때리지 못하게 하는 등 올바르게 교육할 의무가 있는데, 그러지 못했을 때 별도로 책임을 따지게 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교육 현장에서 학생을 보호하고 감독해야 하는 교사와 학교의 책임은 어디까지 인정될까요? 법원은 교사가 학교생활에서 학생들의 불법행위를 막기 위해 충분히 노력하지 못했다면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봅니다. 판례를 살펴보면, 막연히 화해를 권하거나 형식적인 예방교육을 여는 등 구색 맞추기 식의 대처는 부족하다는 것이 법원 판단입니다. 위의 사례를 볼까요? 당시 ㅂ군의 고등학교는 ‘여러차례 특별조사와 설문조사를 했다’고 항변했습니다. 하지만 심 판사는 “집단따돌림은 은밀하게 행해지기 때문에 특별교육이나 설문조사 등의 방법으로는 적발할 수 없다”고 지적하며 학교 쪽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죠.
학교 쪽 책임이 인정된다고 해서 항상 교사 등이 개인적으로 배상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아닙니다. 통상적으로 공립학교 교사가 업무 중 불법행위를 저지를 경우, 손해배상 비용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합니다. 국가와 지자체에는 공무원인 교사를 관리·감독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립학교 교사의 경우, 배상책임은 일차적으로 학교법인이 갖게 되죠. 다만, 과실의 정도가 심해 고의에 가까울 경우에는 교사 개인이 책임을 부담하기도 합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7부(재판장 예지희)는 2014년 8월 ㅇ양(당시 14살)이 따돌림을 당했다며 담임교사와 서울시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뒤집고 “서울시가 ㅇ양과 ㅇ양의 부모에게 6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법원은 ‘진급 시 가해 학생들과 다른 반에 배정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묵살당했다’는 ㅇ양의 주장을 받아들여 교사의 과실을 인정하고, 배상책임은 교사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서울시에 물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피해 학생이 목숨을 끊었을 경우엔 보다 신중하게 판단합니다. 보통의 보호감독 행위를 넘어 자살 결과에 대한 책임까지 묻기 위해서는, 교사가 자살을 예견하거나 예견할 수 있었어야 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0부(재판장 김용관)는 지난해 11월 집단따돌림에 시달리다 투신한 ㄱ양(당시 14살) 유족이 교사와 서울시 등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하면서도, 자살에 대한 학교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담임교사가 “갈등을 과소평가하고 ㄱ양을 배려하지 못한 책임은 있다”면서도 ㄱ양이 평소 우울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 자살까지 예견할 순 없다고 봤습니다.
이 경우에도 법원이 학교 쪽에 손해배상 책임이 전혀 없다고 본 것은 아닙니다. 다만 ‘자살’ 결과에 대한 책임을 따질 땐 신중해야 한다는 취지인데요. 이와 관련해 법원은 “따돌림 정도가 사회통념상 허용될 수 없는 중대한 악질이라고 보기 어려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만약 ㄱ양이 심각한 폭력에 시달렸거나, 생명을 끊겠단 신호를 보냈는데도 교사가 이를 묵살했다면 법원은 학교 쪽 책임을 보다 엄격히 물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앞서 대법원도 비슷한 판단을 했습니다. 대법원 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2013년 따돌림을 당하다 목숨을 끊은 ㄱ군(당시 15살) 부모가 낸 소송에서 자살 결과에 대한 교사의 책임을 물은 원심을 뒤집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재판부는 “괴롭힘이 주로 폭력적인 방법이 아닌 조롱이나 비난이었고, ㄱ군이 자살을 예상할 만한 특이한 행동을 하지도 않았다”고 봤습니다.
다만 언어·정서 폭력을 가볍게 보는 법원 판단에 대해서는 우려의 시선도 있습니다. 지난 7월 교육부가 발표한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언어폭력(34.0%)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신체 폭행(12.1%)의 3배에 가깝습니다. 언어·정서 폭력을 수반한 따돌림이 학생들을 돌이킬 수 없는 선택으로 내몰 때, 소극적으로 대응한 학교의 관리·감독 책임을 보다 엄격히 물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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