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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100만 촛불, 국민의 힘 보여줬다

등록 2016-11-13 00:55수정 2016-11-13 14:41

87년 이한열 장례식 100만명 이래 최대
경복궁역앞 대치에도 서로 “비폭력” 연호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3차 범국민행동' 문화제가 1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려 시민들이 촛불을 들어올리며 박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3차 범국민행동' 문화제가 1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려 시민들이 촛불을 들어올리며 박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100만명.

87년 6월항쟁 이후 최대의 인파가 서울 도심을 뒤덮었다. 광화문 교차로를 중심으로 뻗어나간 네거리도 시민들의 촛불과 핸드폰 불빛으로 반짝였다. 12일 밤 서울 도심엔 밤늦게까지 진짜 ‘광장의 정치’가 펼쳐졌다. 이날 청와대는 수석비서관 이상 모두가 비상근무를 하며 수시로 내부 대책회의를 펼치고 있었다. 청와대 안에 있던 이들에게도 이 함성은 들렸을 것이다. ‘2선 퇴진’마저 거부하는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100만 촛불은 ‘퇴진’이 다수 국민의 명령임을 분명히 보여줬다.

이날 참여자는 주최 쪽 추산 100만명(경찰 추산 26만명)을 넘었다.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당시 서울지역 최대 70만명을 훌쩍 넘어, 1987년 6월항쟁 당시 7월9일 연세대 학생 이한열 열사 장례식 때 모였던 100만 인파 이후 29년 만에 최대다. 주최 쪽은 부산 3만5000명, 제주 5천명, 광주 1만명, 대구 4000명 등 전국 10여개 지역에서도 6만명이 집결했다고 밝혔다. 거리엔 가족단위의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유모차에 타거나 엄마나 아빠의 아기띠에 매달린 어린 아이들도 많았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 나이 지긋한 이들까지 다양한 세대들이 모였다. 그렇게 한사람, 한사람이 모여 100만이란 거대한 물결을 만들어냈다. 밤 8시 광화문 광장에서 본집회가 다시 시작된 이후, 사회자의 요청에 따라 사람들이 촛불과 핸드폰 불빛을 위로 차례로 들었을 땐 도심에 ‘촛불 파도타기’의 장관이 펼쳐졌다.

광화문광장 무대 앞에 일찌감치 두 자녀와 함께 나온 회사원 임아무개(40)씨는 “국민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대통령이 아직도 잘 모르는 것 같다. 최소한의 신뢰와 믿음을 저버린 대통령 자신이 국정혼란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점을 알려드리고 싶어서 나왔다”고 말했다. 경기 일산에 사는 한 주부는 “최순실 같은 사람에게 국정을 맡긴 대통령이 무슨 염치로 국정수습을 운운하느냐. 1명의 힘이라도 더 보태야겠다는 생각에서 대학생 딸과 함께 함께 왔다”고 말했다.

밤 늦게 광화문광장에선 박근혜 대통령의 출신 고교인 성심여고 학생들이 첫 연사로 무대에 올라 “선배님 같은 후배가 되지 않겠다”며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다. 밤 10시 가까이 “저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도 오르지 못한 그래서 마냥 창피한 그래서 요즘 더욱 분발하고 있는 가수 이승환입니다”이라며 이승환이 무대에 오르자, 참여자들의 환호가 절정에 달했다. 주최 쪽은 오는 19일과 26일 토요일에도 촛불집회를 계속해서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밤 10시25분께 공식 행사가 마무리 됐지만, 광화문광장 무대에서는 자정을 넘어 밤 늦게까지 국민들의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3차 범국민행동' 문화제가 1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려 시민들이 촛불을 들어올리며 박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3차 범국민행동' 문화제가 1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려 시민들이 촛불을 들어올리며 박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한편, 경복궁역 앞 내자 교차로에선 청와대 행진을 요구하는 시위대와 경찰의 대치 상황이 자정을 넘어 지속됐다. 오전 1시 현재 5000여명의 시민들이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청와대 행진을 요구하는 시민들과 최종 처지선을 지키려는 경찰간 몸싸움이 벌어지면서 경찰과 시민 일부가 탈진해 병원으로 후송되기도 했다. 종로경찰서는 6명이 병원에 이송되고 23명을 현장에서 처치했다고 밝혔다. 밤 11시께는 경찰 저지선이 시위대에 밀리면서 일부 시민이 경찰 차벽 위에 올라가는 상황이 빚어졌지만, 시위대의 자제 요구로 오전 1시까지 큰 충돌이 빚어지진 않았다. 경찰은 이날 처음으로 차벽을 넘어온 집회 참가자 1명을 연행했다. 시위대는 “청와대에 소리가 안 들린다. 길을 열어달라”고 주장했고, 경찰은 “안전을 위해 성숙한 시민의식을 발휘해달라”며 막아섰다. 경찰과 시민들은 밤샘 대치 속에서도 서로 자극하지 않으려 최대한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경찰들도 ‘비폭력, 비폭력’을 연호했고, 시민들은 “시민이다, 밀지마라” “비폭력” 등을 외쳤다. 한 신학대 1학년 학생은 “경찰들도 피곤하고 힘들텐데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경찰 방패를 빼앗았다가 돌려주는 시민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바로 1년 전, 이 거리에서 백남기 농민은 경찰의 차벽 앞에서 물대포에 쓰러졌다. 지난해와 달리 경찰이 유연한 대응을 하려는 모습을 보이면서 극한적인 충돌과 폭력은 사라졌다. 몇몇 시민들이 청와대 행진 과정에서 경찰과 부닥쳤지만 격렬한 물리적 충돌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시민도, 경찰도, 폭력을 원하지 않는다. 일부에서 “폭력경찰 물러나라”는 구호가 나오자, 몇몇 시민들이 외쳤다. “경찰이 무슨 죄냐, 박근혜만 물러나라.”

고한솔 박수진 박수지 기자 sol@hani.co.kr


■ 기고

왕정에서 민주로!

도올 김용옥

우리는 오늘, 신성한 우리 조국 대한민국의 이 땅 위에, 다시는 불의의 그림자가 드리우지 않도록, 진리와 정의와 자유의 횃불을 밝히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오늘 우리의 이 자리야말로 먼 훗날, 기나긴 왕정(王政)의 어둠을 민주(民主)의 광명으로 전환시킨 가장 결정적이고도, 가장 근원적이며, 가장 자각적인 혁명(革命)의 그때였다고 인류의 모든 역사가 기록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동포 여러분! 여러분들은 평화를 원하십니까? 전쟁을 원하십니까?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자녀에게 공존과 사랑의 평화를 물려주시렵니까? 대결과 잔혹의 전쟁을 물려주시렵니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또다시 불확실과 불확정의 회오리바람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지난주 우리가 이 자리에 모였을 때와는 또다른 혼돈의 먹구름이 전 세계를 휘덮고 있습니다. 트럼프가 승리한 것이 아니라 힐러리가 패배했습니다. 힐러리로 대변된 미국 상층구조의 타성과 압제와 부패와 기만, 도덕불감증에 빠진 지성의 안일, 경제양극화를 극단화시킨 불평등의 죄악이 여지없이 패배한 것입니다. 그것은 트럼프의 승리가 아니라 미국 민중의 반역입니다. 1776년의 미국의 독립선언, 1788년 미국헌법이 비준된 이래 미국의 민주주의를 지탱해온 모든 가치관이 결코 민주적이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을 자각한 민중이 더 이상 속을 수 없다는 것을 선포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이제 미국은 갈등과 분열 속에서 혼란을 겪게 될 것입니다.

트럼프는 결코 미국 사회 저변의 도덕적 열망을 구현하는 인물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트럼프에 대한 판단을 보류해야 합니다. 확실한 것은 미국의 대중이 지속보다는 변화를, 안정보다는 전복을 택했다는 것입니다. 세계는 급격히 변하고 있습니다. 이 개변의 시대에, 우리는 트럼프의 한국에 대한 생각이 우리에게 미칠 영향을 논하고 앉아 있을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의 의식 속에 먼저 트럼프정권의 미래진로를 형성할 수 있는 적극적 한국의 역사상을 심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모인 위대한 세계시민 여러분들께서 미국의 역사를 올바른 방향으로 선도해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북한과의 대결을 원치 않으며, 평화적인 다양한 방법에 의한 통일을 지향하며, 북미관계의 정상화를 통해 북핵을 제거시키며, 공존의 경제적인 번영을 세계인들과 더불어 누리고자 한다는 “평화의 이니셔티브”를 선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평화의 선포는 오로지 새로운 의식, 새로운 개벽의 지평 위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의 미래희망인 꽃다운 생명들이 세월호와 더불어 침몰하는 것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방관하고, 혼의 비정상 운운하며 역사 국정교과서를 강압적으로 제작하고, 남북의 유일한 통로였던 개성공단을 밑도 끝도 없이 폐쇄하고, 기나긴 협상 끝에 최종적으로 결정해야 할 사드 배치를 불쑥 결정해버리고, 위안부 문제를 일본 침략자들의 구미에 맞게 합의해 버리며, 한일군사정보협정을 여론수렴 없이 일사천리 강행하며, 최순실이라는 사악한 존재의 농단과 농락에 국정 전반을 팽개쳐버리는 그러한 정권, 끄떡하면 종북을 외치고, 반공으로 폭압하며, 북풍을 조작하는 그러한 박근혜정권과 그의 모든 추종세력은 더 이상 국가의 운명을 관장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더 이상 국가운영을 위탁할 수 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님! 이미 당신이 저지른 끔찍한 죄악은 사과나 타협이나, 혹은 질질 끌어서 모면될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닙니다. 하루속히 물러나십시오. 아무리 깊게, 또 깊게, 또 깊게 생각해보아도, 오늘의 난국을 해결하는 열쇠는 당신의 양심의 용단에 매달려 있습니다. 하야하십시오! 당신의 하야야말로 모든 난국을 정의롭게 수습할 수 있는 첩경이며, 대한민국 민주 역사의 여정에 위대한 이정표를 수립할 수 있는, 그대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애국적 결단입니다. 이 민족을 전쟁의 위협과 민생의 파탄에서 구원하여 평화와 공존과 번영의 기쁨을 누리게 만들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언론제현에 호소합니다. 주저 말고 한마음으로 박 대통령의 하야를 권고하십시오. 그러한 권고만이 우리나라 언론이 이 시대의 자랑스러운 사명을 다했다는 기록을 청사에 남기게 될 것입니다. 진보언론, 보수언론을 막론하고 다 같이 나설 때입니다. 이 백만 민중의 함성이 들리지 않습니까? 천명(天命)이 이미 박근혜를 떠났습니다.

사랑하는 동포 여러분! 저는 대구 송현여고 조성혜양의 이 가냘픈 목소리를 기억합니다: “여러분 저는 두렵습니다. 오늘 우리의 민주주의를 향한 노력이 다른 사건들처럼 점차 희미해지고, 변질되어 잊혀질까봐!”

그렇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의지가 박약해지지 않도록 서로를 격려하며, 진리의 등불을 밝히며, 승리의 그날까지, 개벽의 그날까지, 하야의 그날까지, 투쟁! 투쟁! 투쟁!

2016년 11월 12일
광화문 광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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