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31일 서울 홍은동 ‘이웃기웃’의 1인가구 입주민들이 반상회를 열고 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필승 재계약’, ‘다시 만난 세계’, ‘다시, 시작’….
지난 10월31일 저녁 서울 홍은동의 다세다주택 ‘이웃기웃’에선 ‘1인가구’ 입주민 13명이 모인 반상회가 열렸다. 곧 다가오는 ‘연말 파티’의 슬로건을 두고 의견을 내는 중이었다. 연말파티 준비 외에도 매달 열리는 반상회에선 소소하지만 생활에 중요한 논의가 많이 이루어진다. 변기를 고정시키는 시멘트를 공동구매한다거나 분리수거 제대로 하는 방법 등 ‘생활밀착형’ 안건들이 많다.
1인가구의 연말은 쓸쓸할 것이라 흔히 생각하지만, 이곳에선 그런 분위기를 감지하기 어렵다. 서로 얼굴 볼 일이 거의 없는 일반 원룸촌과 달리 서로의 이름과 직업을 속속들이 알고 종종 집으로 초대도 하는 나름 ‘끈끈한’ 관계다. 스무살 이후 독립했다는 김연희(28·시민단체 상근자)씨는 “저녁에 늦게 들어올 때도 잦은데 주변에 ‘아는 사람들’이 산다는 게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이웃끼리 서로 기웃거리며 보살핀다’는 뜻을 지닌 ‘이웃기웃’은 높은 주거비 부담과 고립감을 덜기 위해 1인가구들이 모여 사는 협동조합형 공공임대주택이다. 서울시가 만 19~35살의 청년층 1인가구의 주거비 부담을 덜기 위해 2013년부터 벌인 사업이다. 임대보증금 2천만원, 월세 13만원 수준이며, 건물 두 동에 30여가구가 입주해있다. 이웃기웃의 임경지 이사장은 “더 이상 1인가구가 부모로부터 독립해 결혼하기 전까지의 일시적 상태를 가리키지 않는다. 비혼·만혼이 늘면서 1인가구로 사는 기간이 길어지고 있어, 이런 가구들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주거 수요가 앞으로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비혼·만혼이 늘어나고 저출산이 심화되는 추세는 4인가구 중심의 ‘전통적 가족’의 모양도 바꾸어가고 있다. 1인가구와 2인가구가 크게 늘어나면서 다양한 주거 공동체와 새로운 가족 형태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법률혼 부부와 자녀를 중심으로 한 가족만 ‘정상 가족’으로 여기는 사회적 인식의 개선은 물론이고 법·제도적으로도 다양한 가족에 대한 포용력을 넓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혈연 넘어 ‘사회적 가족’ 진화
협동조합형 임대주택 ‘이웃기웃’
청년층 1인가구 30여명 입주
“주거비 부담 덜고 외로움 달래”
다세대주택에 함께 사는 ‘우동사’
1인가구에 무자녀부부·동거커플도
“고정역할 없이 서로 맞춰가며 만족”
1인가구 27%, 가구유형 중 최다
‘결혼 않고 동거 가능’ 의견도 48%
“주거 지원·포용적 가족정책 필요”
■ 가족의 재구성 통계청의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를 보면, 1인가구는 27.2%로 전체 가구유형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이었다. 이어 2인가구가 26.1%로 뒤를 이었다. 20년 전인 1995년에 31.7%였던 4인가구는 지난해 18.8%로 쪼그라들었다. 장래가구추계(2010년 총조사 기준)로는 2035년이 되면 1인가구 비중은 34.3%, 2인가구는 34.0%에 이를 전망이다. 특히 전통적 가족의 모습으로 인식돼온 ‘부부+미혼자녀’의 비중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 ‘부부+미혼자녀’ 가족의 비중은 전체 가족구성 형태 중 32.2%였는데 2035년에는 이런 가족 비중이 20.2%로 낮아진다.
1인가구와 2인가구의 증가는 젊은 세대일수록 결혼이 필수에서 선택으로 바뀌어가고 있는데다, 혼인 연령과 초산 연령이 점차 늦어지고 있는 점과 관련이 깊다. 통계청의 ‘2016년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결혼에 대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은 2명 중 1명(51.9%)꼴이었다. 2010년에는 64.7%였다. 대신 결혼을 하지 않고 동거 등 함께 살 수 있다는 인식(48%)은 2010년 이후 계속 증가하고 있다. 또 최근 들어서는 자식이 부모를 모시지 않는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에 3~4인가구로 살다가도 생애주기가 노인으로 접어들면서 1~2인가구가 되는 경우가 큰 폭으로 늘고 있다.
직장인 윤아무개(32)씨는 스무살부터 10년 이상 ‘나홀로 가구’로 살다보니, 혼자 사는 게 익숙하고 편해졌다고 했다. 그는 “결혼 생각도 해봤지만, 경제적 부담뿐만 아니라 개인 생활을 지나치게 침해받거나 상대방의 가족까지 견뎌내야 하는 전통적인 결혼 방식에 회의감이 컸다”며 “비혼주의는 아니지만 결혼이 아니더라도 동거와 같은 방식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윤씨는 주변에 결혼식과 혼인신고, 거주 방식 등을 선택적으로 한 뒤 함께 지내는 사람들을 보며 “다양한 삶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인천 서구 검암동의 '우리동네사람들'이 지난달 6일 ‘커뮤니티펍 0.4㎞’에서 공동체 기금으로 주거 안정을 이룰 수 있는 방안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들은 주말에 이곳에서 책 읽기 모임, 맥주 만들기 등 다양한 소모임을 함께 한다. 인천/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인천 서구 검암동의 다세대주택 다섯채에 30명이 함께 사는 ‘우리 동네 사람들’(우동사)처럼 ‘사회적 가족’을 표방하는 주거 공동체도 등장하고 있다. 원래 귀촌을 꿈꾸던 청년 6명이 함께 모여 살기로 하면서 시작된 우동사는 현재 30명이 함께 살고 있다. 우동사 명의로 집을 사고 우동사 식구가 된 이들이 보증금과 주택대출 상환비, 생활비 등을 일정액씩 내는 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식구 30명 중 대부분은 1인가구이지만 아이가 있는 결혼커플과 무자녀 결혼커플, 그리고 동거커플도 포함돼 있다. 혈연 중심이 아닌 사회적 가족이란 개념은 아직 이들에게도 생소하다. 우동사 식구 중 상당수는 대부분 10년씩 1인가구로 나홀로 살았던 이들이다. 처음엔 ‘같이 살면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었는데, 살아보니 ‘혼자 살 때 느끼지 못하는 재미와 안정감’을 새로운 ‘식구’들한테서 얻는다고 한다.
지난해 11월부터 ‘우동사’에서 사는 김진선(36)씨는 “기존 혈연 가족에서는 관계가 정해져 있고 고정된 역할이 있어서 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기고 또 부담도 되는데, 이렇게 살아보니 꼭 ‘어떻게 행동하는 게 맞다’는 것도 없고 서로한테 좋은 걸 맞춰간다는 느낌이 있다”며 ‘관계의 재구성’에서 오는 만족도가 크다고 말했다. 유일한 아이 엄마인 이성희(33)씨한테 우동사 식구들은 아이의 든든한 ‘이모’와 ‘삼촌’이다. 그는 “급한 일이 생길 때 우동사 멤버가 아이를 봐줄 때도 있다”고 말했다.
■ 포용적 가족정책 필요 한국보다 앞서 1인가구가 보편화된 외국은 이미 정책적 지원에 나서왔다. 미국은 정부 주도하에 저소득 1인가구 주거비를 줄여주기 위한 공공임대주택 지원 프로그램인 ‘싱글 룸 거주’(SRO)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추세다. 시애틀에선 1인가구 증가로 초소형 주택이 늘면서, 이에 따른 주거의 질 저하를 우려해 시가 적절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규제하기도 한다. 독일에선 2006년 저출산·고령화 사회 대비 주거 형태로 ‘다세대 공동주택’을 도입했다. 개별화된 주거공간을 보장하면서도 구성원들이 사회적 네트워크 안에서 노후 생활을 보낼 수 있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연령별로는 청년·장년·노년층, 가족 형태별로는 부부가족·한부모가족·노인단독가구 등이 모여 사는 식이다.
홍승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가족·평등사회연구실장은 “현재 청년세대는 새로운 가족 형태의 변화를 주도하는 집단인 만큼, 이들의 욕구를 반영하는 적극적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며 “가족 구성과 가족 형태, 가족 관계에서의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하고 사회에 태어난 모든 출생에 대해 충분한 보호와 동등한 대우를 보장하는 포용적 가족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도 지난해 말 ‘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16~2020년)을 내면서 비혼·동거가구에 대한 차별 개선을 위해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등의 계획을 발표한 바 있지만, 관련 논의 및 추진은 부진한 상태다.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지면 동성커플 인정이 함께 이루어지는 것 아니냐는 종교계 등의 반발이 거센 탓이다.
국회에서도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수년째 동거커플의 권리를 보장하는 ‘생활동반자법’ 제정을 추진해왔지만 아직 법안 발의조차 되지 못했다. 최근엔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소속 모임 ‘풀하우스’가 비슷한 취지에서 ‘파트너등록법’(가칭) 지지 서명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는 생활동반자법안보다도 적용 대상의 범위가 더 넓다. “서로 돌보고 지내는 1인가구들, 장기돌봄 관계인 고령자, 동거·장기연애 커플, 결혼하지 않고 부부로 사는 재혼커플, 동성커플, 생활주거공동체 등 기존 제도로는 가족이 될 수 없는 이들을 위해 새로운 법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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