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6차 주말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서 거대한 파도를 연출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가운데 광장에서는 ‘구체제 타파’와 ‘새판짜기’ 작업이 한창이다. 단순히 대통령을 바꾸는 문제를 넘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얼룩진 민주주의와 사회구조를 시민의 힘으로 다시 세워야한다는 ‘시민혁명’의 기운이 분출되고 있다.
지난달 초 서울 광화문광장에 차려진 ‘박근혜 퇴진 캠핑촌’에서는 촛불 민심을 반영하고 구체화하기 위한 활동을 준비 중이다. 9일 캠핑촌의 송경동 시인은 “죽 쒀서 개 줄 순 없다. 탄핵 이후에도 촛불은 꺼져선 안되고 사회 변화를 견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변화를 위한 실천 중 하나로 캠핑촌에서는 일주일에 두 번씩 광장 토론회를 연다. 10일에는 ‘탄핵? 즉각 퇴진! 탄핵 이후 광장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리고, 오는 13일에는 ‘평등한 광장의 정치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주제로 여성·청소년·노동자·생태주의자 등이 머리를 맞댄다.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의 시각에서 대통령이 물러난 뒤 사회가 나가야할 방향을 모색할 계획이다.
토론회를 기획·준비하고 있는 이원재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소장은 “박 대통령이 퇴진하고 대통령 선거를 치르는 여의도 정치 프로세스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직접민주주의 제도를 구현하기 위한 광범위하고 장기적인 광장토론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제도 개혁과 재벌개혁을 위한 활동도 이어진다. 녹색당은 ‘박근혜 퇴진’과 함께 ‘시작하자 시민의 정치’라는 구호를 함께 외치고 있다. 박 대통령 퇴진 이후를 시민의 힘으로 준비하자는 뜻이다. 녹색당은 이번 사태가 권력의 독점과 부패에서 비롯됐고, 이 문제는 고질적인 양당 정치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진단했다. 연동형비례대표제, 국민소환제, 대통령 불소추 특권 제한, 대통령·국회의원 정치 일정 세부공개 등을 해법으로 내놨다.
또 다른 원외정당인 노동당은 ‘다음 탄핵은 재벌입니다’라는 슬로건을 내놨다. 김진근 노동당 공보국장은 “박근혜 게이트에서 재벌은 공범인데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특히 국민의 노후보장을 위한 자금인 국민연금을 경영권 승계를 위한 도구로 희생시킨 죄가 중하다”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체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라고 말했다.
촛불 민심을 대변할 온라인 시민 대표단을 선출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풀뿌리정치실험실 ‘와글’, 한국YMCA전국연맹 등이 참여하는 ‘시민의회’는 오는 12일부터 닷새동안 온라인 추천 기간을 거쳐 19일 대표단을 구성하자고 지난 6일 제안했다. 소설가 황석영·김훈, 방송인 김제동,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 등 128명이 1차 제안자로 참여했고, 2차 제안자로 직장인, 주부, 농민 등 1013명이 참여했다. 대표단 수와 후보선출 방식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온라인(http://www.citizenassembly.net)에서 자유롭게 토론중이다. ‘와글’의 이진순 대표는 “후보로 추천되는 이들 중에는 유명인들도 있지만 고등학생, 대학생, 회사원 등도 많다. 대표자들이 할 일은 큰 게 아니고 주권자인 장삼이사들이 뜻을 모으면 이를 대변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이 뽑은 대표단의 핵심 역할은 정권이 바뀌더라도 또 다른 최순실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 이번 사태의 책임자들에 대한 수사와 처벌에서 성역이 없도록 철저히 감시하고, 필요하면 특검·여야 정당·언론 등에 촛불 민심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또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폭넓게 분출되고 있는 다양한 국가 개혁 의제들을 수렴하고 공개하는 역할도 담당한다. 이 대표는 “시민의회는 기존처럼 ‘단체 중심’이 아닌 ‘이슈 중심’의 논의 구조를 갖는다. 선거법 개정, 페미니즘 등 이슈 중심으로 관심있는 개인들의 토론과 합의가 이뤄져 가는 풀뿌리 구조”라고 말했다.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관계자는 “향후 방향에 대해 지금 토론을 많이 벌이고 있다. 퇴진행동은 시민들을 대표할 수 없고, 대신 심부름을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김규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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