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와 합리적 추론…‘서울 택시 7만여대->130여대->10여대’ 압축
‘범행 부인’ 운전자, ‘운행기록장치’ 통한 진술·운행기록 모순으로 덜미
‘범행 부인’ 운전자, ‘운행기록장치’ 통한 진술·운행기록 모순으로 덜미
지난달 15일 새벽 5시36분께 서울 강남구 논현로 차병원 앞 인근 횡단보도를 건너던 김아무개(67)씨는 우회전하던 택시의 범퍼에 받히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뇌진탕 등 상해를 입었지만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택시는 그대로 달아났다. 사고 목격자는 없었다. 사고 후 현장에 쓰러진 김씨를 본 행인이 112에 신고했다. ‘주황색 택시가 뺑소니를 치고 달아났다’는 내용이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뺑소니 추적에 나섰다. 사고 현장 인근 폐회로텔레비전(CCTV)을 확인해보니 택시는 주황색이 아니라 은색이었다. 경찰은 서울 강남구에서 일어난 사고이니 용의차량이 서울 택시일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은색 서울 택시는 7만여대(2015년 말 기준)였다. 더 줄여야 했다.
경찰은 뺑소니 택시의 도주로를 따라 폐회로텔레비전 120여대를 확인했다. 희미하게 번호판이 보였다. 네 자리 번호 중 맨 앞이 3, 맨 뒤가 4였다. 택시는 번호판의 두 자리 번호 중 첫 자리가 ‘3’이다. 두 자리 뒤 한글은 사업용의 경우 ‘바, 사, 아, 자’ 중 한 개를 쓴다. 즉, 뺑소니 용의차량의 번호판은 ‘서울3* 바~자 3**4’로 압축됐다. 차종은 기아자동차의 케이(K)5나 K7으로 보였다. 이제 용의차량은 130여 대로 압축됐다.
은색은 개인택시일 확률이 높다. 법인택시는 ‘서울 택시색’인 주황색을 주로 쓴다. ‘은색 K5나 K7 개인택시’로 좁혀보니 용의차량은 10여 대로 좁혀졌다. K5와 K7 후면등 모양 차이를 검토해보니 용의차량은 K7이었다. 그러자 용의차량은 3~4대로 줄어들었다. 해당 차량에 부착된 갓등 모양, 밤9시부터 아침9시까지 운행하는 심야전용택시(일명 ‘9조 택시’) 스티커 등의 ‘디테일’과 경찰 내부 전산망 TCS(교통경찰업무관리시스템)을 통해 용의차량을 특정했다. 수사 착수 1주일 만이었다.
경찰은 해당 개인택시 운전기사인 권아무개(60)씨 세 차례 불러 조사했다. 권씨는 범행 사실을 극구 부인했다. 해당 사고 지역을 지난 것은 맞지만, 사고를 낸 적은 없다고 했다. 그러자 경찰은 이번엔 사업용 차량에 의무적으로 장착하게 돼 있는 ‘운행기록장치’를 분석했다. 이 장치에는 차량의 이동 경로, 정차위치, 속도, 시간 등이 기록된다. 사고 당일 권씨가 택시를 운행한 기록과 권씨의 진술이 서로 다르다며 경찰이 집중적으로 추궁하자 말문이 막힌 권씨는 결국 고개를 숙였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19일 권씨를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의 도주치상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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