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구리시에 사는 김아무개(61)씨는 4년 전 은퇴한 뒤 현재는 근로소득이 없는 상태다. 퇴직연금이나 개인연금은 없고 국민연금으로 한달 120만원을 타고 있다. 배우자는 전업주부이고 두 자녀 중 딸은 결혼을 해서 독립했다. 김씨는 얼마전 국민연금공단의 노후준비지원센터를 찾아 재무진단을 의뢰했다. 보유한 예금과 부동산, 국민연금 등으로 월 300만원의 생활비를 조달하는 게 목표였다. 센터는 전문가 심층진단을 통해, 김씨에게 적당한 주택연금과 금융상품 가입을 권유하고 두 종류의 재무설계안을 제시했다. 그동안 주로 은퇴자나 고액 자산가가 받았던 이런 노후준비 서비스를 전 국민이 받을 수 있게 된다. 마치 건강검진을 받듯이, 재무 상태와 건강상태, 여가활동, 대인관계 등에 대해 노후준비 진단을 받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2020년 이후 노인이 되는 베이비붐 세대 801만명(지난해 기준 50~59살)이 우선적인 대상이다. 보건복지부는 29일 ‘국가노후준비위원회’를 열어 이런 내용을 담은 ‘제1차 노후준비지원 5개년 기본계획’(2016~2020년)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2020년까지 사업비로 189억5천만원의 예산(일반회계·국민연금기금 포함)이 투입된다.
■퇴직 전 한번씩 노후검진 기존에도 국민연금공단 본부와 전국 지사 107곳에 설치된 노후준비지원센터를 방문하면 재무진단 및 상담이 가능했다. 올해는 11월까지 모두 7만1375명이 받았다. 하지만 노후준비 전문가들이 신청자의 자산상태와 현금흐름 등을 파악해 개선방법을 조언하는 심층진단을 받은 이들은 400명에 그친다. 앞으로는 전담 상담인력 등을 더 확충해 재무상태에 대한 심층진단 서비스를 늘리는 한편, 건강과 여가, 대인관계에서의 노후준비 상황도 진단해서 그에 따른 정보 제공이나 대처방법 등을 알려준다는 것이 기본계획의 핵심 내용이다. 특히 비재무 분야의 경우, 건강상담은 물론이고 취미활동이나 자원봉사, 가족과의 갈등에 대한 대처방법 등까지 포괄적 서비스를 할 계획이다. 은퇴 전 최소한 1차례 이상 진단 및 상담 서비스를 받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재무설계를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가칭)‘초록 봉투 사업’도 내년부터 시행된다. 공적연금과 사적연금을 통합해 가입내역과 향후 연금수령 예측금액을 시뮬레이션한 결과와 노후부족자금에 대한 안내서를 초록색 봉투에 담아 주기적으로 발송해 줄 계획이다. 복지부는 2020년까지 노후진단·상담과 초록봉투 사업 참여자를 각각 12만명(대면 기준)과 10만명 수준으로 늘릴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또 연령대별이나 성별로 노후준비 진단 지표를 차별화해서 개발할 계획이며, 청년세대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도 보급하기로 했다.
■노후준비 대책, 왜 나왔나 정부가 노후준비 지원 기본계획을 마련한 것은 급속한 고령화 속도에도 불구하고 현재 국민들의 노후준비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통계청 고령자 통계(2016)를 보면, 지난해 기준으로 고령자의 절반이 넘는 53.1%는 노후준비를 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인 노인빈곤율(48.8%·2014년)과 아직 성숙하지 않은 공적연금 제도를 감안하면 노후생활이 불안정해지기 쉬운 환경이다.
복지부가 올해 8~9월 한달간 여론조시기관인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만 35~69살 1539명을 대상으로 면접조사를 벌인 결과를 보면, 노후준비 점수는 100점 만점에 62.8점에 불과했다. 예상 은퇴연령과 월평균 예상 노후소득, 제2의 일을 위한 준비 여부, 건강상태, 배우자와의 대화 충분성 등 모두 63개 문항을 물어 종합점수를 산정한 결과다. 여성(63.5점)이 남성(62.1점)보다 노후 준비 수준이 1.4점 더 높았고, 배우자가 있는 경우(65.2점)가 독신(50.6점)보다 14.6점이나 더 높게 나타났다.
하지만 이번 기본계획에는 정작 중요한 고령자 일자리를 포함한 노후소득 보장을 높이기 위한 대책은 나오지 않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각 개인들이 노후 준비를 스스로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장기근속 일자리(주된 일자리)에서 현재보다 더 오래 일할 수 있도록 하고 정년을 연장하되 근로시간단축과 임금체계 개편에 나서는 등의 사회적 합의를 추진하는 것이 필요해보인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당초 기본계획안에 “노인들이 더 오래 일할 수 있도록 정년연장, 중고령층 고용확대 방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본격 추진할 예정”이라는 내용을 담았다가, 이날 국가준비위 회의에서 일부 부처의 반대로 ‘정년연장’이라는 표현을 ‘정년조정’으로 수정했다.
황보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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