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대인지뢰 희생자 없다”던 한국, 작년에만 4명 사상

등록 2017-01-19 10:49수정 2017-01-19 11:01

비인도적 재래식 무기 사용 반대 ‘오타와 조약’ 가입해야
군, 지뢰 제거 더뎌…검증된 민간단체도 지뢰 제거 나서야
민간인 지뢰피해자들이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017 아시아 지뢰제거 파트너쉽 구축을 위한 세미나’에 참석해 민간 비영리단체의 발표를 듣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민간인 지뢰피해자들이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017 아시아 지뢰제거 파트너쉽 구축을 위한 세미나’에 참석해 민간 비영리단체의 발표를 듣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지난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017 아시아 지뢰제거 파트너쉽 구축을 위한 세미나’에서 외교부 산하 단체의 설명을 듣던 고준진(66)씨는 실망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고씨는 22살이던 1972년 12월, 입대를 앞두고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토성리 고향에서 땔감을 마련하기 위해 마을 뒷산에 올라갔다가 지뢰를 밟았다. 폭발과 함께 왼쪽 발목 힘줄이 끊어지고 오른쪽 발목 아래가 형체 없이 사라졌다. 다리 절단 수술을 받아야 했다. 수술이 잘못돼 보름 만에 양쪽 다리의 절단 부위가 썩기 시작했고, 2번의 추가 수술에서 넓적다리까지 잘려나갔다. 사고 이듬해 고씨는 지역 관할 부대에 보상신청을 했지만 거부당했다. 결국 그렇게 아무런 피해 보상없이 45년을 살았다.

“동남아 지뢰 제거 사업에는 외교부가 수십억씩 지원하면서 정작 대한민국 안에선 제거는커녕 지뢰 피해 사고 보상도 제대로 안 하고 있어요. 기분이 썩 좋지 않네요.” 고씨의 말이다. (▶관련 기사 : [포토스토리] 민간인 지뢰피해자 고준진)

한국전쟁 휴전 뒤로 63년이 지났지만, 매년 끊이지 않는 지뢰 폭발 사고로 전국에서 1000여명의 피해자들이 후유증에 신음하고 있다. 지난해 한 해 동안에만 민간인 지뢰 폭발 사고로 1명 숨지고 3명이 신체 일부를 잃는 중상을 당했다. 지뢰 제거에 전문성을 갖춘 민간 비영리단체와 정부가 협력해 신속하게 사고 예방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 지뢰 사용 반대 ‘오타와 조약’ 가입해야

이날 열린 세미나에선 지뢰 피해자와 평화나눔회, 지구촌공생회 등 지뢰 관련 국내 비영리단체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매설된 지뢰로 전쟁 후유증을 겪고 있는 일부 아시아 국가들의 지뢰 제거 사례를 발표했다. 지난해 12월 ‘지뢰피해자특별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고 수습을 위한 지뢰 피해자 보상 논의에서 사고 예방을 위한 지뢰 제거 논의로 한 단계 진일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이 비인도적 재래식 무기 사용에 반대하는 ‘오타와 조약’에 가입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국 정부는 1997년 9월 노르웨이 대인지뢰회의에서 “한국에 대인지뢰 희생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155마일(mile) 비무장지대를 제외하면 한국은 그 어떤 지역에도 대인지뢰를 매설해놓고 있지 않다”고 발표하기도했다. 지뢰 관련 비영리단체들은 한국 정부가 오타와조약 가입을 피하고자 이런 발표를 했다고 보고 있다. 조재국 평화나눔회 이사장은 “오타와조약에만 가입해도 지뢰 피해를 예방하는 등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 그러나 조약 가입을 안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간인 지뢰피해자인 고준진씨(앞줄 맨 오른쪽)가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017 아시아 지뢰제거 파트너쉽 구축을 위한 세미나’에 참석해 김병기 의원 등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민간인 지뢰피해자인 고준진씨(앞줄 맨 오른쪽)가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017 아시아 지뢰제거 파트너쉽 구축을 위한 세미나’에 참석해 김병기 의원 등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민간단체 지뢰 제거 허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민간단체의 지뢰 제거를 허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2001년 2월 주 유엔 대한민국 대표부의 요청으로 국방부가 답변한 자료를 보면, 현재 비무장지대에 묻혀 있는 108만3000여발의 지뢰 말고도 서울 우면산, 인천 문학산, 경기 성남 남한산성, 충남 태안, 대구 최정산, 부산 장산 등 36곳에 7만5000여발의 지뢰가 매설되어 있다. 국방부는 2010년 미확인지뢰지대에 매설된 지뢰를 제거하기 위해 약 489년이 걸린다고 밝혔다. 조재국 이사장은 “국방부가 지뢰 제거에 480여년 걸린다고 보고서를 냈는데, 국방부가 인력 및 기술 등에 어려움이 있다면 민-관이 협력해 지뢰 제거 사업을 해야 한다. 민간인의 지뢰 제거를 막고 있는 법이 문제”라고 말했다. 현재 국방부는 민간인의 군사시설물 취급 금지를 이유로 민간 비영리단체의 유실 지뢰 제거를 막고 있다. (▶관련 기사 : 지뢰받이 이경옥 - 서울서 부산까지 7만5000발…당신도 발목을 조심하라)

김기호 지뢰제거연구소장도 “군이 전시 지뢰 제거 방식으로만 지뢰를 제거 중이다. 그러나 평시는 상황이 다르다”라며 “산사태 등 지형 변화로 인해 현재 군의 수준으로는 유실된 지뢰 제거가 어려울 것이다. 군은 평시 지뢰 제거에 대한 전문성이 없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이어 “육군 공병부대가 반년에 걸쳐 지뢰 제거 작업을 벌인 지역에서 지난해 말 지뢰가 터져 사람이 죽었다. 군의 엉터리 지뢰 제거로 사람이 죽었다. 한국지뢰제거연구소가 이 지뢰 제거 작업 지역 인근서 30분 동안 폭발물을 탐색한 결과, 엠(M)27 대전차지뢰 2발, 엠(M)3 대인지뢰 1발, 엠(M)14 대인지뢰 1발 등 매설 폭발물 4발을 찾아 발굴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김 소장이 말한 사망 사건은 지난해 11월 30일 오후 4시 30분께 강원 철원군 근남면 풍암리 일명 ‘지뢰고개’에서 대전차지뢰가 폭발하면서 트럭 운전석이 파괴되고 운전기사 한통희 씨가 사망한 사건을 일컫는다. (▶관련 기사 : 강원 철원서 대전차 지뢰 터져 트럭 운전자 1명 사망) ‘지뢰고개’는 육군 공병부대가 사고 발생 한달 전까지 반년 동안 예산 3846만원을 들여 지뢰제거작업을 완료한 지역이다. 이 때문에 지뢰 제거에 전문성이 떨어지는 군만 동원하는 것이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날 세미나에서도 국방부 합동참모본부에서 발표한 2016년도 지뢰 제거 성과가 전체 100만여발 매설 지뢰 가운데 극소수인 100여발에 불과하다는 내용이 발표되자, 김종수씨 등 민간인 지뢰피해자들은 “군의 지뢰 제거 속도가 너무 더디다. 검증된 국내외 비영리단체와 협력해 신속하게 지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범출 국방부 군사시설기획관실 시설제도기술과 서기관은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불필요한 지뢰는 제거하고 있다”며 “18, 19대 국회에서 지뢰 관련 법안이 나왔던 터라 내부에서도 지뢰 제거에 대한 고민이 있다”고 말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36년 봉사에 고발·가압류?…지자체 무책임에 분노” 1.

“36년 봉사에 고발·가압류?…지자체 무책임에 분노”

땅 꺼지고 주택도 잠겼다…폭우에 전국 900여명 대피 2.

땅 꺼지고 주택도 잠겼다…폭우에 전국 900여명 대피

[현장] “성착취물 떠도는 것 알고 자퇴 고민…꼭 살아 있어 달라” 3.

[현장] “성착취물 떠도는 것 알고 자퇴 고민…꼭 살아 있어 달라”

“윤 정권, 남은 임기 죽음처럼 길어”…원로 시국선언 4.

“윤 정권, 남은 임기 죽음처럼 길어”…원로 시국선언

‘지진 피해’ 일본 이시카와현도 기록적 폭우…1명 사망 3명 실종 5.

‘지진 피해’ 일본 이시카와현도 기록적 폭우…1명 사망 3명 실종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