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아주 쓰라린 경험을 했다. 작년에 대전지방법원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된 피고인 3명에 대해 1심에서 어렵게 징역형의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구속기소됐다가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석방된 피고인들과 전화 통화를 하는데, 그 환한 목소리가 지금도 귀에 선하다. 1심 판결에 대하여 검사, 피고인들 쌍방 모두 항소했다. 항소심은 2차례의 심리를 하고는 지난 1월 판결을 선고했는데, 아뿔사! 1심의 집행유예가 가볍다면서 1심 판결을 파기하고 피고인 2명에 대해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대체로 선고재판에는 변호인이 출석하지 않고 때마침 다른 재판이 있어 서울에 있었다. 쇠망치로 머리를 두드려 맞는 느낌이었다.
과거 형사항소심은 별 합당한 이유도 없는데 1심의 형을 관행적으로 몇달 깎아주거나 1심 실형을 집행유예로 바꿔주었다. 이런 양형 문제를 포함해 1심 재판의 전반적 운용의 모습이 1심 형사재판에 대한 불신을 초래한다고 하여 사법당국은 2007년을 기점으로 하여 1심중심주의를 표방해 형사항소심의 운영을 바꾸는 제도개선을 한 바 있다. 따라서 항소심은 가급적 1심의 심리범위 내에서 유무죄 판단도 하고, 양형도 1심의 양형 판단을 존중하여야 한다. 이 점을 명확히 보여준 것이 대법원 2015. 7. 23. 선고 2015도3260 전원합의체 판결이다. “공판중심주의와 직접주의를 취하고 있는 우리 형사소송법에서는 양형 판단에 관하여도 제1심의 고유한 영역이 존재한다. 이러한 사정들과 아울러 항소심의 사후심적 성격 등에 비추어 보면, 제1심과 비교하여 양형의 조건에 변화가 없고 제1심의 양형이 재량의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이를 존중함이 타당하다.” 이 사건 1심 재판은 8차례에 걸쳐 공판기일을 열고 한 번 재판할 때마다 6~7시간씩 심리를 진행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장기간에 걸쳐 숙고한 1심의 판단 결과는 아주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존중되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나아가 이렇게 1심의 판단을 바꿀 것이면, 별도로 심리를 진행하여 판단 자료를 확보했어야 한다. 이 맥락에서 항소심에 대하여 한 가지 더 유감스러운 일은 1심의 집행유예 판결을 바꿀 것이면 적절한 방법으로 피고인 및 변호인에게 그 방어의 기회를 줬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문제의 항소심은 공판기일을 단 두 차례 열었을 뿐이다. 그것도 한 차례는 대법원의 관련 법리 판결을 기다린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 항소심의 공판은 사실상 한 차례만 연 셈이다.
피고인이 실형을 받느냐, 집행유예를 받느냐 하는 것은 징역 기간이 1년인가, 2년인가 하는 것만큼 중요하다. 그렇다면 당사자가 이에 대해 변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방어권 보장이라는 헌법정신에 부합하는 일이다. 그런데 항소심은 1심의 집행유예 결과에 대하여 일언반구 언급도 없다가 선고 시에 실형을 선고하면서 피고인들을 법정구속하였다. 입장을 바꿔놓고 판사 자신이 그런 일을 당한다고 생각하면 자신도 매우 황당하고 불합리하다고 여길 것이다.
이렇게 제도와 판사를 책망하는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고 있으나, 기실 이 사례에서 가장 문제는 변호인인 나 자신이다. 항소심에서 예상되는 상황을 분석하고 대처했어야 마땅하거늘, 그렇게 하지 않고 만연히 1심의 결과가 유지되겠거니 하면서 1심의 집행유예 결과가 바뀔 것인가 하는 데 대하여 눈곱만큼의 경계심 없이 그저 습관적으로 대전고등법원에 갔다 온 내가 ‘변호사 맞나’ 하는 자괴감을 느낀다. 선고 공판 뒤 서둘러 대전교도소로 피고인들을 접견 갔는데, 막상 법정구속된 분들이 환하게 반겨주면서 담담하게 감옥살이의 계획을 말씀하시니 더욱더 죄송하고 부끄러웠다.
제도의 설계와 운용의 문제점 외에도 이 사례는 변호사인 내게도 많은 교훈을 주었다.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 미국 프로야구 뉴욕 양키스의 요기 베라 전 감독이 남긴 명언이다. 세상일 모두에 해당되는 일이지만 특히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들께서 형사재판을 받게 되시거든, 마음속 깊이 새겨두시길 바란다. 나도 그렇게 하겠다.
이광철/변호사